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문자폭탄 시달린 황교안, ‘힘들다’면서도 통합 의지 강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미래통합당 산파 박형준이 들려주는 통합비사

박형준 위원장은 ’유승민 의원의 통합 결단을 진심으로 높이 평가한다. 한국당 출신 의원들은 공천 컷오프(자격미달자 낙천) 규정이 있지만 새 보수당 출신 의원들에겐 적용되지 않아 공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박형준 위원장은 ’유승민 의원의 통합 결단을 진심으로 높이 평가한다. 한국당 출신 의원들은 공천 컷오프(자격미달자 낙천) 규정이 있지만 새 보수당 출신 의원들에겐 적용되지 않아 공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3년간 분열했던 보수정당들이 총선을 58일 앞두고 ‘미래통합당’으로 뭉쳐 의석 113석의 대형 야당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여름부터 야권 통합에 전력해온 ‘혁신통합추진위원회’의 역할이 컸다. 박형준 위원장(동아대 교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회고하는 통합 과정의 드라마를 문답식으로 재구성했다.

유승민 ‘3대 원칙’ 인터뷰가 물꼬 #수용 표현 수위 놓고 황·유 갈등 #유, 대다수 의원 반대로 ‘연대’ 접어 #안철수계 의원들 합류 뜻 물밑전달

언제 어떻게 야권 통합 프로세스에 시동이 걸렸나.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마저 자유한국당이 참패하는 걸 보면서 보수가 궤멸해 대한민국이 위태롭게 되리라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지난해 8월 노동운동 원로 주대환씨와 민변 출신 박인재 변호사 등 합리적 인사들과 ‘자유와 공화’를 발족시키고 자유한국당과 유승민·안철수계 의원들과 물밑 대화에 들어갔다. 다들 통합의 대의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이어 지난해 9월 30일 유승민 의원이 바른미래당 의원 14명을 이끌고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을 출범시키고 10월 9일엔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한국당에 통합 조건으로 ‘3대 원칙’을 제시하면서 통합의 시발점이 마련됐다.” (3대 원칙은 ‘탄핵의 강을 건너고 개혁보수로 나아가고 헌 집 대신 새집을 짓자’는 것이다)
3대 원칙 문제를 어떻게 풀어갔나.
“유승민이 통합에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보인 것이라고 판단하고, 유승민 측근인 유의동 의원을 만났다. 유의동은 ‘한국당이 3원칙에 호응하면 다른 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통합하겠다’고 하더라. 이걸 들고 황교안을 만나 ‘큰 집(한국당)이 안 움직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설득했다. 그랬더니 황교안도 동의하면서 SNS에 추상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3원칙을 받아들일 뜻을 밝혔다. 황교안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통합 의지를 내려놓은 적이 없다. 그러나 유승민 측에선 ‘대단히 미흡하다. 3원칙을 원래 문구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황교안에게 이를 전했더니 ‘표현까지 그대로 받아주면 당이 뒤집어진다’고 하더라. 당 주류(친박)들이 ‘그러면 유승민에게 무릎 꿇는 것’이라며 격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20일 황교안이 단식을 개시했다. 나는 단식 전후 황교안과 유승민 측을 오가며 물밑 조정을 했다. 그 결과 황교안이 단식 직후 3원칙을 수용한다는 메시지를 재차 냈다. 보다 구체적인 표현이 들어갔다. 내가 보기엔 유승민 측 요구를 80%는 받아들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유승민 측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입장이었다.”
유승민 측은 왜 그렇게 표현의 싱크로율에 집착한 것일까.
“추상적 표현으로 통합하면 나중에 토사구팽이 될 수 있다고 불안해한 듯하다. 결국 유승민계는 ‘새로운 보수당’을 창당하고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창당을 말리는 나에게 새보수당 의원들은 ‘당명을 새보수당이라고 한 것 자체가 통합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
그때 힘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 12월로 접어들면서 돌파구가 절실했다. 통합 의지가 강한 정병국 의원과 만나 ‘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를 즉각 발족시켜 통합 프로세스를 앞당기자고 합의했다. 그런데 또 암초가 생겼다, 새보수당은 한국당과 1대1 통합을 원했지만, 한국당은 안철수계 등 다른 세력도 넣고 싶어 해 갈등이 이어졌다. 통추위원장을 대학 총장급 명망가로 모시기로 했는데, 이렇게 갈등이 커지니까 고사하더라.”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출범식. 오른쪽 세번째가 박형준 위원장. [연합뉴스]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출범식. 오른쪽 세번째가 박형준 위원장. [연합뉴스]

그래서 어떻게 했나.
“정병국이 ‘당신이 통추위원장 총대를 메고 돌파하라’고 권했다. 황교안도 동의하더라.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새보수당이 ‘왜 통추위가 통합 논의의 중심에 서나’고 반발한 것이다. 유승민도 나를 황교안 쪽에 기운 인사로 여기는 듯했다. 그의 측근 지상욱 의원이 내게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오해다. 나는 보수 통합신당이 혁신하려면 고령 정치인 대신 젊은 인재들이 절실한데 그 공급원이 새보수당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새보수당을 통합의 핵심 주체로 밀었는데도 황교안 편이라고 오해받으니 힘들더라. 이게 첫 번째 큰 고비였다.”
한국당은 어땠나.
“한국당은 당내 주류들에다가 유튜브 보수 논객들까지 황교안에게 ‘새보수당에 무릎 꿇는 식의 통합은 안 된다’고 압박했다. 그 결과 한국당도 운신의 폭이 작아져 속을 태웠다. 일례로 나는 ‘공천은 통합 뒤 해야 한다’며 공천관리위원회 발족을 연기하라고 황교안에게 요청했다. 황교안은 12월로 예정됐던 공관위 발족을 한 달 넘게 미뤄줬지만, 1월 중순이 되자 ‘더는 힘들다’고 해서 한국당 단독 공관위가 출범했다. 새보수당이 반발한 건 물론이다. 다행히 김형오 공관위원장이 새보수당 측에 ‘황교안이 공관위에 영향을 행사할 여지를 차단했다. 통합 뒤 공천에서 절대 불리하지 않을 거다’고 설득해 위기를 넘겼다. 실제로 황교안은 공관위원을 한 명도 추천하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사건이다. 야당 대표가 공관위에 자기 사람을 한명도 못 심은 적은 없었다.”
새보수당이 섭섭함을 좀 풀었겠네.
“그렇다. 새보수당은 공관위에 반발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당 일각에서 반발했다. 공관위원 중 친박이 전무하다고 트집을 잡더라. 그러나 여론을 의식해선지 결국 잠잠해지더라.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황교안 종로 출마 논란’이 터졌다. 공관위에서 일방적으로 ‘종로에 출마하라’고 요구해버리니 황교안 측은 ‘등 떠밀려 나가는 형국이 됐다’며 불쾌해했다. 결국 대승적 차원에서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그게 두 번째 고비다. 워낙 힘들어 1주일간 몸살을 앓았다. 그래도 물밑 조정을 계속하니 전환점이 마련됐다.”
전환점이란.
“새보수당 쪽에서 하태경·정운천 의원이 통합에 열의를 보이며 헌신하기 시작한 거다. 그 결과 황교안과 유승민 회동을 추진해 통합에 마침표를 찍자는 단계까지 갔다. 그런데 돌연 유승민이 통합 대신 ‘선거연대’론을 들고나오더라. 절망감이 들었다. 한국당도 당황했다. 이게 세 번째 고비였다.”
그랬지만 며칠 뒤 유승민이 한국당과 ‘신설 합당’ 선언을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유승민의 선거연대론을 놓고 새보수당 내에서 격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의원들 절대다수가 선거연대 아닌 통합을 원했다는 것이다. 바깥에서도 통합 요구가 강했기에 유승민이 통합 선언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도 유승민과 황교안은 여태껏 만나지 못했다.
“유승민이 통합을 결단한 뒤 황교안에게 만남을 제안했다. 그런데 하필 황교안이 종로 출마를 선언한 시점(7일)이라서 유승민에게 답신을 제때 못했다. 이런 바람에 유승민이 황교안과 회동 없이 홀로 합당을 선언하게 된 거로 보인다. 그 뒤에도 두 사람이 계속 통화가 안 되고 있는데 속히 만났으면 한다.”
황교안이 처음부터 통합에 긍정적이었다고 하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황교안은 지난해 2월 대표가 되면서부터 통합을 내걸었다. 그때부터 나랑 논의를 해왔다. 나는 국회의원(2004~08년) 시절부터 황교안과 테니스 친구로 지내 편히 얘기하는 사이다. 황교안이 대표가 된 뒤 내게 자문하기에 ‘통합을 사명으로 삼으라’고 하니 동의하면서 연설할 때마다 ‘통합’을 역설했다.”
황교안의 리더십이 결단력 약하고 타이밍 감각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은데.
“본인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인 리더십이 아니라 한국당이 필요에 따라 세운 리더십이다. 그래서 일방적인 지시 대신 설득으로 끌고 가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황교안 얘기를 직접 들어보면 실감 난다. 내게 ‘새보수당과 조금 대화하는 기미만 보여도 유승민한테 끌려다닌다고 욕하는 문자폭탄이 어마어마하게 날아오고 밤에도 항의 전화가 수없이 온다. 정말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하더라. 내가 그의 휴대전화를 흘끔 봤는데 문자폭탄이 엄청나게 쌓였더라.”
김문수 전 경기지사나 우리공화당 등 이탈한 우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은 합류할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당을 이탈했다가 이틀 만에 복귀했다. 문재인 정권에 맞서려면 통합신당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대의와 민심의 요구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함께할 가능성이 남아있나.
“어렵다. 그러나 이쪽에 이미 안철수계 인사들이 합류한 걸 눈여겨봐야 한다. 안철수계 의원들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개별적으로 우리 쪽에 오고 싶다는 뜻을 전한 의원들도 있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