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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정치가 경제 효율성 떨어뜨리고 성장 가로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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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저성장 부채질하는 혼돈의 정치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지금 대한민국에서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진영 갈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국회는 정상적으로 움직인다고 할 수 없는 상태다. 과연 이런 혼돈의 정치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의문은 누구나 한 번쯤 가졌을 만하다.

경제는 좋은 제도·규율에서 성장 #정쟁 계속되면 경제가 움츠러들고 #성장 원천 총요소생산성 깎아 먹어 #규제 철폐하고 좀비기업 퇴출해야

경제성장의 원천은 노동력과 자본 축적으로 집약되는 요소 투입과 생산성으로 나누어진다. 요컨대 경제 성장률은 노동과 물적 자본 투입 증가율, 생산성 증가율의 합계로 산출된다. 생산성은 노동과 자본을 결합해 산출물을 만드는 생산 과정의 효율성을 반영한다. 경제 성장의 초기에는 노동과 자본인 요소 투입이 중요하지만,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한계 생산성이 저하돼 요소 투입의 성장 기여도가 하락하기 때문에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제고의 중요성이 커진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노동투입 증가율이 하락함으로써 경제성장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물적 자본 투입은 주로 기업의 투자에 의해 결정된다. 한편 국민경제의 총체적인 생산성 증가율을 직접 산출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활동 규모에서 노동과 자본 축적의 기여도를 뺀 나머지 부분을 생산성의 기여 부분으로 간주하고, 이것을 총요소 생산성(TFP, Total Factor Productivity)이라고 부른다.

총요소생산성은 우선 개별기업 차원의 생산성 향상과 산업 차원의 기업 활동에 따른 생산성 향상으로 구분된다. 개별 기업 차원의 생산성 향상은 자발적인 혁신과 다른 기업의 혁신을 수용하는 것으로부터 발생한다. 이 두 가지 기업 차원의 생산성 향상은 교육을 통한 인적자본의 변화와 새로운 투자에 의한 물적 자본의 변화, 연구개발, 생산 공정의 효율성, 경영 역량의 작용으로 산출된다. 한편 산업 차원의 생산성 변화는 ▶신기술을 가진 신규 기업의 진입 ▶경쟁력이 낮은 기업의 퇴출 ▶생산성이 낮은 기업에서 높은 기업으로의 자원 이동에 따른 효율성 향상에서 비롯된다.

경제 성장의 원천은 좋은 정치

총요소생산성은 ‘사회적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하부구조에서 나온다. 사회적 하부구조는 재산권 보호와 특허 제도, 조세, 노동 규율, 금융 가용성 등을 포함한다. 정치가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총요소생산성을 결정하는 사회적 하부구조의 대부분이 정치의 통제를 받거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사회적 하부구조의 중심은 법과 제도와 관행이며, 법은 국회가 제정하고, 법을 근거로 정부는 정책을 추진한다. 국회는 법률 제정을 통해 경제 활동을 촉진하거나 제약하고, 정부 예산을 심의하고 확정함으로써 경제활동 수준과 개별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하부구조의 핵심은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사회와 정치의 불안정은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높임으로써 투자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 시계를 단기화함으로써 장기적 관점의 정책 선택을 어렵게 한다. 그 결과 정치 불안정은 물적 자본축적을 감소시키는 것은 물론 총요소생산성을 저하한다. 정치적 대립과 분열이 심한 정치 환경 아래서는 정부 정책 결정 과정의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의 국익을 위한 정책 입안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정책으로 재정을 낭비하기 쉽다.

물론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장기 저성장을 겪었고, 저성장의 기본 원인이 총요소생산성의 저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크다. 정치적 불확실성의 증대가 기업의 고위험 투자를 어렵게 함으로써 총요소생산성을 장기적으로 저하해 왔다. 나아가 세계 금융위기에 대응한 각국의 금융완화 정책이 저금리를 보편화함으로써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을 취약하게 했다.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발표(KDI 경제전망, 2019 상반기)에 따르면, 한국의 총요소생산성은 2001~2010년간 연 1.6% 증가에서 2011~2018년에는 연 0.7% 증가로 대폭 낮아졌다.

정책 혼돈 없애야 성장률 높여

잠재성장률 요인별 기여도

잠재성장률 요인별 기여도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에서도 정치적 불안정은 잦은 정권 교체를 가져와 정책 입안자들의 정책 계획 시계가 짧아지고 정책 기조가 자주 바뀌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총요소생산성을 떨어뜨려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은 1993년부터 2차 아베 정권 직전인 2012년까지 20년간 총리 13명 중 이례적으로 장기 재임했던 고이즈미 총리를 제외하면, 12명 총리의 평균 재임 기간은 426일이다. 이렇게 잦은 총리 교체로 인해 구조개혁은 물론 경기부양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면서 총요소생산성을 저하해 장기 저성장의 터널에 빠져들었다. 반면 독일은 메르켈 총리가 2005년 9월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로부터 정권과 더불어 ‘아젠다 2010’으로 명명된 개혁정책을 넘겨받고 대연정을 구성해 지금까지 일관되게 추진함으로써 2000년대 초 ‘유럽의 병자’로 홀대받았던 독일을 ‘유럽의 패자’로 일으켜 세웠다.

베네수엘라는 정치가 경제를 망친 최악의 사례다. 석유 부국임에도 불구하고 차베스와 마두로 대통령을 잇는 20년 좌파 정권 아래에서 3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조국을 떠났다. 경제성장률은 6년째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율 역시 20만%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려 성장률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핵심은 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가계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도록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데 있다. 특히 기업이 사업 위험을 적극적으로 감수하고 투자와 혁신을 추진하도록 격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규제 철폐와 조세 부담을 낮추는 것은 기본이다. 산업 측면에서는 기득권을 보호하는 규제 장벽을 폐지해 높은 생산성을 가진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촉진하고, 생산성이 낮은 ‘좀비 기업’들을 퇴출해 생산성이 높은 기업과 산업으로 인력과 자금이 재배분되도록 하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교육과 훈련으로 인적 자본을 제고하는 정책은 생산성 향상과 고용 확대를 촉진하는 정책의 핵심이다. 하지만 아무리 타당한 정책이라도 정치적 득실을 넘어선 장기 안목과 지도력 없이는 추진되기 어렵다. 따라서 무엇보다 지속적인 경제 번영의 핵심은 국가를 운영하는 ‘제도의 질’에 있으며, 제도 중에서도 정치의 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총요소생산성 못 올리면 저성장 불가피

총요소생산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유일한 길이 총요소생산성 제고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추계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19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20년부터 2023년에는 연 20만명대, 2025년부터는 연 40만명대로 감소한다. 이에 따라 노동 투입의 성장 기여도는 2011~2018년의 연 0.8%포인트에서 2020년대 0.2%포인트로 낮아진다.

한편 물적 자본 증가율은 2011~2018년의 연 1.4%포인트에서 2020년대에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서 1.0%포인트, 비관적 시나리오에서 0.8%포인트로 낮아질 것으로 추정됐다. 따라서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2020년대에도 2011~2018년처럼 연 0.7% 증가율을 지속한다면, 한국 경제의 2020년대 잠재성장률은 1.7%에 불과하다.

KDI는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대안으로 총요소생산성을 0.7%포인트에서 1.2% 포인트로 높일 경우, 물적 자본의 성장기여도가 0.8%포인트에서 1.0%로 높아져 2020년대 2.4% 잠재성장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을 추가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정치 혼돈에서는 총요소생산성을 올릴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결과 총요소생산성을 제고하지 않을 경우, 잠재성장률은 2% 이하로 낮아질 수도 있다. 결국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유일한 대안은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것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혼돈의 정치 상황과 정책 불확실성 하에서는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지기 어렵다는 사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문제는 경제보다 정치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