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1860~1920) 선생의 손자(3남의 아들)이자 유족 대표로서 그동안 활발하게 선양 활동을 해온 최 발렌틴(82) 한국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이 지난달 18일 독일에서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가 12일 밝혔다.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1879~1910) 의사가 한반도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할 때 사용한 권총을 제공하고 의거를 막후에서 기획했고 러시아에 이주한 한인들을 도와 현지에서 '페치카(벽난로) 최'로 존경받아왔다.
'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의 손자 #최 발렌틴 한국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 #4월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 앞두고 #1월 18일 독일서 경추골절 사고, 중태 #연금으로 생계 이어와 병원비 태부족 #최재형기념사업회, 급히 1만달러 후원 #모스크바 날아가 병문안, 위로 예정
러시아 모스크바에 거주해온 최 발렌틴 회장은 딸이 사는 독일에 갔다가 스키장에서 사고를 당해 경추 1, 2번이 골절됐다고 한다. 최 회장은 독일 현지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았으나 현재까지 의식불명 상태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고 기념사업회가 전했다.
올해는 일본이 1920년 4월 연해주 우수리스크 일대의 독립운동가들을 학살한 4월 참변 100주년이자,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의 해다. 이런 뜻깊은 해에 최 선생의 유족대표가 큰 사고를 당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가난한 독립운동의 후예가 대체로 그러하듯 최 회장 가족도 막대한 수술비를 대지 못하고 있어 가족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고 한다.
최 회장의 아들 최 표트르는 "연금으로 어렵게 생활해온 아버지의 치료비를 가족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눈앞이 캄캄하다"며 서울에 있는 최재형 기념사업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수술비와 입원비, 항공 이송비로 이미 5만 유로(약 6500만원) 이상이 나왔고, 앞으로 계속 발생할 재활치료비도 감당이 어렵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쓴 문영숙(작가) 이사장은 "지난해 최 회장은 대한민국 국적을 받았고 올해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식 행사와 '제1회 최재형 상'을 후손 대표로 직접 시상하기로 했는데 불의의 사고를 당해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에 최 회장과 많은 행사를 함께 했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최재형 선생의 옛 저택이 있던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갔을 때는 빗속을 뚫고 흙투성이가 된 채 최재형 선생의 집터를 같이 찾아 헤맸다. 비탈길에서 나의 손을 잡아주고 끌어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기념사업회는 십시일반 후원으로 어렵게 운영되는데 급히 1만 달러라도 모아 최 회장 가족에게 전달하기로 했다"며 "안병학 기념사업회 홍보대사(한나래인터내셔날 대표)의 도움으로 14일 모스크바로 함께 날아가 최 회장을 병문안하고 가족을 위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최 회장은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최재형 선생의 손자다. 1995년 한국독립유공자 후손협회를 설립할 때부터 회장을 맡아왔다. 이 협회에는 이범진·이동휘·김경천·허위·김규면 등 굴지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 22명이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최 회장은 그동안 유족연금을 받아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모스크바 독립유공자 후손협회 일까지 도맡아왔다. 러시아 고려인연합회 신문기자와 카자흐스탄의 고려일보 모스크바 주재 기자로도 일하면서 조부인 최재형 선생을 세상에 알리는 큰 역할을 했다.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항일 독립운동’ 전 3권을 출간했을 정도로 이번 사고 직전까지 고려인들의 항일 독립운동 역사를 재조명하는 활동에 매진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6월 러시아 하원 연설에서 "안중근·홍범도·최재형·이상설 선생 등 수많은 한국의 독립투사들이 이곳 러시아에 망명해 국권 회복을 도모했다"고 평가했다.
앞서 2017년 9월 문 대통령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최재형·이상설·이위종·이동휘·김경천 등 독립유공자의 후손 등을 오찬에 초대했다. 당시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분들께 대한민국이 예의를 다해 보훈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고, 최 회장은 "고국에서 큰 관심과 배려를 해주시니 참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최재형 선생의 현손(玄孫·고손자)인 최 일리야(18)는 인천대가 장학생으로 초청해준 덕분에 지난해 9월부터 인천대 어학원에 입학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