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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때려눕힌 손이다" 신격호, 일본인들 앞에서 홍수환 자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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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 선수. [연합뉴스]

홍수환 선수. [연합뉴스]

“제 주먹을 만지면서 일본 선수를 때려눕힌 손이라고 자랑하셨죠.”

4전5기 신화의 주인공인 전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 홍수환 한국 권투위원회 회장은 2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고 신격호 명예회장과의 인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홍 회장은 1976년부터 2년간 롯데의 후원을 받았다. 롯데의 후원을 받고 있던 77년 11월 홍 회장은 세계 챔피언(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4차례나 다운을 당하고도 상대를 KO로 이겨 ‘4전 5기의 신화’를 쓴 경기였다.
홍 회장이 신 명예회장을 만난 건 78년 2월 2일이다. 전날 홍 회장은 챔피언에 오른 뒤 주니어페더급 1차 방어전을 일본 도쿄에서 치렀다. 상대는 카사하라 유우라는 일본 선수였다. 홍 회장은 5차례 다운을 뺏은 끝에 15회 판정승을 거뒀다.

일본 도쿄에서 거둔 한일전 승리는 재일동포 등 일본에 있는 한국인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던 신격호 명예회장은 경기 다음 날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부터 일본 롯데 본사까지 카퍼레이드를 준비해줬다. 카퍼레이드로 일본 롯데 본사에 도착한 홍수환 회장을 기다리고 있던 건 신 명예회장을 비롯한 일본 롯데의 임원 전원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 선수가 바로 홍수환이다”라며 당시 홍 선수의 주먹을 만지며 “일본 선수를 때려눕힌 손이다”라고 자랑했다. 그 자리에 있던 임원 대부분은 일본인이었다.

홍 회장은 “점퍼 차림의 신 회장이 기쁨을 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빨간색 봉투에 100만 엔을 담아 건넸다”며 “당시 100만 엔이면 개포동에 있는 40평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돈의 절반 정도 됐다”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이어 “내가 만약 쉽게 이겼거나 쓰러졌다면 나를 부르지 않으셨을 것”이라며 “몇번이나 다운당하면서도 다시 일어나서 싸우니까 거기에 감명을 받으신 것 같았다. 신 회장도 몇 번씩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서 뛰어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특히 나를 환영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창간 40주년 특별기획. 홍수환이 1977년 WBA주니어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파나마의 카라스키야에게 펀치를 날리고 있다. 홍수환은 네 차례 다운당했으나 3회 역전KO승, 4전5기의 신화를 이뤄냈다. [중앙포토]

중앙일보 창간 40주년 특별기획. 홍수환이 1977년 WBA주니어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파나마의 카라스키야에게 펀치를 날리고 있다. 홍수환은 네 차례 다운당했으나 3회 역전KO승, 4전5기의 신화를 이뤄냈다. [중앙포토]

홍 회장은 당시 만났던 신 명예회장에 대해 “대기업 회장답지 않게 공장 점퍼 차림의 소탈한 모습이 기억난다”며 “집무실 정면에 소가 논을 일구던 한국 민속화가 걸려있었고, 화장실에도 한국 풍속화가 걸려있었던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신 회장의 별세에 그는 “가슴이 찡하다”라며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만드시고 돌아가셨으니 하늘에 제일 일찍 도착하시지 않겠냐”라며 안타까움을 보였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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