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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 철녀’ 나아름 “도쿄 찍고 유럽 다시 가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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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한국 사이클 여자 장거리의 간판 나아름은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뒤 다시 한번 유럽 무대에 도전 할 생각이다. 진천선수촌 벨로드롬 앞에서 자전거를 번쩍 들어 올린 나아름.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사이클 여자 장거리의 간판 나아름은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뒤 다시 한번 유럽 무대에 도전 할 생각이다. 진천선수촌 벨로드롬 앞에서 자전거를 번쩍 들어 올린 나아름. 프리랜서 김성태

2020년 도쿄올림픽의 해다. 올림픽 메달의 산실 진천선수촌의 열기도 뜨겁다. 지난 연말 선수촌 벨로드롬에서 만난 한국 사이클 여자 장거리 간판 나아름(30)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특히 나아름은 올림픽 이후 사이클 본고장인 유럽 진출을 노린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할 중요한 이유다.

여자 사이클 장거리 간판 선수 #2018 AG 한국 하나뿐인 4관왕 #올림픽 티켓도 유일하게 확보 #작년 한국 최초 유럽 프로팀 진출

나아름은 지난 10년간 한국 사이클 여자 장거리에서 독주했다. 2009년 3관왕을 시작으로 전국체전에서만 40개가 넘는 금메달을 따냈다. 아시아권에서도 기량은 독보적이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유일한 4관왕(여자 개인도로·도로독주·단체추발·매디슨)이었다. 그해 봄 발가락을 다쳐 두 달을 쉬고도 거둔 성과다. 나아름은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란 생각을 했다. 열심히 준비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웃었다.

나아름은 지난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탈리아 사이클 여자프로팀 알레-치폴리니에 입단했다. 세계 정상급 팀이다. 나아름은 “전부터 유럽에서 뛰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런데 (알레-치폴리니) 팀 관계자가 ‘계약한 팀 있냐’며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연락해왔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고 소개했다. 한국 선수가 유럽 팀과 계약한 건 처음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축구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뛰어든 것과 비견될 만하다.

지난해 이탈리아 여자 프로 사이클팀 '알레-치폴리니'에 입단했던 나아름.[사진 기흥인터내셔널]

지난해 이탈리아 여자 프로 사이클팀 '알레-치폴리니'에 입단했던 나아름.[사진 기흥인터내셔널]

유럽에서 사이클 도로 경기의 인기는 대단하다. ‘투르 드 프랑스’, ‘지로 디탈리아’ 등 인기 대회에 출전하는 스타 선수는 연봉과 광고 수입 등으로 연간 수십억원을 번다. 여자 종목 인기는 남자보다 조금 덜해도 간판급 선수는 억대 연봉을 받는다. 나아름은 "팀에서 태극기가 들어간 유니폼을 준비해줘 기뻤다"고 했다. 그는 "음식은 가리지 않는 편이라 잘 적응했다. 다만 휴식이 없어 체력적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막상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소속팀 상주시청, 이탈리아 알레-치폴리니 팀, 국가대표팀까지 세 가지 일정을 동시에 소화해야 했다. 두 차례 유럽에 건너가 10여개 대회에 출전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출전하는 국내 일정에 비해 엄청난 강행군이다. 그 와중에도 유럽 데뷔전에서 13위에 오르고, 전국체전에선 3관왕을 차지했다. 지난해 월드컵 3차 대회에선 이주미(32), 강현경(25), 장수지(23)와 함께 사상 처음으로 단체추발 메달(3위)을 땄다. 나아름은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유럽에서 지내면서 '유럽 선수들과 내가 다를 게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나아름은 “유럽에 60일 머물렀는데 그중 30일을 출전했다. 장시간 귀국비행 뒤 국내 대회에 나갔다. 발목과 어깨 통증이 심해졌고, 밸런스도 흐트러졌다”고 털어놨다. 김형일 중장거리 대표팀 감독은 "아름이는 국내와 클럽 대회를 병행하면서 국가대표로 월드컵도 나갔다. 통증이 심해 진통제를 먹기도 했다. 사이클에만 집중하면서 엄청난 의지로 이겨냈다"고 말했다. 힘들어도 도전하는 건 개척자가 되고 싶어서다. 나아름은 “솔직히 전국체전만 나가도 적지 않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유럽팀에서도 처음에는 많이 받지 못한다. 그래도 세계 최고 선수들과 겨루며 ‘동양인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나아름은 올해 국내에서만 뛰기로 했다. 마지막 출전일지 모르는 올림픽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다. 이번 올림픽은 출전권 확보가 어려웠다. 지역별 쿼터가 사라졌다. 대륙선수권 우승팀과 월드컵 랭킹 포인트 상위 팀만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한국이 확보한 올림픽 티켓은 나아름의 출전이 유력한 여자 도로 종목 뿐이다.

기대되는 종목은 월드컵 랭킹 2위 이혜진의 여자 경륜, 그리고 나아름이 포함된 단체추발이다. 사이클 단체추발은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과 비슷한 종목이다. 네 선수가 함께 달리면서 상대의 마지막 주자를 추월하면 이긴다. 추월하지 못하면 결승선을 세 번째로 통과하는 선수 기록으로 승부를 낸다. 단체추발에서 8위 안에 들면 옴니엄(총 6종목을 치러 점수를 합산하는 경기)과 매디슨(두 선수가 번갈아 달려 얻은 포인트를 합산해 겨루는 경기)까지 티켓 3장을 한꺼번에 확보한다. 나아름은 "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내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 운도 좋았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메달을 따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 여자 팀 랭킹은 10위다. 다음 달 세계선수권에 걸린 포인트가 많아 역전을 노릴 수 있다. 김형일 감독은 “현재 8, 9위 팀(폴란드, 프랑스)과 차이가 크지 않아 역전을 노린다”고 말했다. 만약 단체추발까지 따내면 나아름은 네 종목까지 출전할 수 있다. 나아름은 “말은 하지 않아도 모두 이번이 기회라는 걸 알고 있다. 팀워크가 좋아 세계선수권에서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나아름은 ("2012년) 런던(도로 13위)에선 겁 없이 달렸고, (2016년) 리우(30위)에선 오르막을 잘 달리고도 내리막에서 추월당했다. 마음이 약해졌던 것 같다”며 “도쿄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 죽을 각오로 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탈리아 팀에서 '다시 올 수 있다오면 오라'고 했다. 올림픽이 끝난 뒤 본격적인 유럽 무대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국내에도 기량은 뛰어나지만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모르는 선수들이 있다. 앞장서서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진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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