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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 핑계도 못댈 코로나···시진핑이 “통치시험” 입에 담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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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드디어 나타났다.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디탄 의원을 찾았다 [신화=연합뉴스]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디탄 의원을 찾았다 [신화=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현장에 처음 등장했다. 시 주석은 10일 베이징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 환자가 치료를 받는다는 디탄(地壇) 의원과 베이징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나오고 있는 차오양(朝陽)구의 안화(安華)리 주민센터를 찾았다. 환자와 주민을 만나며 마스크를 쓴 모습도 이날 대중에 최초로 선보였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후 약 1달 만의 일이다.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안화리 주민센터를 찾아 손 소독을 받고 있다.[신화=연합뉴스]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안화리 주민센터를 찾아 손 소독을 받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시 주석은 지난달 20일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병 확산 추세를 억제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후 베이징에서 두문불출(?)했다. 간간이 언론에 얼굴을 내보이긴 했지만,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선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특유의 만기친람(萬機親覽) 행보는 온데간데없었다. 10일 현장 방문에 대해 1000명 넘는 사망자가 나온 상황에서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움직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부당한 외세 간섭 프레임 코로나에 안 먹혀 #중국 인민 '코로나 혼란' 만든 게 정부라 인식 #FT "몇 주안에 못 막으면 중국판 체르노빌 위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베이징 안화리 주민센터 앞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베이징 안화리 주민센터 앞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시 주석은 왜 그랬을까. 빅터 시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는 이렇게 본다. "시 주석은 바이러스 통제에 실패할 경우 대중의 분노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우려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 주석의 발언이 있다. 그는 3일 중국 최고 지도부 회의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두고 한 말이다.

(우리의) 국가 통치 체계와 능력에 대한 일대 시험."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차오양구에서 신종코로나 관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차오양구에서 신종코로나 관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이 말, 의미가 작지 않다. 시 주석 스스로가 신종 코로나 사태가 정권에 미칠 영향을 말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국가 통치체계와 능력에 대한 시험’ 이란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사실상 신종 코로나를 자신과 공산당을 위협하는 ‘위기’로 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시 주석 집권 이후 정치적 위기가 없었던 게 아니다. 특히 지난해는 2012년 집권 이후 7년 만에 가장 큰 어려움이 찾아왔다. 2개의 파고가 동시에 휘몰아쳤다. 미·중 무역 전쟁과 홍콩 민주화 시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관세 공격으로 중국 경제는 휘청거렸다. 2019년 경제성장률은 6.1%로 199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당시는 ‘천안문 사태’ 직후 국제사회가 가한 제재로 중국 경제에 큰 충격이 가해졌던 시기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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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시작된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강경한 태도는 ‘일국양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중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양안(兩岸)’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홍콩의 사례를 본 대만 국민은 지난달 총통 선거에서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총통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하나의 중국’을 추구하는 중국 공산당에 뼈아픈 결과다.

그럼에도 시 주석은 이를 ‘위기’로 규정한 적이 없다. 그랬던 시 주석이 신종 코로나는 시험으로 규정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무역전쟁·홍콩 시위와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는 중국 인민의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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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동일한 프레임을 설정했다. 바로 ‘외세의 부당한 간섭’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의 굴기’를 두려워하는 미국의 공세로 봤다. 홍콩 시위도 마찬가지다. 민주화 시위대를 옹호하는 서방 정부와 언론 비판은 일국양제라는 중국 고유의 체제를 부정하는 ‘내정간섭’으로 규정했다.

이런 프레임에 중국 국민이 동의했다. 많은 중국인은 미·중 무역 전쟁으로 생활이 조금 힘들어지더라도 어느 정도는 참고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G1이 되길 바란다. 홍콩 시위를 보는 시선도 비슷하다. 중국인 다수가 홍콩 시위대가 시위 과정에서 미국의 성조기를 들고나오는 것을 보고 “저들의 나라는 미국이냐”며 불편해하는 시선이 있던 것이 사실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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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이 두 위기를 정권의 위협으로까지 여기지 않은 결정적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이다. “시진핑 주석은 미·중 무역 전쟁과 홍콩 시위의 위기에서 외세의 부당함을 비난함으로써 중국 인민의 지지를 얻어냈다.”

여기엔 중국 정부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왔다는 신뢰도 작용했다. 중국인들은 공산당이 비록 일당 독재를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들의 생활 환경을 하루가 다르게 바꿔 놓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 점이 공산당이 인민의 신뢰를 얻는 가장 큰 요인이다. 미 타임지는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의 일당독재 통치체제는 단기간의 위기와 장기적 도전 속에서도 뛰어난 성공을 거뒀다”며 “이를 통해 중국 인민 수억 명을 가난에서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신종 코로나는 이런 중국 인민의 믿음을 깨뜨렸다.

10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신종 코로나 환자를 위해 마련된 임시 병원에서 환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신화=연합뉴스]

10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신종 코로나 환자를 위해 마련된 임시 병원에서 환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사망자가 1000명에 육박하고, 수만 명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감염 위험으로 밖을 돌아다닐 수도 없고, 정부의 봉쇄령으로 생필품 구하기도 어렵다.

중국 우한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실태를 외부에 최초로 알린 중국 의사 리원량(李文亮·34)이 7일 사망했다.[웨이보 캡쳐=뉴스1]

중국 우한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실태를 외부에 최초로 알린 중국 의사 리원량(李文亮·34)이 7일 사망했다.[웨이보 캡쳐=뉴스1]

그런데 혼란상을 만든 장본인이 정부라는 인식이 중국 인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의 위험을 알렸다가 중국 경찰의 탄압을 받은 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숨진 의사 리원량(李文亮) 사건은 이런 인식에 불을 지폈다. 당초 온라인상에 리원량 관련 글을 검열해 삭제하던 중국 당국은 인민들의 슬픔이 커지자 태도를 바꿔 그를 ‘영웅’으로 미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중국인이 리 의사 사건을 ‘내부고발자의 억울한 죽음’으로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정부는 인민들이) 권위주의 통치에 복종하는 대신 그 보상으로 안보와 경제적 성장을 제공해왔다”며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발생은 이와 같은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구축해온 신화를 약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이 코로나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밀 앤덜리니 파이낸셜타임스(FT) 아시아 에디터는 10일 칼럼에서 "시진핑 주석이 코로나 사태를 수 주안에 잘 해결하지 못하면 중국판 체르노빌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 FT]

자밀 앤덜리니 파이낸셜타임스(FT) 아시아 에디터는 10일 칼럼에서 "시진핑 주석이 코로나 사태를 수 주안에 잘 해결하지 못하면 중국판 체르노빌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 FT]

NYT는 “7년간 시 주석 자신이 구축해온 권위주의 체제가 시험대에 올랐다”며 “(코로나 사태로 인한)보건 위기가 정치적 위기가 되고 있다”고 봤다. 시 주석 1인 체제의 중국으로선 코로나 사태가 악화하면 시 주석은 물론 공산당의 평판과 통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NYT는 이번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임기 제한 규정을 없애고 2022년 까지 집권을 연장하려 해온 시 주석의 계획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중국 정치학자 룽젠은 “천안문 사태 이후 최대 위기”라고 까지 본다.

 10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코로나바이러스 중증환자 치료 의료진과 화상 통화를 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신화=연합뉴스]

10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코로나바이러스 중증환자 치료 의료진과 화상 통화를 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신화=연합뉴스]

중요한 건 시 주석의 행보다. 사건 발생 1달이 다 돼서야 현장을 나섰다. 하지만 ‘시 주석은 어디로 갔는가’란 제목의 서구 언론의 기사가 쏟아진 이후다. 코로나 현장에 등장했다곤 하지만 베이징에서의 활동일 뿐이다. 사건의 중심이며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는 후베이성 우한에는 리커창 총리를 보냈다. 자신은 10일 화상 전화로 우한에 있는 의료진과 화상 통화만 했다.

자밀 앤덜리니 파이낸셜타임스(FT) 아시아 에디터는 10일 칼럼에서 "중국 역사에선 번성하던 나라도 '천명(天命)'을 잃으면 쇠퇴하고 권력을 다음 왕조에 넘기는 '왕조 주기(dynasty cycle)' 패턴이 있다"며 "자연 재해와 기근·역병·반란 등은 왕의 힘이 다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고 지적한다.

미국 HBO 드라마 '체르노빌' 포스터.[사진 왓챠플레이]

미국 HBO 드라마 '체르노빌' 포스터.[사진 왓챠플레이]

앤덜리니 에디터는 그러면서 "만일 시 주석이 향후 몇주 안에 (신종 코로나 사태를) 신속하게 차단하지 못하면 독재국가의 거짓과 부조리를 만천하에 드러나는 '중국판 체르노빌'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를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비유한 것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 사태 속에서 많은 중국인은 미국 HBO의 2019년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며 분노하고 있다. 원전 폭발 사건 초기 상황을 은폐·축소해 많은 주민을 위기로 몰아넣은 소련 간부들의 모습이 코로나 확산 초기 우한에서 있었던 일과 닮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BBC 캡처]

[BBC 캡처]

코로나 사태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일 사망자 수는 연일 경신 중이다. 시 주석의 행보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중국 인민은 우한을 '제2의 체르노빌'로 여기며 혼란과 분노를 더 키울 것이다. 시 주석은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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