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입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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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표 국세청장은 7월 중순 박찬욱(57.사진) 당시 국세청 조사국장을 서울지방국세청장에 임명하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수십억원대로 알려진 박 국장의 재산 때문에 머뭇거렸다. 이때 박 국장은 전 청장에게 "조사국장까지 오른 것만으로 만족한다"며 "국세청 인사에 방해가 된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청와대에 그의 재산에 대해 자세한 소명을 했고, 그는 31일 서울청장에 임명됐다. 국세청 사상 처음으로 9급 말단 직원 출신 서울청장이 탄생한 것이다.

국세청 '넘버 3'에 오른 박 청장은 1949년 8월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돼 부친이 사망하는 바람에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는 서울 작은아버지댁에서 경동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세무서에 들어와 주경야독으로 명지대를 졸업했다. 이런 박 청장이 행정고시와 영.호남 출신들의 자리로만 여겨졌던 서울청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철두철미한 업무처리와 겸손함 때문이라는 게 국세청 직원들의 평가다.

조사와 법인세 분야에서 주로 일하며 '일벌레'로 불려온 박 청장은 그동안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9급으로 국세청에 들어와 16년11개월 만에 5급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국세청 직원의 평균 승진 기간(9급→5급)은 32년이다. 이때부터 계속 동료보다 앞서 승진한 그는 지난해 4월 서울지방청 조사4국장에 임명된 뒤 1년여 만에 본청 조사국장을 거쳐 서울청장에 올랐다.

한편 박 청장의 재산은 22세 때 암으로 숨진 홀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용인 수지의 논.밭과 임야 덕분에 불어난 것이라고 국세청은 설명했다. 이 땅이 90년대 후반 택지개발지구에 포함되면서 수십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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