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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정동근의 활약, 그리고 KB손해보험의 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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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의정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경기에 출전한 KB손해보험 정동근. [사진 한국배구연맹]

29일 의정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경기에 출전한 KB손해보험 정동근. [사진 한국배구연맹]

드디어 기대주 정동근(24)이 날아올랐다. 프로 데뷔 후 최고의 경기력을 펼치며 KB손해보험의 후반기 첫 승을 이끌었다.

KB손해보험은 29일 경기도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V리그 4라운드 경기에서 대한항공을 세트 스코어 3-1(25-22, 25-23, 23-25, 25-19)로 이겼다.시즌 5승(14패, 승점 18)을 거둔 KB손해보험은 한국전력(5승 13패, 승점 17)을 제치고 최하위에서 벗어났다.

KB손해보험은 이날 외국인선수 브람 반 덴 브라이스 없이 싸웠다. 복근 부상 이후 복귀했던 브람을 퇴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브람의 자리는 정동근이 채웠다. 정동근은 이날 김학민(22점), 김정호(18점)와 함께 공격을 이끌었다. 블로킹(5개, 종전 3개)과 득점(18점, 종전 11점), 공격성공(13개, 종전 10개) 모두 지난 12월 1일 우리카드전에서 기록한 개인 최다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웠다. 범실도 4개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정동근은 이날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70점'을 줬다. 정동근은 "생각보다 세터 양준식 형과 호흡이 잘 맞았다. 하지만 수비가 잘 안 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권순찬 감독은 이날 경기전 정지석-곽승석이 빠진 상대 레프트의 리시브를 흔든 뒤 비예나나 임동혁에게 오픈 공격이 올라가면 블로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정동근이 블로킹 5개를 잡아내면서 이 계획을 완벽하게 실행했다. 임동혁도 블로킹에 대해선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권 감독은 "동근이가 라이트로 연습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정동근은 "대한항공 선수들 타점이 높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타이밍이 잘 맞았고, 운도 따랐다"고 했다.

비예나의 공격을 가로막는 KB손해보험 정동근(오른쪽). [연합뉴스]

비예나의 공격을 가로막는 KB손해보험 정동근(오른쪽). [연합뉴스]

정동근은 "'외국인선수가 없다. 대표 선수(황택의, 정민수)가 없다. 7위라고 해서 져도 된다'는 핑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선수들이 없을 때 더 똘똘 뭉쳐서 좋은 경기력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택의나 민수 형이 대표팀에 간 동안 잘 해서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고 했다.

정동근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2015~16시즌 1라운드에서 지명돼 삼성화재에 입단한 뒤 1년 만에 군(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다. 이후 복무중인 2018년 현금 트레이드로 한국전력에 간 뒤 김진만과 1대1 트레이드로 KB손해보험 유니폼을 입었다. 그만큼 KB손해보험은 정동근을 원했다. 키 1m92cm의 장신에다 리시브가 되는 왼손잡이라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동근은 "원래는 오른손잡이다. 배구만 왼손으로 한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됐다"며 "대학 때까진 장점이 됐지만 프로에선 외국인선수들이 라이트라 힘들기도 하다. 왼손으로 레프트에서 공격하는 것도 정말 어렵다. 그래도 잘 이겨내고 싶다"고 했다.

2018~19시즌 도중 군복무를 마친 정동근은 KB에 합류했다. 그러나 삼성 시절과 마찬가지로 KB손해보험도 외국인 선수들을 라이트로 선발하는 바람에 주로 레프트로 나서야 했다. 정동근은 "솔직히 두 포지션을 오가는 게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는 "라이트를 다시 하게 되면서 힘들었다. 학창 시절 했던 포지션인데도 호흡 문제도 있고, 한동안 하지 않아 어려웠다. 그래도 조금씩 맞추니까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같이 왼손잡이 레프트였던 선배 김정환과 대화를 통해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정동근은 "밥을 먹거나 다른 일은 오른손으로 한다. 배구를 시작할 때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공을 때렸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정동근은 "밥을 먹거나 다른 일은 오른손으로 한다. 배구를 시작할 때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공을 때렸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정동근이 군복무 이후 풀시즌을 치르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체력 문제는 없다. 그는 "전혀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가 느낀 건 미안함이었다. 팀이 초반 12연패를 포함해 어려움을 겪었을 때 활약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동근은 "팀에 많이 보탬이 못 됐다. 비시즌 연습한 것들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늘 이겼지만 잘했다기보다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은 게 맞다"고 했다. 이어 "오늘을 계기로 팀원들이 자신감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연패 기간 울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우는 선수가 많았는데 나는 속으로 울었다"고 웃었다.

KB손해보험과 봄 배구 마지노선인 4위 OK저축은행(10승 9패, 승점 29)의 격차는 제법 크다. 하지만 지난해 후반기 보여준 상승세를 재현한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올림픽 휴식기 이후엔 새로운 외국인선수도 합류할 예정이다. 새 외인 또한 아포짓이 유력해 정동근은 다시 레프트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한항공전처럼 자신있는 플레이를 한다면 KB손보에겐 큰 힘이 될 수 있다.

의정부=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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