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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핀] 코인 손절보다 인맥 손절이 더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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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타로핀’s 코린이 개나리반] 해가 바뀌고 작심삼일을 7차례 반복했더니 설날이 코앞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위해 핸드폰 연락처를 열고 스크롤을 굴린다. 잊고 지냈던 옛사람의 이름을 발견하곤 좋았던 날을 회상하기도 하고, 최근에 알게 됐지만 공통점이 많아 급속도로 돈독해진 이름을 보고 반가워도 해본다. 인간관계는 ‘편도’가 아니라 ‘왕복’인지라 누군가는 그들의 연락처에서 내 이름을 보고 있을 테다. 그리곤 이내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나야, 거기 잘 지내니”

“이번에 좋은 코인이 하나 있는데”로 시작되는 지인의 영업 활동이 펼쳐진다. 아뿔싸! 이미 몇 년 전에 결혼은 했으니 결혼식 초대는 아닐 테고, 전에 그 직장 계속 다니고 있다고 하니 보험이나 카드 만들어 달라는 부탁도 아니고, 옥 장판 팔고 다닐 정도로 건강 챙기는 지인이 아니라고 해서, 방심했다.

매몰차게 문전박대를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 추임새를 넣어주며 계속 들어본다. 정부 보건복지부의 투자를 받았으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전략기획팀에서 밀어주는 대박 코인이 있다고 한다. 지금 엔젤 투자 유치 단계라고 한다. 자신을 통해서 투자가 가능하며 다른 기관들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코인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다음달에 상장할 거라서 금방 원금과 수익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고급 정보까지 알려준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 지인이 나에게만 몰래 알려준 정보를 바탕으로 코인을 상상해 보니 ‘구운몽(九雲夢)’에 빙의된 듯, 현실과 전혀 상반된 새로운 멀티버스 세계가 그려진다. 현실에서는 ‘듣보’ 소기업에서 정부 과제라도 하나 따오기 위해 100장이 넘는 제안서를 작성한다. 대기업은 하청기업과 외주기업의 마진율을 체크해가며 공급 계약을 맞고, 계약 기업이 출원한 특허를 뺏기 위해 편법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하지만, 지인이 알려준 멀티버스 세계관의 그곳에서는 매년 적자에 허덕이다 자본잠식 상태인 듣보 기업에 몇십 억의 예산을 배정해서 투자하며, 대기업에서는 자체 개발 중인 블록체인 메인넷이 있음에도 그 자본잠식 기업이 만드는 블록체인 메인넷을 사용하기 위해 파트너를 체결하고 기다려 주고 있다. 판타스틱 월드다.

“설마 했던 네가 나를 떠나 버렸어”

사실 지인이 코인을 추천해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투자한 코인의 가격이 올랐다고 한들 지인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 반대로 투자한 코인의 가격이 내려가는 경우는 원망과 원성을 감당해야 한다. ‘울트라 리스크 로우 리턴’. 투자자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자행하는 지인이다. 그렇다면, 지인이라는 부류들은 왜 당최 초당 4.4원에 달하는 음성 데이터 요금을 써가며, 한잔 당 4100원 하는 아메리카노의 가격을 써가며, 코인 정보를 알리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걸까. 크게 두 가지의 경우로 귀결된다.

첫째는 코인 뿐만이 아니라 다른 다단계가 그러하듯 하위 단계에서 돈을 싸들고 올 때 일정 퍼센티지의 커미션을 받는 구조다. 다른 다단계와의 차이점이라면 원화를 싸들고 오더라도 원화가 아닌 코인으로 커미션을 받는다는 점이다. 지인을 상대로 선동해서 얻은 이 단가 0원의 코인은 훗날 물량 덤핑과 가격 토막의 일등 공신이 된다.

둘째는 자신이 사기당해서 물려 있는 코인을 아무것도 모르는 지인에게 떠넘기려 하는 거다. 대형 거래소에 상장 확정 공지가 개시된 후에 다급하게 팔려고 하는 코인이 여기에 속한다. 상장 후에 유통될 수 없는 수량의 시장 매도 물량이 등장한다거나 상장 후에 기존 코인에 대해서 토큰락을 걸고 거래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 거라는 정보를 미리 들은 경우에 속한다.

핸드폰의 연락처를 열어서 앞으로 도움될 거 같지도 않고, 다시는 만날 필요도 없으며, 사기를 쳐도 어리바리해 해코지하지 않을 호구를 찾아서 연락한다. “이번에 좋은 코인이 하나 있는데….”

“왜 하필 나를 택했니,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신일골드 코인 피해자 2600여 명에 피해액 약 90억 원, 코인업 코인 피해자 6700여 명에 피해액 약 4500억 원, 원코인 피해자 7만여 명에 피해액 약 5조2000억 원. 다단계 코인 사기가 언론을 통해 공개될 때마다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그런 이름 모를 코인에 수많은 사람이 속았으며 어떻게 그 큰 금액을 투자할 수 있느냐는 거다.

지인의 추천으로 투자한 코인의 말로는 아주 비슷하다. 황당한 사실은 피해자들도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전까지는 스스로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사기 일리가 없다며 언론에서 무지한 상태로 오보를 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단계 판매가 성사된 이후는 사기를 친 사기꾼과 사기에 속은 피해자들끼리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사기꾼은 자신이 떠넘긴 디지털 쓰레기를 포장하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각종 선동과 ‘구라’를 가져와 유망한 코인으로 포장한다. 이미 투자를 결심한 시점부터 선동에 넘어간 피해자들은 서로 똘똘 뭉쳐서 행복회로를 돌리며 투자금을 익절하는 그날을 위해 학수고대한다.

현실 부정과 분노, 수긍과 체념을 지난 후에야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 하필 연락처에서 나를 택했느냐고 원망하면서 말이다. 투자 사기를 당하기 이전에 ‘진짜’ 지인들이 경계하고 조심하라며 투자를 만류하기도 했을 테다. 유망한 코인을 선정하고 투자하기 이전에, 진정한 지인을 선별하고 그들에게 투자해야 하는 까닭이다. 호구로 남을지 은인을 남길지. 디지털 쓰레기 코인의 손절보다 인맥 손절이 더 중요한 이유다.

타로핀(ID) ‘코린이 개나리반’ 포럼 운영자

※외부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합니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조인디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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