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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관범의 독사신론(讀史新論)

독립문 행진 한국군 맞는 인파, 독립국 ‘대한민국’을 선언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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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① 100년 전 달력의 새해 메시지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 달력을 펼친다. 대한민국 달력으로 올해는 2020년, 아라비아 숫자 0과 2가 사이좋게 두 개씩 들어간 조합이다. 이 조합이 들어간 달력이 처음 나온 해는 18년 전, 그러니까 한일 월드컵이 있었던 2002년이었다. 이 조합이 들어간 달력이 다시 나올 해는 180년 후, 그 해 2200년에는 과연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3·1절 대신 독립선언일로 표기 #개천절도 국경일에 처음 올려 #대한제국 황제 기념일은 빠져 #자유와 평화, 새로운 미래 꿈꿔

대한민국 달력은 100년 전에도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학무부는 임시정부 수립 후 첫 번째 새해가 되는 1920년을 앞두고 대한민력(大韓民曆)이라는 달력을 제작했다. 북간도 화룡현 명동학교 건축기 뒷면에서 처음 실물이 발견된 이 달력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임시정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북간도 한인 교민사회는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대한민력을 공유하는 달력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0년 발행한 ‘대한민력’ 달력. 국내 진공작전에 성공해 고국으로 개선하는 그림을 담았다. 3월 1일 독립선언일과 10월 3일 개천절을 국경일로 표기한 점도 눈에 띈다. [중앙포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0년 발행한 ‘대한민력’ 달력. 국내 진공작전에 성공해 고국으로 개선하는 그림을 담았다. 3월 1일 독립선언일과 10월 3일 개천절을 국경일로 표기한 점도 눈에 띈다. [중앙포토]

대한민력 상단에는 흥미로운 그림이 있다. 대한민국 기병과 보병이 독립문을 지나 행진하고 있고 길가에는 환호하는 인파로 가득하다. 독립문에 두 태극기가 각각 좌우를 향해 걸려 있어 이날이 경축일임을 알려 준다. 이 그림의 좌우 양단에는 각각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데, 우측 태극기 아래에는 ‘독립’ 두 글자가, 좌측 태극기 아래에는 ‘만세’ 두 글자가 적혀 있다. 다시 ‘독립’ 두 글자 아래에는 ‘개천절’(음력 10월 3일)과 ‘독립선언일’(3월 1일)이, ‘만세’ 두 글자 아래에는 ‘중화민국 9년’과 ‘서력 1920년’이 기입돼 있다. 물론 전체 그림 위에는 ‘대한민국 2년’이 표시돼 있다.

북간도 명동학교 건축기 뒷면에서 발견

1919년 4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재미 한인 독립선언. 교민들이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19년 4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재미 한인 독립선언. 교민들이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림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행진하는 대한민국 군대를 향해 독립문 주변에서 한인이 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완전히 해방된 감격의 그 날을 표상하고 있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예측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2년’ 안에 맞이해야 할 그 날이 되어야 한다는 의지가 드러나 있다. 어쩌면 돌아오는 ‘독립선언일’이 감격의 그 날이 될 수 있을까? 독립선언일이란 글자 그대로 독립을 선언한 날, 곧 미국의 ‘Independence Day’ 같은 날. 독립을 선언한 미국이 독립전쟁으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국이 됐듯이 대한민국 역시 미국의 길을 걸어 불원간 독립국이 된다면? 1919년 4월 재미 한인이 미국 독립 선언의 성소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시가행진을 벌인 데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참고로 1920년 당시 대한민국의 국경일은 ‘독립선언일’과 ‘개천절’이었지만 해방 후 여기에 ‘광복절’과 ‘제헌절’이 추가됐다. 1945년 8월 15일과 1948년 7월 17일의 역사적 의미를 국가의 경사에 담은 것이다. 다만 이때 ‘독립선언일’이라는 본래의 이름 대신 ‘삼일절’이라는 다른 이름을 사용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른 국경일과 달리 기념의 사유가 되는 구체적 명칭을 상실하고 앙상하게 숫자만 남았기 때문이다. ‘삼일절’에 친숙한 지금에 와서는 대한민력에 적혀 있는 ‘독립선언일’이라는 본래의 이름이 낯설기만 하다.

대한민력은 대한제국 사람들에게도 낯설게 보였을 것이다. 대한제국의 국경일이라면 고종이 나라를 다스린 광무연간에는 황제의 생일과 즉위일, 황태자의 생일, 그리고 조선 건국 기념일인 ‘개국기원절’, 대한제국 선포 기념일인 ‘계천기원절’이 있었다. 순종이 황제의 자리에 있었던 융희연간에는 황제의 생일과 즉위일, ‘개국기원절’과 ‘계천기원절’, 그리고 대한제국 철거 맹세일이라 불러도 좋을 ‘묘사서고일’이 있었다. 이와 비교하면 대한민력에는 대한제국의 황제에 관한 기념일이 없고 대신 기미년 독립 선언을 기념하는 ‘독립선언일’이 들어섰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의 변화다. 조선에서 시작한 대한제국이라는 현존 왕조에 관한 기념일 대신 민족의 시조를 기념하는 ‘개천절’이 들어섰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의 변화다.

대한매일신보를 즐겨 읽던 독자라면 대한민력에 ‘대한민국 2년’ ‘중화민국 9년’ ‘서력 1920년’이 기입됐다는 사실에서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 신문은 1905년 8월부터 네 해 남짓 제1면에 한국과 세계의 기년을 적었다. 이를테면 1905년은 ‘단군 개국 4238년’ ‘기자 원년 3027년’ ‘대한 개국 514년’ ‘일본 명치 38년’ ‘청국 광서 31년’ ‘음력 을사’이다. 이와 비교하면 대한민력은 단군, 기자, 조선 기원이 사라지고 대한민국 기원이 들어섰다. 일본 천황 기원과 청나라 황제 기원이 사라지고 중화민국 기원과 서력 기원이 들어섰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의 변화다.

실은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대한제국 사람들은 과연 대한민력의 그림을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태극기가 펄럭이는 독립문을 통과하는 한국군을 환호하며 독립 만세를 부르는 인파를 보고 감정이입이 잘 될 수 있었을까.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림은 즉각 투쟁, 즉각 해방, 즉각 독립을 선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러일전쟁 결과 독립국 지위를 상실하고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시절 대한제국 사회에서 솟구쳤던 자강의 외침과는 거리가 있었다. 국가의 독립은 자강에 달려 있고 자강의 방법은 교육과 산업이니 한국인 모두 분발해서 스스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독립은 자강의 목표이지만 독립보다 중요한 것은 자강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자강의 완성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자강을 고취한 사회단체 대한자강회를 결성한 장지연은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자강회 발기해서 내일 당장 자강 능력이 생길 리는 없다. 나는 평생 자강에 노력하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자손에게 이 의무를 전해 주겠다.” 늘 어제와 같았던 오늘만 있는 줄 알고 그 오늘에 매몰되는 삶이 아니라 오늘과 다른 새로운 내일이 있음을 알아 그 내일을 위해 오늘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 본래는 그런 중립적인 취지였다. 그렇게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달라지면 한국의 역사도 마침내 변한다는 뜻이었다.

장지연 “평생 분발해 실력 쌓아야”

여기에는 자강의 결과 언제쯤 독립에 도달할지 계산한다는 발상은 없었다. 그렇지만 역사의 전환기를 살아가고 있는 당대인이 체감하는 역사 변화의 햇수라는 게 있었다. 이를테면 을사늑약 이듬해 황성신문에는 ‘일본유신삼십년사’라는 연재물이 여러 달 계속했다. 의도는 명확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한제국도 일본제국처럼 유신 30년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자. 1906년 이 해 존 믹슨은 헐버트가 발간한 월간지 『한국평론』에 ‘1975년 서울 방문기’라는 미래소설을 기고했다. 독립을 잃은 대한제국이 자강에 힘써서 30년 후 독립을 되찾고 70년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개명한 나라, 가장 발전한 민족이 돼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국의 유신은 자강의 본뜻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고종 퇴위 후 한국의 유신이란 이토 히로부미의 지도에 따른 대한제국 철거 작업이었다. 1910년 순종은 한국의 진정한 유신을 위해 문명국 일본에 나라를 바친다고 칙유했다. 1918년 민원식은 조선 민족이 완전히 일본에 동화된 30년 앞날의 ‘발전’을 염원했다. 유신과 발전. 30년이면 역사가 변한다는 달콤한 미래. 그럼에도 국망 후 10년도 안 돼 한국인은 피어린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것은 미개한 군국주의 세상에서의 유신과 발전이라는 낡은 미래에서 벗어나 문명한 인도주의 세상에서의 자유와 평화라는 새로운 미래를 향하는 외침이었다. 대한민력이 그려낸 대한민국 2년의 독립 만세는 그 새로운 미래가 실현된 순간의 형상이었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백 년 전에 내다본 그 미래의 참뜻이 실현되길 바란다. 한국의 독립과 함께 동양의 평화, 세계의 평화, 인류의 행복을 말한 독립선언서의 그 원대한 이상이 세계 개조의 신기운이 되기를 희망한다.

◆노관범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수학했다. 조선 말기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는 시기 한국의 역사와 사상을 공부했다. 지은 책으로 『고전통변』(2014)과 『기억의 역전』(2016)이 있다. ‘독사신론’은 오늘의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새롭게 보자는 뜻이다.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