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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생충’ 제작·배급사 “세트 복원한다고? 공식 요청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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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아쿠아 스튜디오에서 영화 '기생충'을 촬영하던 모습. 지금은 철거된 상태다.[사진 고양시]

고양 아쿠아 스튜디오에서 영화 '기생충'을 촬영하던 모습. 지금은 철거된 상태다.[사진 고양시]

“‘기생충’ 세트 복원 추진 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스토리가 있는 문화·관광 도시를 만들어나가겠다.”(이재준 고양시장)
“구체적인 논의는 전혀 없었다.”(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지자체의 선 넘은 ‘기생충’ 마케팅 잇따라 #제작사·배급사와 상의 없이 세트 복원 발표 #공사만 최소 3개월 걸려, 예산 낭비 우려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 아쿠아 스튜디오를 방문한 이재준 고양시장은 ‘기생충’ 세트를 복원하겠다고 공언했다. 한데 주장이 엇갈린다.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영화 세트 복원이 “금시초문”이라고 반박했다.

고양 아쿠아 스튜디오는 영화 속 ‘기택’(송강호)의 반지하 집과 골목 세트가 차려졌던 장소다. 폭우에 기택네 집과 동네가 침수되는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다. 대형 수조 안에 약 40채의 건물을 세우고, 50t의 물을 퍼부어 폭우 장면을 만들었다.

세트는 촬영 후 모두 철거됐다. 현재는 ‘기생충’의 일부 의상과 사진 정도만 남아 있다. 고양시가 흔적도 없는 세트장을 복원해 청소년 직업 체험 시설 및 관광 시설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곽신애 대표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곽 대표는 “세트 복구나 관광 자원화와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안을 보내온 지자체는 한 군데도 없었다”며 “공식 요청이 오면 신중히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도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다”고 했으며, 이하준 미술감독도 “세트장 복원에 대해 들은 바 없다. 모든 도면을 내가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복원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양시 전략산업과 담당자는 “‘기생충’ 세트 복원, 전시관 설립 등을 두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서도 “아직 영화사와 협의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전주영화종합촬영소 야외 세트장에 차려졌던 '기생충' 속 박사장 집. 현재는 모두 철거된 상태다. [사진 전주영상위원회]

전주영화종합촬영소 야외 세트장에 차려졌던 '기생충' 속 박사장 집. 현재는 모두 철거된 상태다. [사진 전주영상위원회]

‘기생충’ 특수를 노린 지자체의 숟가락 얹기 시도는 또 있다. 박사장(이선균) 네 호화 저택도 부활 소문이 돈다. 너른 정원을 갖춘 박사장의 이층집은 전주영화종합촬영소 야외 공터에 세트로 지어졌다가, 촬영 후 곧장 철거됐다. 전라북도 관계자는 “‘기생충’ 야외 세트장 복원을 놓고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세트장을 복구해 관광 자원으로 개발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고양 아쿠아 스튜디오와 전주영화종합촬영소 모두 세트가 남아있지 않다. 복원이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다. ‘기생충’은 공간이 지닌 의미가 각별한 작품이다. 정원의 향나무부터, 문짝‧새시‧스탠드 하나도 허투루 재현할 수 없다. 당연히 ‘기생충’ 미술팀의 감수를 거쳐야 한다. 수개월의 시간과 막대한 예산 투입도 불가피하다. 참고로 전주영화종합촬영소 야외 세트장은 2018년 4월부터 약 3개월에 걸쳐 세트 공사를 벌여 완성했다.

복원된다 하더라도 효과를 낙관할 순 없다. 관광지로 개발했다가 흉물로 전락한 촬영지가 이미 차고 넘친다. 홍익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고정민 교수는 “유명 영화‧드라마 세트장을 관광지로 활용한 사례가 많지만,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잊혀 갔다. 단순히 촬영 세트만 복원한다고 관광지가 되는 게 아니다. 자칫하면 예산만 낭비하고 만다”고 지적했다.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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