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XX’ 욕없는 랩 안되나요”…‘옳은 말’하는 고교생 랩스타

중앙일보

입력 2020.02.02 05:00

'이퀄리티 랩스타' 오디션에 참가한 조태환 군이 음반 녹음 작업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퀄리티 랩스타' 오디션에 참가한 조태환 군이 음반 녹음 작업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힙합 음악에는 '마더XX' 같은 욕이 추임새처럼 나와요. 꼭 그런 말을 써야 음악을 할 수 있나요?" (문가은·17·혜원여자고등학교 2학년)

'성평등'과 '힙합'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여겨진다. 넘치는 돈과 아름다운 여성은 이른바 '스웩'(Swag·힙합 특유의 멋을 뜻하는 단어)의 필수요소로 통한다. 사냥감을 자랑하듯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모습도 흔하게 본다.

여성 차별적인 가사와 문화는 힙합 음악계의 문제로 꾸준히 지적돼왔다. 범죄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2016년 자작곡을 통해 여성 힙합 가수를 성적으로 모욕한 래퍼 블랙넛(본명 김대웅·31)은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청소년 힙합 그룹 '이퀄리티 랩스타'는 이런 관행에 반기를 들었다. 지난 30일 이들이 만든 힙합 음반〈이퀄리티 랩스타〉가 주요 음원사이트를 통해 발매됐다. 음반에는 혐오표현과 성차별 반대를 주제로 삼은 음악 2곡이 담겼다. 국내서 '성평등 랩'이 음원으로 발매된 건 처음이다.

"'나만 보면 여자 다 넘어와' 꼭 써야 하나요?" 

신경 쓰지 않고 방관하는 태도 이기적/ 그럼 대신 할게 내가 해 이 기적/ 성평등이 뭐가 더 필요해라는 말을 들을 때 화가 나지/ 피해받기 두려워 진실을 외면하지 <이퀄리티 랩스타> 2번 곡 '하나'

초등학생 때부터 힙합 음악에 빠졌다는 문가은 양은 한국 힙합의 성차별적인 가사를 꼬집었다. 문 양은 "많은 음악에서 '나만 보면 여자들은 다 넘어오지' '난 여자가 많아' 같은 가사가 나온다"면서 "꼭 이런 가사만 써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마더XX' 같이 거친 욕설도 거의 추임새처럼 사용된다"면서 "요즘 젊은 래퍼들은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바꿔야 할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서울시교육청은 성평등 래퍼를 뽑는 오디션 프로젝트를 통해 최종 우승자 6명을 선발했다. '이퀄리티 랩스타'는 우승자 6명이 한 팀이 돼 만들었다. 2달여 동안 랩 경쟁을 벌인 참가자들은 성평등 강의도 들었다.

조대현(18) 군은 "오디션에 참가하기 전에는 성차별 같은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면서 "그저 힙합 음악을 좋아해서 참여하게 됐는데, 그동안 여러 강의를 들으면서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퀄리티 랩스타' 오디션에 참가한 문가은 양이 한 시민단체의 성평등 관련 교육을 듣는 모습. [유튜브 캡처]

'이퀄리티 랩스타' 오디션에 참가한 문가은 양이 한 시민단체의 성평등 관련 교육을 듣는 모습. [유튜브 캡처]

멘토를 맡은 김민철 교사(래퍼 '올드스쿨티쳐')는 "학생들이 처음에는 성평등 문제에 대한 가사를 쓰길 어려워했지만, 가사를 고치고, 강의를 들으면서 많이 성장했다"면서 "음악을 좋아해서 참가한 아이들이 성평등에 대한 문제도 고민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이퀄리티 랩스타의 활동 영상의 댓글창은 현재 막혀 있다. 젠더 이슈를 빌미로 학생들에게 일부 누리꾼이 악성 댓글을 달 것을 우려한 조치다. 김 교사는 "학내에서도 남여 사이의 갈등이 심각하고 혐오표현도 잦다"면서 "그런 고민을 담아 성평등을 노래한 만큼 많은 지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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