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노부모 기다리는데…우한교민 지키려 귀국 접은 韓의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한국으로)가려고 짐까지 다 쌌는데 남은 교민들이 많다는 소리에 귀국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제 직업이 그러니까(의사이니까) 책임감 때문에 남게 된 거죠.”

17일 전화 인터뷰..“교민들 심리적 안정감 느껴” #“교민 의료지원..이틀간 세 명 전화로 진료하고 약 처방”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 남은 100명 가량의 교민 가운데 성형외과 의사인 이모(50) 원장이 있다. 이 원장은 5년간 우한 병원에서 성형수술 환자를 진료해왔다. 이씨는 한국 정부가 보낸 세 차례의 귀국 전세기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우한에 남은 유일한 한국인 의사다. 그는 왜 우한을 지킬까.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중국 곳곳의 방역 작업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중국 곳곳의 방역 작업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이씨는 3차 전세기가 올 때 모든 교민이 철수하는 상황이라고 해서 짐을 다 쌌다. 그런데 영사관과 한인회에서 “우한 교민 중 의사가 한 명밖에 없는데 당신이 남으면 심리적으로 교민에게 안정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잔류를 요청했다. 이 원장은 17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남은 교민들이 많다는데, 의사가 저 밖에 없다는데, 어떻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고민 끝에 잔류를 선택했다. “빨리 들어오너라. 왜 안 오느냐”는 한국의 노부모의 다그침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고 설득했다.

이 원장은 “많은 교민들이 안도감을 느낀다는 얘기를 들었다. 신체적 불편을 호소하는 교민을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3차 전세기를 통해 귀국한 교민들이 12일 오전 김포공항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공항사진기자단]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3차 전세기를 통해 귀국한 교민들이 12일 오전 김포공항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공항사진기자단]

이 원장은 16일 교민 진료를 시작했다. 원래 총영사관에 마련된 무료진료소에서 진료하려고 했으나 길이 통제돼 집에서 진료했다. 16~17일 이틀간 3명의 환자를 전화로 문진하고 약을 처방했다. 이 원장은 “다들 신종 코로나 의심 증상은 없었다. 한 명은 위염을, 두 명은 두통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영사관에서 고혈압 약 등을 교민 집으로 배달했다. 영사관엔 종합감기약과 항생제, 소화제 등의 비상약이 준비돼 있다. 한국 정부가 3차 전세기로 보낸 것들이다.

이 원장은 당초 영사관에 마련된 무료 진료소에서 진료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우한시가 통제를 강화하면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 원장은 “우한 정부에서 이번 주말까지 유증상자를 찾아내려고 아파트 단지 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출입이 전혀 안 된다”고 말했다. 영사관에서 통행증을 발급해주면 무료진료소로 나가서 진료할 예정이다. 거기에는 청진을 하고 체온 ·혈압을 잴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이 원장은 화상통화를 통해서 문진해서 신종코로나 의심증상이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지난 6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한 병원 격리 병동에서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등에 쓰인 글자는 보호복 착용으로 개인 식별이 어려워진 의료진의 이름 또는 별명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한 병원 격리 병동에서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등에 쓰인 글자는 보호복 착용으로 개인 식별이 어려워진 의료진의 이름 또는 별명이다. [로이터=연합뉴스]

현재 우한에 남은 교민들은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을 정도로 심리적 스트레스가 크다고 한다. 이 원장은 "모든 교민을 한 군데(위챗 그룹 채팅방)에 모으고 있다. 70여명이 모였다”며 “아직 (신종코로나) 의심환자는 없지만 자가 격리로 인한 운동부족을 호소한다. 스트레스까지 겹쳐 두통 등 여러가지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이 원장은 “가장 큰 우려는 폐렴이 진행돼서 중증이 돼 호흡곤란이 올 경우 상당히 위험하다. 사망까지 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교민에게 신종코로나 의심 증상이 생기면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우한 시내 병원을 섭외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다고 한다.

이 원장은 6년 전 중국으로 건너갔고, 1년 간 광둥성의 광저우에 있었다. 5년 전 우한으로 와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