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망 밖 환자 11일간 CGV·남대문시장, KTX 타고 강릉 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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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환자가 15명으로 늘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일 오전 기준 3명의 환자가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이후 나흘 연속 새로운 감염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확진자가 늘면서 보건 당국 관리망 밖에 있는 환자들이 지역사회를 돌아다니는 등 ‘방역 레이더 사각지대’가 갈수록 커진다.

일본서 중국 관광가이드 뒤 입국 #12번 환자, 관리대상에서 빠져 #지하철·버스·택시 대중교통 탑승 #138명 접촉…전국 감염위험 커져 #군산 식당·이마트·목욕탕 72명 접촉 #7·8번은 우한 패션센터 한국관 근무 #전문가 “정부, 환자 동선 빨리 알려 #접촉 가능성 있는 사람 신고 받아야”

방역망에 구멍이 뚫린 대표적 사례는 지난 1일 확진 판정을 받은 12번째 환자(48세 중국인 남성)다. 일본에서 관광가이드로 활동한 이 환자는 지난달 19일 일본 오사카에서 김포공항으로 입국했다. 일본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듣고 자진 신고를 거쳐 지난달 30일 오후 5시부터 자가 격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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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째 환자는 지난달 19일 입국부터 30일 격리될 때까지 11일가량 정부 통제를 받지 않고 지역사회를 돌아다녔다. 중국 입국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능동 감시나 자가 격리 등 관리 대상이 아니었다. 이 환자는 중국을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생각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2일 브리핑에서 “(12번째 환자 역학조사 결과) 지난달 20일 증상이 발생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주 증상은 근육통이다. 호흡기 증상이나 발열 같은 증상이 뚜렷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시에 사는 12번째 환자는 지난달 20~28일 서울과 경기 부천·수원·군포 등에서 외출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서울역과 남대문시장, CGV 부천역점, 다수의 의원·약국 등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하철과 택시, 버스 등 대중교통도 여러 번 탑승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2~23일엔 KTX를 타고 강원도 강릉에 다녀왔다. 강릉에선 음식점, 커피숍, 숙소(썬크루즈리조트) 등을 오갔다. 거주 지역은 물론이고 전국 단위로 감염 위험이 커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까지 파악된 12번째 환자의 접촉자만 138명에 달한다. 이 중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부인(14번째 환자)이 확진 판정을 받고 분당서울대병원에 격리된 상태다. 부천시에 따르면 14번째 환자도 지난달 30일 이마트 부천점에 방문해 20분간 쇼핑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트에 머무르는 동안 마스크를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중 이용 시설이라 대규모 감염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추가 환자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우한서 온 8번 , 1차 음성판정 귀가 … 사흘 뒤 확진
7번째 환자(28세 남성)와 8번째 환자(62세 여성)는 중국 우한에서 칭다오를 거쳐 입국하면서 보건당국 감시망에 들지 않았다. 각각 21명, 72명의 접촉자가 생겼다. 8번째 환자는 1차 음성 판정이 나자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화를 키웠다. 이 환자는 지난달 23일 입국했고 27일 발열·기침 등이 나타났다. 이날 군산 소재 유남진내과에 들러 약 처방을 받았지만 증상이 그치지 않았다. 우한 입국자가 아니어서 병원 접수대에서 걸러내지 못했다. 병원 전산프로그램의 ITS(여행이력관리)가 우한 여행 이력을 알려주지 않았다. 칭다오 입국자였기 때문이다. 8번째 환자는 28일 군산의료원을 찾아갔고 의심환자로 분류돼 격리 조치됐다. 하지만 확진 검사에서 ‘음성’ 판정 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29일 군산 소재 음식점에  들른 뒤 이마트 군산점에 들러 장을 봤다. 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환자가 원광대병원(전북 익산)을 찾았다. 재차 의심환자로 분류된 그는 입원 중 확진 판정을 받았다.

1차 검사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사흘을 허비한 것이다. 우한을 다녀온 고위험군인데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자가 격리를 해서 증세 변화를 좀 더 관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군산시도, 질병본부도 파악하지 못했다. 게다가 민선 단체장들이 중앙정부와 손발을 제대로 맞추지 않고 독자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사례가 느는 것도 문제다. 평택·수원·부천시, 경기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부는 이에 앞서 3번째 환자와 92분간 식사를 한 6번째 환자를 밀접접촉자로 분류하지 않았다. 가족 내 2차 감염(10·11번째 환자)을 생기게 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지역사회 확산이 걱정된다. 지금은 모든 걸 확진자부터 시작해서 검사하는데 중국에서 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하니 얼마나 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오픈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민에게 정보를 많이 알려야 한다”며 “환자 동선에 해당하는 국민에게 증상 있으면 신고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고 말했다.

한편 7, 8번째 환자가 중국 우한시 국제패션센터 한국관(더플레이스)에 같이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종훈·최은경·최모란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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