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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년 최초 '여성' '동양인' "나는 실수가 두렵지 않다"

중앙일보

입력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2018년 5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모두 끝나고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꽃다발을 받았다. 바렌보임은 꽃다발 중에서 꽃 한송이를 뽑아 오케스트라의 악장에게 건넸다. 당시 26세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이다. 바렌보임은 그 자리에서 이지윤에게 “오늘부터 정식 악장으로 임명한다”고 말했다.

1570년 창단한 베를린슈타츠카펠레 이지윤 악장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1570년 궁정악단으로 출발했고 R. 슈트라우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이끌었던 오케스트라다. 이지윤은 이 악단 448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동양인 악장이 됐다. 단원들을 이끌며 지휘자와 소통 통로가 돼야하는 악장은 이 오케스트라에 총 세 명. 나머지 둘은 50대 바이올리니스트 로타르 슈트라우스, 40대 볼프람 브란틀이다.

14일 서울 금호아트홀연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지윤은 “원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라며 보수적인 유럽 음악계에서 중요한 음악인이 된 비결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겁을 굉장히 많이 먹었다. 경험이 정말 많은 분들 사이에서 연주해야 했고 나는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모르는 건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실수를 하면 실수로 인정하고 그랬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지윤의 악장 임용은 당시 유럽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성별과 인종뿐 아니라 2년으로 약속됐던 시험 기간이 1년으로 당겨진 후 임명됐기 때문이다. 특히 바렌보임의 전적인 신뢰를 받은 신인이라는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세계 음악계의 권력이자 노장인 바렌보임은 이 오케스트라를 28년째 이끌고 있다. 이지윤은 “내가 태어나던 해부터 오케스트라를 맡았다”며 “처음엔 옆집 할아버지 같았지만 지휘대에 서면 주장이 굉장히 강한 음악가”라고 했다. 또 자신의 기록적인 임용에 대해서는 “오케스트라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하얀 도화지처럼 편견 없이 음악을 할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고 했다.

이지윤은 천생 독주자인 바이올리니스트다. 2004년 금호아트홀에서 영재콘서트로 데뷔했고 이후 칼 닐센 콩쿠르 우승으로 이름을 알렸다. 우승의 부상으로 녹음한 앨범에선 망설임 없이 정곡을 찌르는 카랑카랑한 음색이 전투적이고 현대적이다.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연주한 바르토크 루마니아 민속 춤곡 또한 날카로웠다. 그는 “스승인 콜리야 블라허의 영향으로 오케스트라 악장 오디션을 보게됐다”고 했다. 블라허는 1993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으로 6년 연주했으며 독주 바이올리니스트로도 균형 있는 경력을 쌓았다.

이지윤은 “오디션이 끝나고 지휘자인 바렌보임이 잠깐 보자고 했다”고 기억했다. 바렌보임은 그에게 “솔리스트로 아직 어리고 한창 잘하는데 오케스트라에 들어오고 싶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한다. 이지윤은 “베를린에서 처음 본 오페라가 ‘보체크’였는데 성악가보다 오케스트라에 반했다. 그게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였고, 함께 연주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솔리스트 기질이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는 이렇게 450년 전통의 오케스트라 악장이 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지윤은 올해 금호아트홀의 상주음악가로 네 번 국내 공연을 한다. 첫 무대는 16일 독주회. 바르토크, 야나체크, 코른골트, 비트만, 쇼송, 드뷔시를 골랐다. 이지윤은 현대 직전의 근대 작곡가 작품에서 강점이 나온다. 특유의 근성있게 밀고가는 호흡, 조련된 날카로움 때문이다. 5월 7일 첼리스트 막시밀리안 호르눙과 2중주, 8월 27일엔 재즈 음악가인 프랑크 두프리와 에네스쿠, 애덤스, 거쉬인을 계획하고 있다. 마지막인 12월 10일에는 비예냐프스키, 시마노프스키, 메시앙으로 본격적인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준다.

1년에 35주씩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연주 중인 이지윤은 “오케스트라에서 개성을 줄이고 독주자로서는 개성을 드러내는 노력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며 “오케스트라 연주를 많이 하다가 솔리스트로 서면 무대를 더 즐기게 되는데 올해 국내 독주 네 번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는 기회”라고 했다. 공연 네 번은 모두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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