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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가 건드린 '이란·리비아 트라우마'···미국은 폭발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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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을 습격한 시위대가 철수했음에도 미국이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트라우마’가 된 2가지 사건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달 31일 이라크의 친이란 시위대가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을 습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이라크의 친이란 시위대가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을 습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라크 내 친(親)이란 시위대가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을 습격한 것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들이 대사관에 진입해 불을 지르고 반미 구호를 외치자, 미국 정부는 병력 750여명 파병을 결정하고 공수부대 투입 대기령을 내리는 등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 결국 시위대는 이틀 만에 물러났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경고하고 나섰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동의 지도자들과 통화하며 이란을 압박하고 있다.

인명 피해가 없었음에도 미국이 ‘공수부대 투입’을 거론하며 강경하게 대응한 데는 ‘1979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습격’과 ‘2012년 리비아 주재 영사관 테러’가 큰 영향을 끼쳤으리란 게 미 언론의 평가다.

인질 수십명 444일 억류, 특공대원 사망... ‘이란 트라우마’ 시작   

1979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습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아르고'

1979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습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아르고'

미국과 이란은 20세기 중반 서로 ‘혈맹’이라 칭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미국 정부는 소련 세력이 남하하는 것을 막고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이란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무함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의 독재에 눈을 감았다.

독재정권에 비밀경찰까지 지원할 정도로 돈독했던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깨진 것은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면서였다.

독재에 신음하던 시민들의 분노는 국왕의 망명을 받아준 미국으로 향했고, 11월 4일 마침내 미국 대사관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시위대는 외교관과 직원 등 70여 명을 인질로 붙잡았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협상이 계속 결렬되자 분노한 미 정부는 1980년 4월 이란과 단교했다. 특수부대를 투입해 인질 구출 작전을 벌였지만 실패, 부대원 8명이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 자부하던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1년여를 끌던 인질 사건은 1981년 1월 20일, 인질 전원이 석방되며 종지부를 찍었다. 대사관 공격 444일 만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수십 년이 지난 2015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핵 합의를 끌어내며 잠시 화해 무드가 조성됐지만 트럼프가 취임하며 원점으로 돌아갔다.

 1979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습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아르고'

1979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습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아르고'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습격 사건은 2012년 할리우드 톱스타 벤 애플렉이 연출하고 직접 주연을 맡은 영화 ‘아르고’에서 다뤄져 다시 한번 주목받기도 했다.

영화는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용케 캐나다 대사관으로 탈출해 숨어있던 미 대사관 직원 6명을 할리우드 SF 영화 제작자로 속여서 무사히 탈출시킨 실화를 담았으며,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등을 받았다.

중무장한 수십명 테러에 美 대사 사망 ...전 세계 경악

2012년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 습격 사건을 다룬 영화 '13시간'.

2012년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 습격 사건을 다룬 영화 '13시간'.

중동ㆍ북아프리카 등 이슬람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 항시 긴장 상태인 것은 몇 해 전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이 크게 공격받은 일과도 관련 있다.

2012년 9월 11일, 리비아의 이슬람 무장단체가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을 습격했다. 이들은 인근 CIA 비밀본부까지 공격해 미 정부를 말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발단은 영화 한 편이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비하한 영화 ‘무슬림의 무지함(Innocence of Muslims)’의 내용이 알려지자 이슬람권 국가 전역에서 반미 시위가 열린 것이다. 당시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사망 후 혼란스런 상황이던 리비아에선, 알카에다를 비롯한 무장세력들이 반미 시위를 더욱 격하게 몰아갔다.

수류탄, 기관총 등으로 중무장한 수십명이 영사관을 습격했고,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했던 영사관 측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 공격으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주 리비아 대사 등 미국인 4명이 사망했다. 미국 대사가 테러로 살해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당시 오바마 정부에 쏟아진 비판은 엄청났다. 이 지역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대사관ㆍ영사관 경호를 소홀히 한 데다 사건 발생 이후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힌다.

지난달 31일 이라크의 친이란 시위대가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을 습격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이라크의 친이란 시위대가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을 습격했다. [EPA=연합뉴스]

이 사건 역시 2016년 영화로 나왔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 감독이 연출한 ‘13시간’이란 작품이다.

영화는 단 6명의 경호원이 수십 명의 무장 괴한과 맞서는 상황을 그려내는 동시에, 당시 미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얼마나 무능하게 대처했는지를 담아냈다. 지나치게 미국 시각에서 그렸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만큼 이 사건이 미국인들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겼단 반증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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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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