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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에 화답하듯…정부ㆍ한은ㆍKDI 일제히 “경기 개선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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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기관이 일제히 경기 반등론의 불을 지피고 있다. 경기선행지수, 수출과 같은 일부 지표의 호전이 근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지난해 경제가 매우 나빴던 점을 고려할때, 몇몇 수치의 호전을 토대로 경기 회복을 얘기하는 건 섣부르다는 진단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경기 평택항 친환경차 수출현장을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평택=청와대사진기자단/한국경제 허문찬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경기 평택항 친환경차 수출현장을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평택=청와대사진기자단/한국경제 허문찬기자

기획재정부는 지난 17일 ‘1월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서비스업 생산과 소비가 완만히 증가하는 가운데 설비투자도 점차 부진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수출과 건설투자의 조정국면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지난해 11월 그린북에서 ‘부진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는 표현을 8개월 만에 삭제하는 등 점차 긍정적 표현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정부와 비슷한 시각을 보였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1.25%로 유지하면서 “국내경제는 부진이 일부 완화되는 움직임을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이어 “건설투자 조정이 이어지겠지만, 수출과 설비투자 부진이 점차 완화되고, 소비 증가세는 완만하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새해 들어 경기 호전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KDI는 지난 9일 ‘낮은 성장세’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일부 지표가 경기 부진이 완화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4~12월에 썼던 ‘부진 지속’표현을 ‘부진 완화’로 바꿨다.

정부와 중앙은행, 국책연구기관이 일제히 문 대통령의 ‘경기 낙관론’에 부응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신년사에서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고, 나아진 경제로 ‘확실한 변화’를 체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부정적인 지표들은 점점 적어지고, 긍정적인 지표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거시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지표가 다소 나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생산ㆍ소비ㆍ투자 등 산업활동 3대 지표는 전달 대비 모두 늘었다. 수출은 이달 1~10일에 전년 대비 5.3% 증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한국의 경기선행지수(CLI)는 지난해 11월 기준 99.1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사상 최장 기간인 28개월 동안 줄었다가 지난해 10월에 상승한 데 이어 두 달째 올랐다. CLI가 기준치(100)를 넘으면 경기확장, 밑돌면 경기하강 국면으로 본다. 다만 100 이하여도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경기 회복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섣부른 경기 반등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수출 등 대부분 지표의 호전은 지난해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에 기댄 측면이 크다. 28개월 동안 줄었던 CLI가 2개월 반등했다고 ‘경기가 바닥을 다졌다’고 평가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오히려 민간 경제연구기관에서는 “중국ㆍ인도 성장세 둔화에 수출이 부진해지거나 기업 투자가 늘지 못하면 다시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현대경제연구원 지난해 12월 보고서)는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나온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워낙 부진했던 경제 지표가 기술적으로 반등하는 것 이외에는 경제 전반에 걸쳐 나아진다고 볼 수 있는 게 없다”며 “정부 기관이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만 낼 게 아니라 경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민간 투자 침체 회복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시행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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