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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부동산 포박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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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경록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장

김경록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장

주택은 필수재와 투자재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주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화이지만 주택가격이 오르면 돈을 벌 수도 있다. 주택정책의 어려움은 주택이 갖고 있는 모순된 듯한 이 두 가지 특성에서 비롯된다. 주택시장이 투자재에 치우치면 사람들의 주거가 불안정해지고, 필수재에 치우치면 시장 기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이 필수재보다 투자재 치우쳐 #당국의 의도치 않은 공짜 풋옵션 #풋옵션 비용 부과와 필수재 강화

지금은 주택 투자로 돈을 벌어보려는 투자재에 치우쳐 있다. 역설적이게도 작금의 상황은 당국이 주택가격과 주거환경을 안정시키고 경기를 조절하기 위해 주택정책을 활용한 결과다. 주택 관련 대출이나 보증 인프라가 잘 마련되어 있으며, 주택을 처분하지 않고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주택연금 제도도 있다. 혹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경기 후퇴를 우려해 세금 정책이나 규제 완화가 뒤따른다. 집값이 오를 때는 안정시키고 하락할 때는 부양책을 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주택가격은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2000년대 이후 주택가격은 짧은 하락과 긴 상승이 이어지면서 꾸준하게 올랐다. 우리나라 주택가격지수는 2003년 카드사태 이후 5분기 동안 2.7% 하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3분기 동안 하락했으나 하락 폭은 1.8%에 그치고 이후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과 영국이 각각 18%, 16% 하락한 것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 주택가격은 주식에 비해서도 변동성(위험)이 월등하게 낮고 수익은 더 높다.

이처럼 가격 하락 폭이 제한되어 있으면서 꾸준히 상승하는 자산은 차입해서 투자하는 데 제격이다. 당국은 주택을 필수재로 간주하여 가격을 안정시키려 했으나 정작 사람들은 투자재로 생각하게 된 이유다. 의도치 않은 결과다. 이는 정책당국이 주택투자자에게 가격 안정이라는 풋옵션(put option)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구조를 살펴보자.

주식의 경우 풋옵션을 사면 주식가격이 하락할 때 돈을 벌고 상승하면 수익은 없다. 따라서 주식을 보유하면서 풋옵션을 사면 주가가 하락하면 원금을 지키고 상승하면 돈을 버는 수익구조가 된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가격 하락은 막아주고 적정한 가격 상승은 용인하는 행태가 이와 유사하다. 문제는 이 구조에서 당국은 주택투자자들에게 풋옵션을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세금 감면 등 정책 비용이 발생한다.

당국이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면서 풋옵션을 주는 이유는 주택이 필수재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가계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주택가격 급등락의 부정적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계와 정책당국 등 사회 전체가 부동산에 포박(captured)되어 있다.

반면 미국은 가계자산에서 주식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주가가 급락하면 중앙은행(Fed)이 적극적인 금리 인하로 대응한다. 이를 일컬어 페드(Fed)가 풋옵션을 공짜로 준다고 해서 페드풋(Fed put)이라 한다. 미국은 주식에 포박된 사회인 셈이다. 그래서 자본시장 체계, 다양한 기업 생태계 등 주식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

주택시장이 투자재 성격에 치우치면 사회의 갈등이 커진다. 해법은 두 가지다. 풋옵션을 부여하는 대가를 수취하여 투자재로서의 유인을 줄이는 한편 필수재로서의 성격을 가격 안정보다 주거 안정에 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안정적인 가격 움직임에서 투자 수익을 취하는 데 대해 적정한 비용(세금)을 부과하고 무엇보다 그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혜택이나 징벌의 관점으로 풀었다 조였다 하면 안 된다.

필수재 기능과 관련해서는 공공주택과 소형 평수를 공급하여 집값을 낮춘다. 평당 3000만원 30평이면 9억원이지만 10평이면 3억원이다. 게다가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고가 주택의 가격 변동은 주거 안정과 관련이 적으므로 공공적 편익을 누리는 데 대한 적정한 비용을 받고 공정한 거래질서를 만들면 된다.

부동산에 포박된 사회와 부동산의 투자시장화는 서로 강화작용을 해왔다. 포박된 사회는 부동산 투자를 이끌고, 투자수익은 가계 부동산 비중을 높여 다시 포박을 가져왔다. 저성장·초고령사회 진입이라는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제 부동산 포박을 풀어야 한다.

김경록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