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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曰] 대통령의 빚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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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호 30면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연말정산 시즌에 택스 페이어(tax payer)로서 먹먹하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데 왜 나랏빚은 갈수록 ‘눈덩이’냐는 거다. 국가채무(중앙정부 채무)가 사상 처음 700조원을 넘겼다니 살림 기술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여기저기 헤프게 써서 그런 게 아닌가. 나를 포함한 근로소득세 연말정산 신고 근로자 1858만 명(국세청 2018년 기준)도 모두 같은 심정일 게다. 나랏빚은 곧 내(국민) 빚이니 말이다.

국민 고초 아랑곳 않는 조국 감싸기 #정작 마음의 큰 빚은 국민에게 졌다

빚은 물리적으로만 지는 건 아니다. 마음으로도 진다. 출근길 버스 기사의 “어서 오세요”라는 말 한마디, 비타민 같은 발랄한 음성의 라디오 DJ, 매일 거리를 깔끔히 청소해 주는 환경미화원, 가족처럼 살가운 직장 동료들. 다 우리가 빚지고 사는 고마운 이들이다. 그런데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조국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은 고초만으로도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 조 전 장관을 놓아주고 앞으로 유무죄는 재판 결과에 맡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14일)을 보다가 들은 이 말의 충격이 아직도 얼얼하다.

조국 사태로 우리 국민은 그간 얼마나 심한 고초(苦楚)를 겪었나. 무릇 백성의 고초는 곧 군왕의 고초라고 하거늘, 대통령은 2020년 초입부터 국민의 마음을 혜량하지 못했다. 물론 정치적 동지로서 개인적인 소회를 밝힐 수는 있다. 그러나 ‘고초’ ‘마음의 빚’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돌직구처럼 “절대로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로  공적 업무여야 할 국정을 완전히 사적 업무로 전락시켰다. 어떻게 국민 앞에서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표출할 수 있을까.

국민을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가르고, 젊은이들에게 처절한 배신감과 절망감, 공정·정의의 배반 묘수를 보여준 범죄혐의자를 감싸는 대통령의 빚 비밀은 무엇일까. 혹여, 세간의 수군거림처럼 조국에게 가족 문제를 비롯한 약점을 잡혀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한쪽 국민만 국민으로 보고 결집하라는 고도의 정치공학적 수사(修辭)인가. 진심으로 그런 뜻은 아니었을 거라 믿는다.

그래도 개운치가 않다.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은 이런 말을 했다. “영리한 리더는 들은 것의 반만 믿는다. 하지만 통찰력 있는 리더는 믿어야 할 그 반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영리한 문 대통령이 통찰력이 없어서일까. 조국의 말을 절반만 믿고, 다시 그 절반을 성찰했더라면 공정과 정의의 가치가 이처럼 뿌리째 흔들지는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국민은 바다이고 정권은 일엽편주(一葉片舟)라거늘, 민의와 상식을 거스른 ‘문재인 웨이(way)’는 국민에게 큰 빚이 되고 있다. 나랏빚 700조원과 비교도 할 수 없다. 그걸 어떻게 갚으시려나. 대통령 등에 올라탄 조국은 그 빚을 탐하고 있다. 서울대에 복직해 꼬박꼬박 공짜 봉급을 타더니 이달에는 설 보너스도 받는다. 그 돈, 모두 우리가 낸 세금이다.

물욕 많은 그가 휴직·사직할 리 없으니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용단을 내려야 한다. 범죄혐의자에게 강의까지 맡기는 건 국민과 서울대에 대한 모독이다. 대통령 말대로 유무죄는 법원이 판단할 터이니 우선은 학교가 나서야 한다. 직위해제는 총장 권한 아닌가. 직위 해제하면 강의를 못 하고 첫 3개월은 통상 급여의 50%, 이후에는 30%만 지급된다니 세금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느끼게 해야 한다. 그게 사회 정의이고 공공의 선(善) 아닌가.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The bucks stop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글귀를 책상 위에 붙여 놓고 국사를 본 것으로 유명하다. “The Chokook stops here”는 어떤가.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진 큰 빚을 갚아나가는 마음이다. 서초동과 광화문 국민, 모두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민이니까.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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