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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봉지 이으면 지구 9바퀴···출시부터 '대박' 만47세 이 과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총 38만㎞.
지금까지 판매된 죠리퐁 제품(봉지)을 모두 이은 길이다. 둘레가 4만㎞인 지구를 9바퀴 돌고도 절반은 더 돌 수 있다. 1972년 출시된 죠리퐁은 올해로 만 47세다. 지금까지 총 19억 봉지가 팔렸다. 국민 1인당 평균 36봉지 넘게 먹은 셈이다. 죠리퐁은 2020년을 앞둔 지금도 무한 변신을 시도하며 장수를 누리고 있다.

[한국의 장수 브랜드] #19. 윤영달 크라운제과의 첫 제품 조리퐁

당액도, 기계도 직접 개발…끼니 거르고 공장 태우기도

죠리퐁. [사진 크라운제과]

죠리퐁. [사진 크라운제과]

대한민국 최초의 시리얼 과자인 죠리퐁은 윤영달 크라운해태홀딩스 회장이 직접 만든 첫 제품이다. 60년대 당시 상무였던 윤 회장은 미국 출장을 갔다가 미국인들이 시리얼로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먹을 게 부족해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이 식사 대용으로 먹을 ‘한국식 시리얼’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윤 회장은 귀국 즉시 바로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당시 아이들의 최고 인기 간식이었던 뻥튀기에서 착안, 집무실에 뻥튀기 기계를 직접 들였다. 당시 주로 먹던 옥수수·보리·좁쌀·팥·밀·쌀 등을 직접 다 튀겨봤다. 그는 튀긴 곡물로 식사를 대신하며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집무실에서 밤새 기계를 돌리는 바람에 기계가 터져 묵동(서울 중랑구) 공장을 다 태우기도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낙점된 곡물은 ‘밀쌀’이었다. 맛과 식감이 훌륭하고 포만감이 높았다. 영양까지 풍부하다는 점에서 시리얼 원료로 제격이었다. 튀긴 밀쌀 겉면에는 윤 회장이 직접 개발한 당액을 입혔다. 밀쌀을 튀겼을 때 느껴지는 씁쓸한 맛을 잡아주기 위해서다. 우유와 함께 먹으면 더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을 냈다. 죠리퐁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즐거운, 굉장한, 훌륭한’이란 뜻의 죠리(JOLLY) 와 튀길 때 나는 ‘펑’ 소리를 조합한 이름이다.

현금 들고 공장 앞에 줄 선 도매상들  

1993년 죠리퐁 CF 장면. 왼쪽부터 전도연, 임현식, 양동근. [사진 크라운제과]

1993년 죠리퐁 CF 장면. 왼쪽부터 전도연, 임현식, 양동근. [사진 크라운제과]

죠리퐁은 출시 직후부터 인기가 폭발했다. 도매상들은 현금을 들고 공장 앞에 줄을 서 죠리퐁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공장을 완전가동했지만, 생산 물량이 한정돼 선착순으로 지급했기 때문이다. 유사품만 10개가량 출시될 정도로 죠리퐁은 소위 ‘대박’을 쳤다. 덕분에 크라운제과는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1976년 거래소에 상장됐다.

죠리퐁의 인기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팬클럽도 생겼다. ‘죠리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네티즌 팬 페이지다. 크라운제과는 이를 바탕으로 2002년 죠리퐁 자체 홈페이지인 ‘죠리퐁랜드’를 운영했다. 당시 회원 수는 16만명에 달했다. 크라운제과 공식 홈페이지 회원보다 더 많았다.

출시 초기 패키지를 재현한 추억의 죠리퐁. [사진 크라운제과]

출시 초기 패키지를 재현한 추억의 죠리퐁. [사진 크라운제과]

수많은 유사품에도 죠리퐁이 끝까지 살아남은 비결은 기술력이다. 코팅한 원료를 올려 위아래로 건조해 한알 한알 바삭바삭하게 하는 ‘네팅(netting) 건조’가 그 핵심이다. 원조의 저력은 여름 장마철에 확인됐다. 다른 유사품은 고온다습한 날씨 탓에 눅눅해지고 당액이 녹아 들러붙었다. 때문에 덩어리가 뭉쳐져 딱딱하게 굳어 먹을 수 없는 정도가 됐다.

이 기술을 구현한 기계도 물리학을 전공한 윤 회장이 직접 개발한 것이다. 뻥튀기 기계 원리를 바탕으로 만든 '소형 수동 퍼핑 건(Puffing Gun)'이 그 주인공이다. 퍼핑(Puffing)은 기름에 튀기지 않고 고온·고압으로 순간적으로 팽창시켜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기계 내부의 온도와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크라운제과는 이후 1995년 자동 퍼핑 건 설비를 갖추고 모든 공정에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숫자로 보는 죠리퐁.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숫자로 보는 죠리퐁.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초’ 기록 경신…“죠리퐁의 기적”도   

2006년 죠리퐁 CF 모델 공유. [사진 크라운제과]

2006년 죠리퐁 CF 모델 공유. [사진 크라운제과]

죠리퐁의 변신은 반백 살이 가까워진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1995년 종이로 만든 스푼을 봉지에 넣은 데 이어 15년 후에는 여기서 진화된 플라스틱 스푼을 도입했다. 플라스틱 스푼에 조립완구가 붙어있는 형태로, 이를 32개 모으면 '드림볼'이란 공이 완성되는 '드림볼스푼'이다. 모으는 재미와 완성하는 재미를 더했다.

죠리퐁을 식사 대용으로 먹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대용량 제품(1998년)도 출시했다. 2012년에는 봉지를 뜯자마자 손대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세로로 길게 만든 ‘마시는 죠리퐁 이지샷’도 내놓았다. 최근에는 커피 전문업체와 협업해 만든 ‘죠리퐁라떼’(2017년)를 비롯해 ‘죠리팡 뮤즐리’(2018년), ‘죠리퐁 마시멜로’(2019년) 등도 새롭게 선보였다.

‘최초’라는 타이틀도 계속해서 경신 중이다. 지난 2013년 국내 제과업계에서는 최초로 할랄(HALAL) 인증을 획득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 전 세계 무슬림을 겨냥해 미국과 유럽 등에도 수출 중이다. 할랄은 아랍어로 “(신이) 허용하다”는 뜻으로 무슬림의 삶 전반에 적용되는 율법이다. 이에 따른 성분 및 제조과정에 대한 인증을 받은 식품만 이슬람 국가에서 유통된다.

크라운제과가 지난 2016년 죠리퐁을 ‘1호 희망과자’로 선정해 진행한 실종아동 찾기 캠페인 ‘희망과자 프로젝트’도 식품업계 최초 기록을 썼다. 죠리퐁 제품 뒷면에는 실종 아동 6명의 사진과 당시 나이, 실종 장소, 제보 전화번호 등을 적고 앞면에는 “함께 찾아주세요”라는 문구를 새겼다. 이를 통해 실제 이재인(62)씨가 지난 2017년 52년 만에 여동생을 찾기도 했다. 이 사연은 “죠리퐁의 기적”으로 알려졌고 이에 힘입어 죠리퐁 매출도 덩달아 늘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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