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정식의 이코노믹스

디지털 위안화 앞세워 미국 달러화 패권에 도전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새 국면 접어든 중국의 국제금융 전략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중국은 올해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디지털 통화를 발행해 일부 지역에서 현재의 위안화와 함께 병행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3년 전 비트코인 광풍이 불 때 디지털 통화 거래를 금지했던 중국이 세계 최초로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겠다니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양한 고려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위안화 국제화를 비롯한 중국의 국제금융 전략이 가장 중요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올해 디지털 통화 시범 사용 #미국 달러화 주도권 빼앗아 오고 #실시간 감독해 국부 유출도 막아 #한국 비롯한 아시아 국가 영향권

이런 변화의 배경은 디지털 시대의 도래다. 그동안 화폐는 변천을 거듭했다. 과거에는 금화·은화와 같은 상품화폐가 널리 통용됐고 지금은 중앙은행이 찍어내는 불환지폐가 일반화돼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이제 지폐에서 디지털 통화로 변화를 이끌고 있다. 블록체인이 디지털 통화의 위·변조 우려를 해소하면서다.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디지털 통화는 결제 과정에서 중개기관 역할을 하는 시중은행을 건너뛰면서 거래비용 감소와 함께 결제 편의도 높였다. 이런 배경에서 종이 화폐의 종언에 대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통화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먼저 가치가 불안정하다. 화폐의 역할을 위해서는 가치가 안정돼야 하지만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통화는 가격 변동성이 높아 수요가 늘어나기 어렵다. 또 다른 문제는 금융과 재정에서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한다는 점이다. 민간이 발행하는 디지털 통화는 정부가 통화량을 조절해 통화가치를 안정시킬 수 없고 재정정책도 제약을 받게 된다.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을 때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역할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 입장에서는 필연적으로 비트코인과 같은 민간발행 디지털 통화를 규제할 수밖에 없다.

중국, 비트코인 거래는 금지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익명성이다. 민간발행 디지털 통화는 블록체인이라는 공개된 장부에서 거래 내용이 모두 익명으로 처리된다. 이런 익명성 때문에 마약대금 결제, 자금세탁, 불법 외환거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더구나 중국과 같이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은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자본유출과 이로 인한 외환위기 우려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 정부가 2017년 비트코인 거래를 금지한 것도 익명으로 자본이 대량 유출되면서 외환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당시 비트코인 규제에 나선 사정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면서 최근 디지털 통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민간이 발행하지만, 통화가치를 안정시킬 수 있는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의 출현이 대표적이다. 페이스북이 개발 중인 리브라(libra), 홍콩 비트 파이넥스의 테더(tether), JP모건체이스의 JPM, 미즈호의 J-코인 등이 그것이다. 이들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화와 일본 엔화 등과 연계돼 있어 가치의 변동성이 낮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민간이 아닌 중앙은행이 발행함으로써 익명성도 해소한 디지털 통화가 바로 중국 인민은행이 발행하려는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BDC)다. 디지털 통화의 장점을 살리면서 익명성과 가치의 불안정, 민간발행의 문제 등을 모두 해결한 새로운 통화다.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는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캐나다 등에서도 발행을 검토하거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통화

중앙은행 디지털통화

중국이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중국의 국제금융 전략이 숨겨져 있다. 중국의 전략은 미국의 국제금융 전략과 연관돼 있다. 미국은 지금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대미 수출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면서 미국의 국부(國富)가 중국으로 이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부를 가장 빨리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역을 통한 중상주의 전략이다. 중국은 중상주의 정책에 의해 위안화 환율을 높여 수출을 늘려 국부를 축적하려고 하고, 미국은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국제금융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자본 자유화 요구 거부

미국이 사용하는 전략은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거나 변동환율제도를 선택하게 해 환율을 높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변동환율제도를 선택하면 무역수지 흑자로 외환 공급이 늘어날 경우 환율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은 자본 자유화다. 자본 자유화가 될 경우 미국은 경쟁력 있는 금융상품을 수출할 수 있으며, 신흥시장국은 자본 유입으로 환율이 하락해 수출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 미국은 최근까지 이러한 국제금융 전략으로 한국과 일본 등 대미 무역 흑자국을 관리해 왔다. 한국도 1980년 후반 대규모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내자 1990년부터 환율제도를 변동환율제도로 바꾸었고 1992년에는 자본 자유화를 실시했다. 중국은 이미 한국의 경험을 교훈 삼아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환율제도를 고정환율제도로 변경했고 아직도 자본 자유화를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보면 중국은 현명하게 미국의 국제금융 전략에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또 다른 전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변동환율제도 선택과 자본 자유화를 하지 않자 기축통화국의 장점을 이용해 통화량을 늘리는 양적 완화 정책으로 대응했고, 결과적으로 달러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위안화가 평가절상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나아가 달러로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보유외환 가치가 떨어지는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여기에 최근에는 미국이 보호무역 장벽을 높이면서 미·중 간 경제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미·중 갈등이 무역 전쟁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이면에는 통화전쟁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이 자본자유화를 하거나 변동환율제도를 선택하기를 바라고 있다.

2027년까지 아시아 기축통화 노린다

중국은 기축통화국인 미국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30년 계획을 3단계에 걸쳐 수립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는 아시아 역내 국가가 위안화를 사용하게 하는 1단계, 2018년부터 2027년까지는 위안화가 아시아 역내 기축통화로 될 수 있도록 2단계 전략을 수립했다. 마지막 3단계는 2028년 이후 10년 동안 위안화가 미국 달러와 같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아시아 국가 간 무역 결제에 위안화 사용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한 나라의 통화가 국제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들이 있다. 통화가치가 안정화돼야 하고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 자유화를 통해 발전된 금융시장이 있어야 한다. ‘돈은 잠을 자지 않는다’는 명언과 같이 중국의 자본 자유화와 금융시장의 발전 없이는 위안화 국제화는 어렵다.

중국은 자본 자유화를 하는 순간 자본 유출로 인해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 결국 위안화 국제화와 자본 자유화로 인한 외환위기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자본 자유화 없이 위안화 국제화를 성공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중국은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의 발행에서 답을 찾고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는 익명이 아니라 실명이며 거래 추적이 가능해 중국 내국인들의 불법적인 자본유출을 막을 수 있다. 또한 비거주자들의 무역 결제나 자본거래에 있어 위안화 사용이 늘어나 위안화 국제화를 진전시킬 수 있다. 정부 간 대외거래에서도 위안화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위안화 사용 비중을 높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문제점도 많다. 중국인이 대외거래에서 거래 추적이 가능하고 탈세를 할 수 없는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를 선호할 것인지가 불확실하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의 신용창조 과정을 건너뛰고 직접 대출을 함으로써 시중 통화량 유통과정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는 불확실성도 우려된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중국의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 진전 과정과 국제통화 질서의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한국사회과학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