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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핀] 크립토 VC, 스캠 피리 부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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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타로핀’s 코린이 개나리반]  대부분의 스펙이 출중하고 능력 있는 신입사원을 회사에 넣고 시간이 흐르면, 능력 없는 상사가 나온다. 직책보다 너무나도 능력이 출중했던 사원은 두각을 나타내고,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다. 고속질주를 하던 사원의 종착지는 역할보다 능력이 초라해지는 직책에 이르러서야 제동이 걸려 멈춘다. 우리 옆에서 월급만 축내는 무능한 상사들의 탄생 비화이며, ‘머저리 보존 법칙’의 살아있는 증거물이다.

대다수 크립토 VC(Venture Capital, 벤처캐피탈)의 흥망성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쟁력 있는 개발사를 발굴하고 투자하는 그들은,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안목과 프로젝트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입지를 다지면서 이름을 알린다. 몇 건의 성공을 거쳐, 마침내 스캠 프로젝트의 집결지가 되고 마는 과정이 어째 낯설지 않다. 

조깅, 아침 조(朝) 뛸 깅?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고,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새에게 잡아먹힌다. 아침에 뛰는 조깅처럼 암호화폐에 일찌감치 진입한 초기 크립토VC들은 몇 차례의 ‘불장’을 맞이했다. 다단계 되팔이를 취급하던 간판‘만’ VC인 공구방들은 막대한 수익을 바탕으로 어엿한 크립토VC 행세를 했다. 연달아 터진 투자 성공으로 명성까지 얻으면서 벌레를 잡아먹는 새의 자리에 서게 됐다.

초기 ‘듣보’ 시절엔 생계를 위해, 수익을 위해 열정적으로 프로젝트를 분석하고 개발사를 탐방했을 테다. 다단계를 위해 인맥 관리를 했으며, 필요하다면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다단계 ‘호족’을 만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노력의 결실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인과관계가 모호해지고 종국에는 뒤바뀌기도 한다. 크립토VC가 유망 프로젝트를 찾아 투자하는 게 아니다. 크립토VC가 투자했다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세간에 알려지고, 유망 프로젝트라는 포장지가 덧씌워진다.

아침마다 뛰어다니던 크립토VC는 이제 사무실의 지박령(地縛靈, 땅에 얽매여 있는 영혼)이 된다.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직접 홍보자료를 들고 찾아오는 개발사의 프로젝트만 훑어보기 시작한다. 실력과 자신감 있는 개발사는 콧대를 높게 세우며 그들을 외면하고, 능력과 진실 없는 개발사 위주로 크립토VC 사무실을 가득 메운다. 흔히 스캠 프로젝트라 부르는 그들에게 필요한 건 유무형의 투자와 개발과 운영에 대한 자문이 아니라, 선동과 바이럴로 이름을 알리고 토큰 판매와 상장을 통한 엑시트(exit) 되겠다. 유망 크립토VC가 ‘스캠 피리 부는 사나이’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다.

비번, 일벌(혹은 개미)을 태우다?

일벌들이 사는 벌집에 장수말벌이 침입하면 일벌들은 침입자를 둘러싸고 근육을 진동해 46도까지 온도를 올린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나면 장수말벌은 고온에 타서 쪄 죽은 채로 힘없이 떨어진다. 일벌이 쉴새없이 날갯짓을 하며 장수말벌을 태워버린다는 뜻의 비번(bee burn)처럼, 크립토VC 또한 분주하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한다거나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은 칭찬도 아니고 면죄부로 쓸 수도 없다. 영화 <어벤져스>에서 인류를 반 토막내기 위해서 타노스도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행동했다. 사기꾼들은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한다. 어느 집단에 적용되는 ‘최선’과 ‘열심’이라는 단어는 사회 또는 산업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무실에 앉은 채로 자신들에게 가장 큰 이득을 챙겨 줄 것 같은 프로젝트 개발사와 투자 계약서를 작성한다. 토큰 공개 판매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대량의 토큰을 받는다. 제대로 개발할 생각이 없는 스캠 프로젝트는 실사용을 통한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 스캠 프로젝트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해주는 외부 투자도 있을 리 만무하다. 이 제로섬 게임에서 크립토VC가 얻는 이득만큼 다른 곳에서의 손해로 충당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들을 선동해야 하는 이유이다.

크립토VC의 간판으로, 개인의 이름으로, 미디어의 기자나 기고자의 타이틀로, 자신들이 투자한 프로젝트에 대해 상찬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티끌 같은 내용을 부풀리고 악재를 호재로 둔갑시킨다. 홍보하고, 선동하며, 현혹한다. 관계자가 SNS와 커뮤니티에 들어가 일반 투자자인 양, “유망하다”고 바이럴 마케팅을 한다. 머저리가 ‘미저리(misery)’가 되는 과정이다.

마지노선, 마진 No 선?

개인 투자자들이 신규 프로젝트에 초기 투자를 하는 까닭은 명확하다. 한순간에 모든 원금이 청산 당해 사라지는 마진 거래는 위험요소가 너무 크며, 매수와 매도 차익을 통한 매매로 수익을 얻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즉, 기대수익을 낮추더라도 위험요소를 줄여 원금을 유지하고 싶어서다. ‘마진’이 없더라도 원금이라는 마지노선을 지키고자 함이다.

다양한 투자 자산 중에서 암호화폐를 선택할 때 ‘몇 곳의 집단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탈중앙화’, ‘모든 정보가 오픈돼 누구나 같은 내용을 알고 있는 투명성’ 등이 매력적으로 들렸을 거다. 다만, 크립토VC만큼 정보를 수집하기 힘들고 그들만큼 정보를 분석할 능력이 없기에, 크립토VC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참고해 ‘안정적(이라고 믿는) 투자’를 했을 거다. 어찌 크립토VC가 스캠 프로젝트와 짜고 자신들을 털어먹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으랴.

원금이라는 마지노선을 기대했지만 선동 당해 투자한 프로젝트의 코인 가격은 바닥을 친다. 바닥이라도 치면 다행이다. 상장하지 못해 거래 자체가 안 되기도 하고, 사기로 고소당했다는 소식을 미디어를 통해 듣게 된다.

이 와중에도 우리의 부지런한 크립토VC는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스캠 프로젝트의 이름을 지우기에 분주하다. 원금이 사라진 개인 투자자는 투자를 지속할 수 없을 테니 다시는 볼 일 없는 뜨내기가 된다. 이제 새로운 개인 투자자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원금을 빨아 먹기(?) 위해 크립토VC는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자신들‘만’의 투자 수익 극대화를 꿈꾸며 스캠을 불러모으는 피리를 불어 댄다. 2019년에 했던 대로 2020년도 화이팅.

타로핀(ID) ‘코린이 개나리반’ 포럼 운영자

※외부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합니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조인디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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