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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잦아 지붕에 신경…경회루, 안에서 밖을 내다봐야 제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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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호 30면

[도시와 건축] 강수량이 가른 동서양 건축

문화의 특징은 지리가 결정한다. 전 세계는 크게 둘로 나뉜다. 벼농사를 짓는 지역과 밀농사를 짓는 지역이다. 이 둘을 결정하는 요소는 강수량이다. 벼는 재배하는 데 밀보다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일 년에 1000㎜ 이상의 비가 내리면 벼, 1000㎜ 이하가 내리면 밀을 재배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지역은 계절풍의 영향으로 특정 시기에 비가 많이 내리는 몬순기후다. 따라서 대륙의 동쪽은 벼농사를 짓는다. 한국·중국·일본·동남아시아 국가가 이에 해당한다.

밀농사 서양의 건축은 벽이 핵심 #벼농사 동양은 지붕이 절반 차지 #내외부 경계 모호한 공간감 발달 #풍수지리는 건물·자연 관계 중시

반대로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지역은 장마철 같은 집중호우 없이 비가 일 년 내내 고루 내리고 강수량도 동쪽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인 동아시아에서는 벼를 재배하고 서쪽인 유럽에서는 밀을 재배한다.

서양 건축은 내외부 벽으로 확실히 구분

지붕과 기둥이 강조된 경복궁 내 경회루.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하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지붕과 기둥이 강조된 경복궁 내 경회루.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하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밀과 벼는 재배방식에 차이가 있다. 재배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벼농사 지역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밀농사 지역은 개인주의가 강하다. 버지니아대학 토마스 탈헬름(Thomas Talhelm) 교수는 논문 ‘벼농사와 밀농사에 따른 문화적 차이의 증거’에서 그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벼농사는 비가 많이 와서 물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치수를 위한 토목공사가 많이 필요하다. 물을 담는 작은 저수지들을 만들어야 하고 모내기도 집단으로 모여서 한다. 벼농사에서는 내 땅에서 사용한 물을 이웃의 땅으로 물길을 내어 전달해 주어야 한다.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

밀은 맨땅에서 자라고 비도 일 년 내내 고루 내리기 때문에 관개수로를 만들 필요도 없다. 밀농사는 벼농사보다 서로 협력할 필요도 없고, 모여서 살 필요도 적다. 이런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집단으로 모내기하던 사람에 비해 개인주의적 성격이 만들어진다. 벼농사를 짓는 지역은 밀농사 지역보다 이혼율이 매우 낮은 것도 이런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른 노동방식은 다른 문명의 성격을 만들었다.

최초의 문명은 건조기후대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3500년께 수메르 문명의 도시 우루크의 집들은 진흙 벽돌로 만들어서 벽을 세우고 그 위의 평평한 지붕을 올렸다. 비가 적게 내리니 지붕은 그다지 중요한 건축요소가 아니었다. 대신 벽은 영역을 구분하고 지붕을 받치고 있었기에 중요한 건축요소였다. 수메르의 건축기술이 북서쪽에 있는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비가 적게 내리는 밀농사 지역에서는 자연스럽게 벽돌이나 흙을 이용해서 벽 중심의 건축이 발달했다.

그러나 벽 중심의 수메르 건축양식이 동쪽으로 전파되었을 때는 그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극동아시아에서는 장마철에 집중호우가 내리기 때문이다. 집중호우가 내리면 땅이 물러지게 되어서 벽돌 같은 무거운 재료로 만든 벽은 옆으로 넘어가서 집이 무너질 수가 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일부 북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벼농사를 짓는 지역에서는 건축 재료로 가벼운 재료인 목재를 사용해야 했다. 목재를 사용하게 되면 다 좋으나 물에 젖으면 썩어서 무너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땅과 만나는 부분에는 방수재료인 돌을 사용하여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나무기둥을 세웠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하기아소피아 성당.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됐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하기아소피아 성당.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됐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기후는 건축에도 영향을 미친다. 벼농사 지역과 밀농사 지역의 건축은 이렇게 다르게 발전해왔다. 따라서 사람들이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도 다르게 진화해왔다. 밀농사 지역은 벽 중심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벽은 창문을 내기 위해서 구멍을 크게 뚫으면 집이 무너진다. 그래서 창문의 크기가 작다. 서양의 건축공간은 내부와 외부가 벽으로 확연히 나누어지게 되는 공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안에서 밖을 볼 일이 없으니 건축 디자인을 할 때도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을 하게 됐다. 서양 건축에서 입면 디자인이 화려하고 중요하게 된 이유다. 창문의 비율도 중요하고 각종 조각품으로 건축의 입면을 꾸몄다.

이에 비해 동양의 건축에서는 서양만큼 입면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동양 건축물을 보면 건축물 입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는 지붕이다. 동양은 서양보다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지붕의 방수기능이 가장 중요했다. 비가 많이 오니 빗물이 잘 흐르게 지붕을 경사지게 높게 만들었다. 그러니 건축 입면을 보면 지붕이 많이 보인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난방시스템이 온돌이어서 2층짜리 집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건물을 지으면 지붕이 절반을 차지한다. 건축물의 입면은 그저 지붕을 받치기 위한 나무기둥이 있을 뿐이다.

뻥 뚫린 개방감이 동양 건축의 정수

그런데 기둥구조는 지붕을 받치기 위한 벽이 필요 없다. 그러다 보니 기둥과 기둥 사이는 뻥 뚫린 개방감을 가지기 쉽다. 비가 오더라도 처마가 길게 가려주어서 창문을 열어놓아도 비가 들이치지 않기 때문에 창문을 열고 바깥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처마 아래에는 툇마루를 만들어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동양에서는 건축공간의 내부와 외부가 명확하게 나뉘는 대신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감이 발달하게 됐다.

상상해보자. 오랜 옛날 더운 여름 장마철에 비가 오면 밖에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 큰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동양은 안에서 밖을 보는 일이 일상이었고, 집에서 안과 밖의 관계가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경관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건축물의 배치를 결정한다. 안에서 밖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건축디자인에서 중요한 결정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건축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주변이 보이기 때문에 건축에서 주변 상황과 주변 환경요소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건물의 뒤에는 산이 있어야 하고, 남쪽을 향해서 창이 열려야 하며, 남쪽에는 물이 흐르면 좋다. 뒤에 산이 있고 아래에 강이 있어야 비가 왔을 때 배수가 잘되고 그래야 나무기둥이 썩지 않고 집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주변과의 ‘관계’가 중요한 건축으로 발전한 것이다.

동양에서는 건축물이 자연을 바라보게 하는 프레임으로서 작동한다면 서양에서는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건축이 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존속되는 건축물이 적은 것이다. 잘 썩는 목재라는 재료 자체의 제약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동아시아에서는 피라미드나 하기아소피아 같은 거대한 매스를 가지는 건축물이 적다. 대신 건축물 안에서 바깥 경치를 구경하기에 좋은 건물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인들에게 경복궁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게 해주려면 근정전이나 경회루를 밖에서만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된다. 안에서 바깥경치를 보게 해주어야 진정 우리 문화의 진수를 전달할 수 있다.

동서양 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었고, 품종의 차이는 농사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방식의 차이는 집단의식의 차이를 만들었다. 강수량의 차이는 건축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공간은 행동방식과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 지리, 심리, 건축은 하나로 연결된 것이다. 자연은 인간을 낳았고, 인간은 건축을 낳았고, 건축은 다시 인간을 바꾸었다. 21세기 현재, 인간이 만든 것들의 영향이 너무 커져서 자연까지 바꾸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가 그 증거다. 바뀐 기후는 이 사이클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할 것이다. 다음에는 그 순환의 사이클에 인간이 빠질 수도 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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