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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깜깜, 野는 답답"···위기해결사 이헌재도 걱정 앞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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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재원만 낭비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자칫 중구난방의 해가 될까 두렵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성룡 기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성룡 기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새해 전망은 엄혹했다. '위기 해결사'로 불리는 그조차도 걱정이 해법보다 앞서는 듯했다. 이 전 부총리는 "반등의 계기를 찾지 못한 채 2019년이 지나 가버렸다"며 "올해는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했다. 재정 지출을 늘렸지만 일자리, 소비, 투자가 늘어나지 않은 데 대해 "타겟팅이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구조적 문제와 4차 산업 혁명 등이 얽힌 복합적 위기인데 단순 경기 변동으로 인식한데 따른 결과라는 지적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답답함도 토로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깜깜절벽이고 야당은 더 답답하다"고 일갈했다.
민간 싱크탱크인 여시재는 2일 이런 내용의 이 전 부총리(여시재 이사장) 인터뷰를 전했다. 전문은 여시재 홈페이지(yeosijae.org)에서 볼 수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약.

“재정확장, 고용·소비·투자 자극 못 해”

지난해 경제를 평가한다면. 
전망했던 것보다 더 나빴던 것 같다. 변화에 대한 준비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정부의 정책 또한 적절하지 못했다. 낮아진 잠재성장률만큼도 성장하지 못했다는 건 심각하다. 
올해 전망은.
올해도 어려울 것이라 본다.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비상배낭을 준비해두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재정지출이 고용과 소비·투자를 보장하지 않고 그 추세선도 내려가고 있다. 연말 실물 지표가 몇 가지 호전되는 조짐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제의 토대다. 

“단기적 경기변동 아닌 구조적 전환, 재정도 '방향' 있어야”

지난 2017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당시 이헌재 전 부총리. 신인섭 기자.

지난 2017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당시 이헌재 전 부총리. 신인섭 기자.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해 논란이 많다
기본적으로 큰 방향이 잘못됐다. 재정 확대 타게팅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내부의 구조적 전환에는 눈을 감고, 단순히 경기 변동적 현상으로 (위기를) 인식한 데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 기업의 투자를 자극하지 못했다.
재정 확장이 문제라는 의미인가. 
그렇다기보다 재정 지출은 늘었지만, 쓸모가 없다는 의미다. 경기변동과 구조변환이 중첩돼있는데 이에 대한 체계 없이 재정지출을 늘리다 보니 공적인 부담만 늘었다. 미스타게팅(mistargeting)이다. 올해 예산도 기존 정책의 연장 선상에서 짜인 것이기 때문에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부동산 정책이 완전히 실패해 주거비가 올라가고 가처분 소득은 줄어드는 상황이 됐다. 

“스마트 농기업 등 미래산업·지식인 키워야” 

미래로 가려면 어디에 집중해야 하나.
낙후된 산업인 농·수·축산업 전환에 돈을 써야 한다. 동남아 고급 소비층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스마트 농·수·축산업에 기회가 있다. 둘째 기존 산업의 디지털화를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강점(수월성)이 있는 곳에 투자해야 한다. 셋째는 미래산업을 육성할 문화 예술 지식인을 키워야 한다.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 일이다. 1만 명에 1억 원씩 줘도 1조원이다. 넷째 신도시 지을 생각하지 말고, 사회공동체 개념을 집어넣어 도심을 개발해야 한다.
중국, 일본 등 대외 여건이 어렵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 보복은) 역설적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너무 늦지 않게 온 축복이다. 어느 한 국가에 (수출의) 20% 이상을 의존한다면 그것이 중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여도 문제다. 일본이 으레 필요한 부품을 계속 대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라는 점도 이번에 알게 됐다.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더 늦었다면 손쓸 수 없었을지 모른다. 조용히 준비해나가면 된다.
현 정부 출범 때 가졌던 국민의 희망이 많이 희석된 듯하다.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미래에 대한 지도층의 성찰이 필요하다. 진영 싸움은 이제 더는 안된다. 국민은 문재인 정부가 어느 방향으로 가려 하는지 헷갈려 한다. 야당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든 야든 국민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열망하는가에 맞춰 대안 제시의 길로 가야 한다. 미래가 과거와 대립해서는 안 된다. 
여야가 어떻게 해야 하나. 
혁신이나 적폐 청산은 현실 부정, 자기 부정에서 시작해야 한다. 현 정부 주도 세력에도 기득권이 많다. 민주노총이나 참여연대도 현 정부가 가진 기득권이다. 정부가 혁신을 하려면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이 내부의 자기 기득권이다. 야당은 무엇이 보수의 가치인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권력과 기득권에 기생해 온 과거를 넘어서려는 자세와 각오를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을까.  
연암이 쓰고 다산이 좋아했던 말이 있다. 인순고식(因循姑息) 구차미봉(苟且彌縫)이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생각은 바뀌지 않는 것(인순고식), 문제가 생기면 정면돌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얼버무려 넘어가려는 것(구차미봉)'이라는 뜻이다. 세상만사가 이지러지는 이유는 이 여덟 글자에 담겨 있다. 머리와 마음을 열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거기서 길이 열린다. 나는 우리 국민의 역동성을 믿는다. 새 가능성이 나올 것이다. 올해 바닥을 치기를 바란다. 

세종=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이헌재 전 부총리는

외환위기 때 비상경제대책위원회 기획단장,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내며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2000년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쳐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았다. 당시 노 대통령 탄핵 사태에 따른 위기를 진화하고 과도기 경제를 순탄하게 이끌었다. 현재 민간 싱크탱크인 여시재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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