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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2주차 "초면에 의료기기 만들까?"…새내기의 특허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갓 대학에 입학한 2000년생 3800명을 모아놓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라고 하면, 뭐가 나올까?
연세대와 게임회사 넥슨이 실제로 실험해봤다. 손떨림 치료 원격 의료기기와 시각장애인용 전자지팡이가 나왔다.

연세대는 넥슨과 진행한 1학년 프로젝트 ‘RC창의플랫폼 2019’에서 손떨림 환자용 웨어러블 의료기기인 ‘앙트레온’이 대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진동모터가 내장된 장갑, 손떨림을 측정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시계, 근육의 신호를 시계로 전송하는 센서, 이 3가지를 결합했다. 착용하면 손떨림이 줄어 생활이 편해지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원격 진료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근신경을 자극해 재활 치료도 할 수 있다.

앙트레온은 2000년생 4명(이동건·김민우·문해일·이민우)과 1999년생 1명(조은정)으로 구성된 Y-me팀이 만들었다. 개념도 수준이 아닌 실제 기기로 제작했다. 현재 특허 출원을 준비 중이다.

입학 2주차인 지난해 3월, 학교는 신입생 3800여명 전원에게 창의·발명 프로젝트에 참석할 기회를 줬다. 신입생 300여 명이 나섰고 연말엔 총 6개팀이 수상했다. Gen Z(Z세대·2000년 전후 출생자)의 창의성을 북돋은 키워드는 뭐였을까.

① 모으고 판을 벌려라

연세대 신입생 전원은 인천 송도캠퍼스 기숙사에서 생활교육 ‘RC(Residential College)’를 받는다. ‘RC창의플랫폼’은 그 일환이다. 개인·공동체·사회를 개선하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공모한다. 참여하는 팀당 100만원까지 실비를 지원하고 1등팀에는 1000만원의 상금을 추가로 준다. 기업 공모전과는 달리, 출품작의 소유권은 학생들에게 있다. 넥슨은 2017년부터 지금까지 5억여 원을 지원했다.

창의플랫폼 팀원들의 기숙사 내 전용 공간 '크레용'. [사진 연세대학교]

창의플랫폼 팀원들의 기숙사 내 전용 공간 '크레용'. [사진 연세대학교]

일단 모일 공간을 줬다. 기숙사 2개 동에는 넥슨 후원으로 창의팀 전용 공간 ‘크레용’이 마련됐다. 실리콘밸리의 IT기업을 벤치마킹했다. 흔들의자·사물함·브릭게임 등을 갖춘 놀이 겸 회의공간이다.

3D 프린터와 레이저 커터같은 공구를 사용해 직접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학내 실습실도 창의플랫폼 지원 학생들에게 오후 시간 상시 개방했다. 매일 저녁 조교가 사용법을 안내해줬다.

② 대세는 하이브리드, 섞어라

‘동종교배 금지’. 창의플랫폼의 단 한 가지 제약은 최소 2개 이상 전공자가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전공생의 문제의식과 접근법을 배우는 융복합을 위해서다.
대상팀 Y-me는 생화학·전기전자공학·나노공학·기계공학 전공 학생들로 꾸려졌다. 생화학 전공생이 의학 지식으로 기획을 뒷받침하고, 전기공학 학생이 코딩으로 실현하고, 기계공학 학생이 하드웨어를 만드는 식으로 협업했다.

친분은 없었다. Y-me는 대학생용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에 한 학생이 올린 글을 계기로 모인 팀이다. ‘창의플랫폼 할 건데, 의공학 관심있는 분?’이라는 글만으로 5명이 모인 것. Gen Z는 목적 중심의 모임이 어색하지 않다. 초면에도 의료기기를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창의플랫폼에 참여한 학생들이 전시회에서 결과물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세대학교]

창의플랫폼에 참여한 학생들이 전시회에서 결과물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세대학교]

③ 이타심을 자극하라

Gen Z는 기술과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많다. 대상을 받은 앙트레온은 그 대상이 사회적 약자였다. 팀 대표 이동건씨는 “친할아버지가 본태성 수전증(특별한 원인 없이 손떨림)으로 고생하시는 것이 생각나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팔순이 넘은 조부는 먼 대학병원에 자주 갈 수 없었다. 일상의 손떨림을 줄이고 의료진의 원격 진단도 가능한 기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최우수상을 받은 '헤르메스' 팀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길안내 전자 지팡이를, 우수상을 받은 '십시일반' 팀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복약 시간을 알려주는 스피커가 달린 전자 약통을 개발했다.

2019년 창의플랫폼 대상작 '손떨림 상쇄 및 분석 의료기기' [사진 연세대학교]

2019년 창의플랫폼 대상작 '손떨림 상쇄 및 분석 의료기기' [사진 연세대학교]

Gen Z는 사회적 갈등을 기술로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수상을 받은 ‘고요샘’은 편의점 앞 같은 야외 테이블에 설치하는 소음 반응형 조명 장치다. 술 마시며 대화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면, 저절로 어두워져 이를 알려준다. 캠퍼스 인근 주민들이 겪는 야간 소음 불편을 줄이려고 만들었다. 지난 2018년 대상은 대중교통의 임산부·장애인 전용석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 앱 연동 좌석 시스템 ‘밀어서 잠금해제’가 받았다.

④ 맛 들리면 또 한다

Y-Me 팀은 대상 상금 1000만원으로 올 여름 미국 실리콘밸리 탐방을 계획 중이다. 구글을 비롯한 IT 기업들과 뉴욕주립대, 의료기기 기업 등을 견학할 예정이다. 수상한 다른 팀들도 넥슨 초청으로 1월말 제주도에 있는 NXC(넥슨 지주사)와 넥슨컴퓨터박물관을 견학할 예정이다.

지금은 2~4학년이 된 전년도 수상팀들은 신촌캠퍼스에 가서도 창업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경험은 자산이 됐다. 창의플랫폼을 총괄한 한봉환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는 “요즘 신입생들은 지식이 뛰어난데, 스스로 무언가 만들고 해볼 경험은 적다”며 “새 교육의 초점은 이들에게 '해볼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넥슨재단 김정욱 이사장(맨 왼쪽) 대상을 수상한 Y-me 팀원들. [사진 연세대학교]

넥슨재단 김정욱 이사장(맨 왼쪽) 대상을 수상한 Y-me 팀원들. [사진 연세대학교]

3년째 심사에 참여한 넥슨재단 이재교 이사는 “다른 전공과 융합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경험을 1학년 때 하도록 돕는 취지”이라며 “이런 기회를 일찍 줘야 미래 산업을 이끌만한 기업도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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