ADVERTISEMENT

[현장에서] 세계유산·국립공원 없어도…5년새 여행자 7배 뛴 목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목포의 대표적인 나이트 투어 콘텐트 ‘춤추는 바다분수’. [중앙포토], 손민호 기자

목포의 대표적인 나이트 투어 콘텐트 ‘춤추는 바다분수’. [중앙포토], 손민호 기자

일단 오해 마시라. 당장 여행을 떠나시라는 얘기가 아니다. 일거에 강호를 접수한 신흥 명가의 필살기를 공개할 따름이다. 나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관광도시 중 제일 뜨거운 곳이 전남 목포시라고 자신한다. 여러 근거 중, 통계 하나를 먼저 공개한다. 2015년 이전 목포 방문자는 연 100만 명이 안 됐다. 작년엔 685만 명이다. 5년 만에 방문자가 7배 뛴 지방 도시를 본 적이 없다. 국내 관광 신흥 명가 목포의 경쟁력을 살핀 까닭이다.

인구 23만 명 항구의 대변신 #최근 4년 관광예산 쓸어담아 #10년 노력 결실, 지역의 모범

◆관광 예산 쓸어담다=1월 28일 정부서울청사. 문체부가 관광거점도시 대상지를 발표했다. 박양우 장관이 호명한 대상지는 다음과 같다. 부산광역시(국제관광도시 1곳)와 강원도 강릉, 전북 전주, 경북 안동, 목포(지역관광거점도시 4곳). 짧은 발표가 끝나자 환호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도시 한 곳에 예산 1000억 원이 배정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공모사업이기 때문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단연 목포였다. 목포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은커녕 국립공원도 없다. 더욱이 인구 23만의 작은 도시다. 안동 인구가 더 적다지만, 안동은 도청 소재지다. 지역 배분을 고려해도 목포는 의외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관광 전남의 터줏대감은 여수이어서다.

지난달 12일. 목포시 곳곳에는 축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도시 전체가 잔치 분위기였는데, 목포시청은 외려 담담해 보였다. 알아보니 목포는 이미 관광 예산을 쓸어담고 있었다.

장일례 목포시 미디어마케팅팀장에 따르면 2017년부터 3년간 목포가 관광 명목으로 받은 국비·도비는 1000억 원이 넘는다(2017년 266억3400만원, 2018년 549억6600만원, 2019년 188억5500만원). 문체부·관광공사 등 관광 당국은 물론이고, 행정안전부·해양수산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도 예산을 내려보냈다. 가장 눈에 띄는 부처는 문화재청이다. 2018년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시범사업 명목으로 370억 원을 지원하는 등 3년간 모두 426억2000만원을 집행했다. 관광 예산이 목포에 집중된 이유는 무엇일까.

◆10년 대계의 결실=“목포를 와본 사람은 많아요. 근데 목포를 여행한 사람은 없어요. 다들 거쳐 가는 거지. 목포에서 잠을 재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저녁에 볼거리가 있어야겠고. 그래서 2년 전 ‘춤추는 바다분수’를 만들었어요. 밤바다에서 조명 쇼도 하고 레이저도 쏘고, 볼 만해요. 목포대교도 조명시설을 얼마나 공들였는데….”

2012년 목포대교 개장 직후. 정종득 당시 목포시장이 진지한 얼굴로 토로했다. 그때만 해도 목포는, 3선 시장의 고백처럼 잠깐 들르는 항구 도시였다. 내 기억에도 관광 목포는 2010년 춤추는 바다분수에서 시작됐다. 세계 최초·최대 부유식 바다분수는 밤마다 바다를 환히 밝혔다. 목포대교도 반짝반짝 빛났고, 유달산·갓바위 등 목포의 명승에도 하나둘 불이 들어왔다. 지난해 9월 개장 이후 60만 명이 탑승했다는 목포해상케이블카도 조명시설에 공을 들였다. 이제 목포의 밤은, 어느 항구 못지않게 화려하다.

정종득 전 시장이 관광 목포를 꿈꿨다면, 김종식 현 시장은 관광 목포를 설계했다. 시청 조직표가 증거다. 현재 김영숙 관광국장 산하에 6개 부서가 있다. 직원 수는 30명. 기초단체 수준에서 처음 본 조직표다.

목포 ‘중앙횟집’의 민어정식 차림. [중앙포토], 손민호 기자

목포 ‘중앙횟집’의 민어정식 차림. [중앙포토], 손민호 기자

지역마다 향토 음식 홍보에 혈안이라지만 음식 관련 부서는 대부분 위생과 소속이다. 목포에선 관광과 업무다. 관광과 소속 ‘맛의 도시팀’이 향토 음식을 발굴하고 마케팅을 전담한다. ‘목포 5미(味)’는 ‘목포 9미’로 확장됐고  ‘목포 12미’도 추진되고 있다. 목포시가 가격을 관리하는 ‘목포으뜸맛집’도 125곳 있다. 민어가 언제부터 전국구 복달임 음식이 됐을까. 불과 몇 년 사이다. 현재 목포 민어의 거리 손님의 80% 이상이 관광객이다.

◆2019년 목포에서 있었던 일=“근대문화거리 사업은 군산보다 목포가 먼저 시작했어요. 20년쯤 전에. 지역 여론의 반대가 심해서 포기했어요. 일제 잔재로 뭐하는 짓이냐고. 군산이 뜬 것 보고 목포 여론도 바뀌었어요. 근대문화유산은 목포가 최고지요.”

TV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 등장한 목포근대역사관. 옛날 일본 영사관 건물이다. [중앙포토], 손민호 기자

TV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 등장한 목포근대역사관. 옛날 일본 영사관 건물이다. [중앙포토], 손민호 기자

20년 전 근대문화거리 사업 담당자였던 김천환 전 목포시 관광국장의 회고다. 현재 목포의 최고 관광 콘텐트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영화 ‘1987’로 ‘연희네 슈퍼’가 있는 서산동·온금동 달동네가 뜨더니, TV 드라마 ‘호텔 델루나’로 목포근대역사관(옛 일본영사관 건물)이 SNS 명소로 거듭났다. 촬영팀이 알아서 찾아왔을까. 20년에 걸친 준비가 이제야 빛을 본 게다.

손혜원 의원의 투기 의혹이 일었던 카페. 목포 근대문화거리에 있다. [중앙포토], 손민호 기자

손혜원 의원의 투기 의혹이 일었던 카페. 목포 근대문화거리에 있다. [중앙포토], 손민호 기자

이른바 ‘손혜원 소동’도 빠뜨릴 수 없다. 손혜원 의원의 투기 의혹이 일어난 뒤 목포 근대문화거리에 전국의 이목이 쏠렸다. 손 의원과 관계있다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도 인증사진 명소로 떠올랐다. 화제는 모았으나 부작용도 크다. 조대형(68) 문화관광해설사는 “투기 논란 이후 골목 집값이 10배 넘게 뛰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목포의 약진이 부러우신가. 그럼 목포를 배우시라. 현재 목포는 준비된 여행지의 모범 사례다. 참, 목포에선 여름 보양식 민어를 사철 먹는다. 관광 콘텐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란 뜻이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