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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윤규 건축의 삶을 묻다

세상 최초의 건축은 꽃과 세포, 그리고 개미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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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자연은 건축 교과서

지난해 봄 완공된 카타르 국립박물관 정경.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했다. ‘사막의 장미’라는 꽃 모양의 광물 결정체를 모티브로 했다. [사진 현대건설]

지난해 봄 완공된 카타르 국립박물관 정경.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했다. ‘사막의 장미’라는 꽃 모양의 광물 결정체를 모티브로 했다. [사진 현대건설]

21세기 건축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자연이다. 자연에 대한 탐구는 미래 사회를 바꾸는 다양한 기술과 접목된다. 단순히 형태적 모티브를 따오는 단계를 넘어 생물의 기본 구조와 원리, 메커니즘을 건축에 끌어들이고 있다. 건축은 아니지만 엉겅퀴 씨앗의 갈고리 구조를 모방해 만든 일명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 테이프가 단적인 예다. 게코도마뱀·소금쟁이·연꽃잎 같은 생물체의 작동 원리를 재창조한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의 모든 생명체를 탐구하는 자연 탐구 테크놀로지가 건축의 주요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막의 장미’서 영감 얻은 박물관 #비눗방울 이미지를 따온 수영장 #강 물결 따라 움직이는 도시공원 #자연과 첨단기술의 접목 잇따라

지난해 봄 완공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의 카타르 국립박물관은 이런 흐름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연에서 발췌한 형상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식의 건축을 창출했다. 장 누벨은 사막의 식염수 지역에서 발견된 사막의 장미(Desert Rose)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막의 장미는 건조한 해안지역에서 발생하는 꽃 모양의 광물 결정체로, 바람·물보라·모래 등이 천 년에 걸쳐 빚어낸 최초의 건축 구조라 할 수 있다.

바람·바다·모래 등이 오랜 세월 만들어낸 ‘사막의 장미’. [중앙포토]

바람·바다·모래 등이 오랜 세월 만들어낸 ‘사막의 장미’. [중앙포토]

장 누벨은 사막이라는 자연이 만들어낸 복잡하고 시적인 생성물을 추상화했다. 칼날 같은 꽃잎이 무작위로 겹치는 대형 구조물로 재현했다. 강철 구조 위에 섬유 시멘트로 만들어진 비늘 원판(disc)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디지털 이미지를 조합했다. 이 단색의 모래색 건축은 내부와 외부를 명확하게 가르지 않으며, 기존의 기하학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형태를 자연으로부터 뽑아냈다. 이 기하학 원판들은 사막에서 거대한 그늘을 만들고, 마치 유토피아 같은 열린 도시 구조로 재탄생했다.

현대 건축은 이렇듯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하학에 관심이 많다. 주름이나 카오스·프랙털 같은 자연 형상을 재료로 삼고, 여기에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수학 알고리즘 등 다양한 기법을 접붙인다. 이를테면 생체모방 건축쯤 된다.

에어컨 없어도 습도·온도 자동조절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선보인 아쿠아 센터. 비누 거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진 토머스 헤더윅]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선보인 아쿠아 센터. 비누 거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진 토머스 헤더윅]

건축계는 ‘보로노이 알고리즘(Voronoi algorithm)’을 주목한다. 위성 내비게이션, 동물 서식지 추적, 도시 계획 등에 활용되는 비선형적 기하학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선보인 아쿠아 센터가 대표적 사례다. 세포 구조처럼 자연의 반복적·연속적 형태에 나타난 상호작용의 알고리즘을 형상화했다. ‘워터큐브’로 불리는 아쿠아 센터는 비눗방울 거품이 상자 안에 갇힌 모습과 구조를 하고 있다. 2만2000개 빔과 1만2000개 마디를 연결해 거품이라는 자연 이미지를 3차원적으로 모사한 ‘거품 상자’를 완성했다.

우리가 자연을 탐구하는 이유는 단순히 겉모양을 모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생물의 탄생·진화·작동 원리까지도 끌어들여 보다 쾌적한, 보다 효율적인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짐바브웨 출신의 환경건축가 믹 피어스의 발상은 지금도 새롭다. 그는 흰개미집의 미세기후 조절기법에 착안해 연돌 효과(건축물 내·외부 온도 차이로 인해 공기가 움직이는 것)에 따른 자연냉방을 선보였다. 짐바브웨는 밤낮 일교차가 매우 큰 나라다. 일반적으로 온도 조절은 기계장치나 단열재로 해결하지만, 피어스는 지상에 굴뚝처럼 솟은 집을 짓고 사는 흰개미 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진흙과 개미 배설물·타액으로 만들어진 흰개미 집은 위쪽으로 난 구멍을 통해 더운 공기를 배출시키고 아래쪽으로 시원한 공기를 끌어들여 습하고 더운 우기에도 쾌적한 습도·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피어스는 한 채의 높은 타워를 짓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남과 북을 향해 각기 마주 보는 9층짜리 건물 두 채를 짓고, 건물 사이에 덮개를 씌우고, 또 그 아래쪽에 팬을 만드는 방식을 선택했다. 한밤의 차가운 공기가 바닥 열교환기를 통해 들어와 낮 동안 데워진 사무실을 식히고, 또 낮에는 후덥지근한 사무실 공기를 상부 굴뚝을 통해서 내보내는 방식이다. 최신 기계설비를 쓰지 않고도 냉각과 환기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뉴욕 허드슨 강에 짓고 있는 ‘피어55’.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중앙포토]

뉴욕 허드슨 강에 짓고 있는 ‘피어55’.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중앙포토]

친환경 건축은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우리 나름의 도전이다. 도로를 정비하거나, 건축물을 재활용하는 단계를 넘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차원이다. 뉴욕 허드슨강 부두에 피어55로 불리는 연꽃 모양 공원을 보자.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과 조경가 시그니 닐센이 협업해 2021년 완공할 예정이다. 강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흘러갈 것 같은 공원이다. 서로 다른 높이의 버섯 모양 콘크리트 기둥 280개가 반복되는 형태인데, 각각의 기둥 위에는 큰 화분이 놓여 있다. 각각의 화분은 서로 패턴으로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풍광을 이루어낸다. 도시인들은 물 위에 떠 있는 인공공원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지구온난화, 쓰레기 문제 등 대비해야

자연에 대한 탐구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예컨대 벨기에 건축가 빈센트 칼보가 제안한 가상 프로젝트 ‘릴리패드(Lilypad)’가 흥미롭다. 2100년 지구온난화로 전 세계가 물에 잠겼을 때를 가정해 만든 파라다이스 도시의 건축물이다. 절반은 수중 도시이고 절반은 육상 도시인 지구를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다니는 형태다. 이 떠 있는 구조는 아마존 빅토리아 수련 잎에서 영감을 얻었다. 릴리패드는 이산화탄소와 쓰레기를 재활용해 자체적으로 산소와 전기를 만드는 친환경적인 구조로, 향후 닥쳐올 생태계 위기에 적합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한다.

현대 도시는 기계적 건축물로 채워졌다. 많은 건축가는 그곳에 숨겨진 위험을 감지한다. 그 대안으로 자연을 닮은 건축을 제안한다. 오스트리아 건축가 훈데르트바서가 그 최전선에 서 있다. 그는 가장 자연스러운 땅의 집, 땅의 형상을 건축화·도시화하자고 주장한다. 나무가 심어진 창, 자연 지형처럼 굽이치는 바닥, 땅에서 떨어진 상층부에서도 항상 땅을 느낄 수 있는 옥상정원 등을 만들자고 말한다.

현대 도시의 한복판에 산으로 상징되는 자연을 끌어들인 마운틴스케이프 개념도. [사진 장윤규]

현대 도시의 한복판에 산으로 상징되는 자연을 끌어들인 마운틴스케이프 개념도. [사진 장윤규]

필자는 이를 응용해 마운틴스케이프(Mountainscape) 도시를 구상했다. 자연 지형의 산을 모티브로 삼고, 그 산 안에 자연친화적인 도시 블록을 만들었다. 자연의 에너지를 최대한 보존하는 산과 땅의 원리를 도심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훈데르트바서는 궁극적으로 신체·생물·물질의 유기적 순환, 자연·장소·건축·인간의 통합을 목표로 삼았다. 그 통합에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윤리적 각성이 동반돼야 한다. 그는 한마디로 인간은 자연에 잠시 들른 손님이며, 당연히 자연에 예의를 갖추라고 요구한다. 그가 1993년 제시한 ‘자연과의 평화조약’은 갈수록 병들고 있는 지구촌 산과 강, 그리고 바다에 대한 우리의 반성을 매섭게 다그친다.

인간은 자연의 손님, 지구의 가해자

훈데르트바서

훈데르트바서

건축가 훈데르트바서(1928~2000·사진)는 화가로도 유명하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외치며 환경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그의 자연주의 사상은 ‘자연
과의 평화조약’ 7가지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1  우리는 자연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자연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2  우리는 지붕이나 길처럼 열린 하늘 아래 수평한 모든 것은 자연에 속한 것이라는 원리에 따라 인간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파괴했던 자연의 영역을 돌려줘야 한다.
3  자연발생적인 식생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다.
4  인간의 창조와 자연의 창조는 재결합돼야 한다. 이들의 분리는 자연과 인간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5  자연의 법칙에 조화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6  우리는 단순히 자연의 손님일 뿐이며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인간은 지구를 파괴해온 가장 위험한 가해자이다. 인간은 자연이 재생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태적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7  인간 사회는 다시 쓰레기없는 사회가 돼야 한다. 자신의 쓰레기를 존중하고 재활용하는 사람만이 죽음을 삶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이야말로 순환을 존중하고 생명이 재생돼 지구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장운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운생동 건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