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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쁜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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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호 20면

식사에 대한 생각

식사에 대한 생각

식사에 대한 생각
비 윌슨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통계·사례로 본 21세기 식사 풍경 #식품기업 악영향 치우친 섭취 #혼밥, 음식 다양성 실종도 문제 #한국은 김치 등 나름 균형 식단

단계론은 학문 전통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 철학자·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1798~1857)는 지식이 신학적·형이상학적·실증적 단계를 거치며 진보한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자 월트 휘트먼 로스토(1916~2003)의 경제성장단계설이 주장한 5단계는 전통적 사회, 이륙(take-off)을 위한 선행조건기, 이륙기, 성숙을 향한 전진기, 고도대중소비시대다.

『식사에 대한 생각』 또한 식습관 단계론을 제시한다. 선사시대 인류가 야생 식물·육류를 중심으로 저지방 식사를 하던 때가 1단계다. 2단계에서는 농업혁명 덕분에 곡물을 풍부히 먹게 됐다. 유럽에서 수백 년 전에 시작한 3단계에는 지리혁명·근대화를 거치며 보다 다양한 보존식품, 절인 식품과 채소를 먹게 됐다. 현 단계인 4단계는? 한마디로 걱정이다. 저자는 오늘의 식습관 위기를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에 의해 사냥당하는 최초의 세대다.” “만성질환이 배고픔을 대체했다.”

‘전통’은 ‘이륙’의 장애물인지 모른다. 『식사에 대한 생각』에서는 좋은 것이다. 전통 식단의 파괴가 식습관 위기를 초래했다. 저자 비 윌슨은 한국 사례를 여러 번 언급한다. 4페이지 반 분량(88~93페이지)으로 한국을 칭찬한다. 한국은 김치를 포함해 야채를 계속 많이 먹는 나라, 전통 식단을 유지한 나라, 음식의 양과 질 양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은 나라라는 것.

미국 화가 제임스 필(1749~1831)이 그린 ‘야채가 있는 정물’(1826). 야채 많이 먹기는 건강식의 핵심이다. [사진 구글문화원]

미국 화가 제임스 필(1749~1831)이 그린 ‘야채가 있는 정물’(1826). 야채 많이 먹기는 건강식의 핵심이다. [사진 구글문화원]

내용상 ‘세계 식습관 현황에 대한 첨단 보고서’라는 제목도 어울린다. 음식 관련 연구와 인터뷰, 사례와 통계를 감칠맛 나게 버무렸다. 원제가 ‘우리가 지금 먹는 방식(The Way We Eat Now)’인 이 책은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먹고 있는가’에 답한다. 저자의 짧은 대답은 “몸에 해로운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다”이다. 왜? 우리가 거대 식품기업의 프로파간다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모범 사례로 인용했지만, 읽다 보면 불편하다. 저자가 그린 세계 음식 풍속도에서 우리 모습이 보인다. 갈수록 전 세계 사람들이 똑같은 메뉴로 식사한다. 생물 다양성만큼이나 음식 다양성도 위협받고 있다. 고기를 많이 먹는다. 소프트드링크를 ‘물처럼’ 마신다. 몸이 당분·지방·나트륨이 많은 음식의 융단폭격을 받고 있다.

저자가 한 중등학교 교실에 가서 물어보니 학생 중 4명은 ‘생토마토’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토마토를 통조림이나 스파게티 소스로 접했다. 세계인이 먹는 음식의 종류도 줄었다. 빵의 종류가 줄었고 바나나의 종류가 줄었다. 껍질이 빨간 바나나 등 100여개 바나나 품종이 있지만, 우리가 먹는 것은 오로지 캐번디시 바나나다. 영양과 맛이 우수해서가 아니다. 병저항성이 강하고 운송·저장이 수월해 경제성이 좋기 때문이다.

‘무엇’도 문제지만 ‘어떻게’도 문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너무 빨리 먹는다. 과식뿐만 아니라 속식(速食)도 문제다. 점심시간이 사라졌다. 외식을 많이 한다. 집밥·홈쿠킹(home cooking)이 이제는 자랑거리가 됐다. 혼자 먹는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에서도 밥은 식구가 오순도순 함께 먹는 것이었다. 지금은 식구들 식사에도 불청객 스마트폰이 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1~4단계의 장점만 추려낸 5단계 음식 혁명은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암스테르담이나 칠레의 경우처럼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우리가 개인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13가지를 제안한다. 그중 하나는 채소를 먹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우선 채소부터 먹이는 것이다. 저자는 성공했다. 저자의 막내는 채소를 다 먹을 때까지 다른 음식은 건들지도 않는다.

저자는 프랑스의 초기 유토피아 사회주의 연구로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음식에 대한 책 6권을 썼으며, 가디언·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음식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이 책은 누가 읽어야 할까. 문해력(文解力) 못지않게 중요한 식해력(食解力, food literacy)을 높이려는 독자와 국민의 건강한 식생활을 유도해야 할 공직자들이 생각난다. 의외의 잠재 독자군이 있다. 식품기업 임직원들이다. 저자는 많은 식품 유행이 ‘사기’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책 곳곳에 식품 ‘대박’을 낳을 힌트가 나온다. 저자는 “식품 산업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는 유행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가다”라는 문제에서 이런 답을 찾았다. “실제로 큰 성공을 거두는 식품 트렌드는 새로운 것을 제공해 우리의 네오필리아적 측면을 자극하는 동시에 익숙함으로 네오포비아적측면도 달래주는 것들이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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