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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압박에 눈치껏 자주국방? 글로벌호크 몰래 들여올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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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딜레마 빠진 한국 

올해 예측불허의 남북관계로 인해 국방 분야로도 파장이 미치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의 수위를 최소화하고, 핵심 전력 증강 사업도 노출을 피하는 ‘몰래 자주국방’을 예고하고 있다.

“한·미 훈련, 첨단무기 도입 말라” #북, ICBM 중단 약속 깨겠다 위협 #지난해 F-35A 들여오면서도 쉬쉬 #글로벌호크 추가 도입 공개 안 할 듯

김정은 위원장의 한·미 연합훈련 발언

김정은 위원장의 한·미 연합훈련 발언

발단은 새해 벽두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사 분야에 대한 육성 메시지를 내놓으면서다. 북한 매체들의 지난달 1일 노동당 전원회의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미국)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크고 작은 합동군사연습들을 수십 차례나 벌여놓고 첨단 전쟁장비들을 남조선에 반입하여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어 “이러한 조건에서 지켜주는 대방(상대)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매여 있을 근거가 없어졌다”고 위협했다. 한·미 연합훈련과 첨단 전력 도입을 계속하는 한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중단 약속을 지킬 이유가 없다는 선언이다.

이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18년 3월 방북한 뒤 돌아와 공개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당시 정 실장 전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연기된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해 4월부터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의 두 가지 요구는 자주국방을 위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나선 문재인 정부로선 수용 불가능하다. 전작권을 미국으로부터 받기 위해 한국군이 진행 중인 양대 축이 연합훈련과 첨단 전력 도입이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매년 한·미 지휘소훈련을 하면서 한국군의 전쟁 운영능력을 평가한다. 한국군 사령관 지휘로 유사시 대비훈련을 해 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왔다.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은 “북한이 자꾸 훈련을 문제 삼건 말건 연합훈련 없이는 한국군 운용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도 “전작권 전환 문제가 있으니 연합훈련을 안 할 수는 없고 규모를 조정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대화·전력증강 동시추진 고민

또 한국군이 독자 작전에 나설 때 가장 큰 맹점이 미군에는 있는데 한국군엔 없는 정찰·감시전력과 북한 미사일 방어·타격 전력 등이다. 이 전력을 ‘보완전력(Bridging capability)’으로 부른다. 북한 선전매체가 “첨단 살인무기”로 극렬하게 비난했던 정찰 장비인 글로벌호크가 이에 해당한다. “북한 뜻대로 하면 차 떼고 포 떼라는 얘기”라는 비판이 군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연합훈련을 전면 중단할 경우 주한미군이 굳이 한반도가 주둔할 이유가 없어지는 만큼 북한의 요구는 주한미군 철수 요구의 예고편이고, 따라서 북한이 내건 ‘한반도 비핵화’는 ‘한·미 군사동맹 해체’라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모라토리엄 파기를 꺼내 든 게 문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전원회의 보도로 보면 대북제재 해제와 연합훈련을 중단해야 비핵화 대화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핵화 대화 촉진과 자주국방 추진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국방부는 지난 21일 올해 연합훈련을 놓고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지난해와 동일한 기조로 규모를 축소해 시행한다는 정도로만 밝혔다. 군은 올해 상반기 중 글로벌호크를 추가 도입할 예정이지만 비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지난해 12월 F-35A 전력화 행사를 앞두고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F-35A 도입을 숨기려는 게 아니다. 이번엔 12월 공군 현장부대에서 전력화 행사를 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외부 비공개로 진행했다.

정부는 대신 북한을 움직일 카드로 ‘개별관광’을 꺼내 들었다. 중국인들의 ‘털게 관광’이 성에 차지 않는 북한의 속내를 읽어서다. 정부 당국이 파악한 수치로는 지난해 북한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20만∼25만 명이다. 이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직전인 2007년 한국인 금강산 관광객 34만8263명에 비해 적다. 또 중국 관광객의 60%가량은 단둥~신의주, 훈춘~나진 등을 오가는 당일치기 관광이라고 한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숙박·식사·쇼핑의 3박자가 갖춰져야 돈이 되는 관광인데 당일치기 관광은 그게 아닌 데다 중국 관광객들 중엔 생수까지 중국에서 사들고 간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당일치기 중국 관광객은 북한에서 털게를 산 뒤 되돌아가 파는 식으로 여행 경비도 충당하고 있다. 순수 관광이라기보다 ‘털게 보따리상’ 성격에 가깝다. 소식통은 “이러니 김 위원장이 야심차게 조성한 마식령 스키장, 양덕 온천 등의 숙박 시설은 텅 비어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개별관광 돈 안 돼” … 북 받을지 불투명

하지만 북한이 개별관광 카드를 받을지는 불투명하다. 오히려 북한은 개별관광보다 제재 해제를 통한 대규모의 제대로 된 관광을 원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고유환 교수는 “북한은 개별 단위 관광은 언제든 중단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돈이 안 된다고 보고 있어 제재 해제를 통한 근본적인 해결을 원하는 것으로 안다”며 “북한은 개별관광 제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당분간 관망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 문제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정부도 미국 측에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본 뒤 제재 문제를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말했다.

채병건 국제외교안보 에디터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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