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차이나 차이나인사이트

기상천외 식도락이 '박쥐의 역습' 불렀다…중국 우한의 비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유상철 베이징 총국장

유상철 베이징 총국장

박쥐는 중국에서 ‘볜푸(蝙蝠)’라 부른다. ‘푸(蝠)’가 복(福)의 중국어 발음 ‘푸’와 같아 박쥐 모양의 상징물은 행복을 의미한다. 특히 ‘볜푸(蝙蝠)’는 ‘복을 널리 퍼뜨린다’는 ‘볜푸(遍福)’의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웬걸, ‘볜푸’가 2020년 새해 중국을 상갓집 분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로 박쥐가 유력시되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중국과학원 우한바이러스연구소의 스정리(石正麗)팀이 최신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골자는 신형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96%의 상동성을 보인다는 거다. 박쥐를 행복의 상징으로만 여기지 않고 이를 잡아먹는 오랜 식습관이 재앙을 불렀다는 이야기다. ‘야생의 맛(野味)’을 즐기다 ‘야생의 역습’을 당한 셈이다.

우한 폐렴 숙주로 박쥐가 유력 #‘야생의 맛’ 즐기다 야생 역습 불러 #신의 반열 오르려는 공산당 치하 #언론 감독 사라지며 초기 대응 실패

송(宋)대 시인 소식(蘇軾)의 시에도 “박쥐를 끓인다(燒蝙蝠)”는 대목이 나온다. 중국 인터넷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발을 불과 열흘 앞두고 올라온 ‘박쥐는 먹을 수 있나? 어떤 영양가치가 있나?’란 글이 있다. 글에 따르면 광둥(廣東)성에선 전문적으로 박쥐를 잡아 파는 사람이 있다. 한 마리에 20위안씩 받는데 끓이거나 쪄먹는다. 날개 뼈는 연골이라 바삭바삭하고 고기는 참새와 비슷한 맛이 난다고 소개한다. 영양가치도 상세하게 선전한다. 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멎게 하며 이뇨작용을 해 부기를 빼고 간을 보호해 눈을 밝게 한다는 등이다. 주의사항으론 독이 있는 박쥐는 먹지 말라는 게 전부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의 교훈은 깡그리 잊혔다. 전 세계에서 8098명이 감염돼 774명의 사망자를 낸 사스는 박쥐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로 옮겨진 뒤 이게 다시 사람에게 전파된 경우다. 하긴 사스 사태 3년 뒤인 2006년 중국야생동물보호협회가 중국 16개 도시 2만4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30%가 야생동물을 먹는 습관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이상 흘렀으니 더욱 잊혔을 법하다.

지금은 폐쇄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로 지목된 우한 화난 수산시장의 야생동물 점포. [웨이보 캡처]

지금은 폐쇄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로 지목된 우한 화난 수산시장의 야생동물 점포. [웨이보 캡처]

중국에서 야생동물을 먹는다는 ‘츠예웨이(吃野味)’란 말엔 신분 과시용의 우쭐함이 배어 있다. 옛날엔 먹을 게 없어 야생동물을 잡았지만 시대가 흐르며 돈 있는 자가 보신을 위해 또는 새로운 걸 탐하는 식도락 차원에서 ‘예웨이(野味)’를 찾게 됐다. 명·청 시대에 유행한 원숭이 골, 낙타 육봉, 표범의 태 등과 같은 진귀한 여덟 가지 요리가 그렇고, 20세기 초 동북왕(東北王)으로 불린 군벌 장작림(張作霖)이 호랑이고기를 특별히 좋아했다는 이야기 등이 다 그런 경우다.

이번 우한 폐렴의 진앙지인 화난(華南) 수산시장 동쪽에 자리한 상점 ‘대중(大衆)목축야생동물’의 차림표에 등장하는 동물만 42종에 달한다. 사스를 옮긴 사향고양이는 물론 오소리, 공작, 기러기 등을 바로 현장에서 도살·냉동해 집까지 배달한다고 광고한다. 중국 사스 퇴치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중난산(鍾南山)이 계속 경고해 왔지만, 기상천외의 식도락이 바뀌지 않고선 언젠가 터질 일이었던 셈이다. 중국 저장(浙江)대 법학교수 첸예팡(錢葉芳)은 야생동물 소비 저변에 깔린 중국인의 얄팍한 속내를 질타한다. 그는 “동물 방역에 대한 법률의식이나 동물 보호의식이 천박하고 우매하기 이를 데 없다”며 “야생동물을 먹는 게 몸보신을 위해서라 말하지만 실제론 허영으로, 일종의 특권을 드러내는 신분 상징처럼 쓰인다”고 비난했다.

야생 담비. [웨이보 캡처]

야생 담비. [웨이보 캡처]

문제는 사태가 터진 뒤 중국 당국의 대처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어떤 문제든 덮으려는 본능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한에서 처음 신종 폐렴 환자가 발생한 건 지난해 12월 8일이다. 이후 환자가 속출하기 시작했으나 우한시 위생당국은 3주를 미적거렸다. 그러다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지난달 30일 “원인 불명의 폐렴이 돌고 있다”는 긴급 통지문을 냈다. 그럼에도 새해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는 듯 지난 3일 “사람 간 전염은 분명하지 않다”고 말해 사회의 경각심을 무디게 했다. 또 잇따른 환자 발생을 보고 놀라 “사스가 재발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이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며 붙잡으러 다녔다.

중국은 ‘보희불보우(報喜不報憂)’의 전통이 있다. 황제에게 좋은 일은 알리지만 걱정을 끼칠 나쁜 일은 보고하지 않는다. 우한은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의 기치를 올려 2000년여 넘게 지속한 황제 제도를 깨뜨렸지만 이 악습만큼은 부수지 못했다. 여기에 신중국 건국 이래 공산당 일당제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안정이 모든 걸 압도한다(穩定壓倒一切)’는 구호도 한몫했다. ‘안정’이란 대의를 위해 관방(官房)과 다른 말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우한에선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신종 폐렴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급속도로 늘고 확진 환자만 100여 명이 넘어서는데도 대규모 잔치를 연 것이다. 이름하여 ‘만가연(萬家宴)’이다. 세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18일 우한시는 바이부팅(百步亭) 사구(社區·지역사회)에서 중국의 최대 명절 춘절(春節·설)을 일주일 앞두고 4만여 가정이 참여하는 초대형 잔치를 열었다. 현장에서 만들어진 요리만 1만3986가지라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이후 춘절을 쇠기 위한 수많은 귀성객의 발길이 한커우(漢口) 기차역으로 이어졌다. 신종 폐렴의 진원지인 화난 수산시장과는 불과 500m 거리다. 우한이 봉쇄되기 전 500만 명이 빠져나갔다. 초기 대응의 완전한 실패다. 중국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확진 환자가 나올 수밖에 없게 된 이유다.

3년 전 여행지에서 박쥐탕을 즐기던 유명 블로거. [웨이보 캡처]

3년 전 여행지에서 박쥐탕을 즐기던 유명 블로거. [웨이보 캡처]

중요한 건 이럴 때 역할을 해줘야 할 언론이 본연의 감독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왜? 강력한 리더십의 시진핑(習近平) 등장 이후 중국 언론은 스스로의 성(姓)이 ‘당(黨)’이라며 공산당의 선전에 충실할 것을 맹세한 터다. 당의 허가 없는 보도는 불가능하다. 최근 언론을 죄는 당의 손아귀는 더욱 세졌다. 한 베이징 언론사의 경우 기자가 취재를 나가려면 세 군데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당의 의지가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다당제의 서방이 대중 영합주의로 흐르고 있다며 비난한다. 반면에 공산당 일당제의 효율성을 자랑한다. 그러나 당이 잘못하면 어떡하나. 당의 착오는 누가 감독하나. 여기서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이 말한 ‘셀프 감독론’이 등장한다. 왕치산은 2015년 ‘역사의 종언’ 논문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아먀와 만나 그에게 “종교 내부의 치리(治理)는 무엇에 의지하는가”라고 묻고 스스로 답했다. 종교가 자아 감독에 의존하듯이 중국 공산당 또한 자기 스스로를 감독한다는 주장이었던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신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시진핑 집권 2기 중국이 모든 공무원의 비위를 조사할 수 있는 감찰위원회를 출범시킨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이 존재하나. 특히 스스로의 완전한 감독이 가능한가.

2020년은 중국에 역사적인 해다.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고, 문화생활도 즐기는 전면적 소강(小康)사회를 달성하는 해다. 그러나 중국의 새해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경계하며 멀리하는 공포로 시작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극도의 두려움과 함께다.

우한 야생동물 판매상 메뉴판엔 타조발바닥·코알라·악어혀 …

우한 시장 내 야생동물을 파는 상점 메뉴판. [사진 웨이보]

우한 시장 내 야생동물을 파는 상점 메뉴판. [사진 웨이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로 지목된 우한(武漢)의 화난(華南) 수산시장의 한 야생동물 판매상의 메뉴판이 중국인들의 야생동물 식습관을 대변해 준다.

‘대중(大衆)목축야생동물’이란 가게의 메뉴판에는 공작, 지네, 타조발바닥, 타조알을 비록해 낙타, 낙타발바닥, 낙타봉, 전갈, 메뚜기, 코알라, 여우, 새끼늑대, 고슴도치를 닮은 호저(豪猪), 사향고양이, 사향쥐, 캥거루, 녹용, 사슴생식기, 새끼악어, 악어꼬리, 악어혀 등 42종 동물 112가지의 기상천외한 ‘먹거리’들이 망라돼 있다. 판매 가격은 사슴 한 마리에 6000위안(약 101만원), 타조 4000위안(67만5200원) 등이다.

메뉴판 아래에는 “산 채로 현장에서 도살, 얼음 냉동, 문 앞 배달, 장거리 위탁 배송”이라는 문구를 넣어 신선함을 과시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의 네티즌은 “코알라까지 먹는 걸 보니 중국인이 못 먹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탄식했다.

유상철 베이징 총국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