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배달되게..." 故 문중원 기수의 마지막 선물 주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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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원 기수 영정 앞에 놓인 성탄 선물. [사진 민주노총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문중원 기수 영정 앞에 놓인 성탄 선물. [사진 민주노총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한국마사회의 부조리함을 폭로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문중원 기수가 숨지기 전 자녀들을 위해 성탄 선물을 주문한 사실이 공개됐다.

24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과 유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한국마사회의 비리 의혹을 유서에 남기고 세상을 등진 문 기수는 목숨을 끊기 하루 전 8살 딸과 5살 아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문했다.

문 기수는 지난달 28일 온라인으로 자녀들의 선물을 주문하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배송 날짜를 예약했다.

문 기수 부인 오은주씨는 "남편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이브 날에 배송되도록 예약 주문해둔 사실을 남편이 남긴 편지를 보고 알았다"며 “선물은 지난달 30일 자택에 도착했고 아이들에게 성탄절 당일에 주기 위해 자동차에 보관해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자녀들을 생각했던 다정했던 남편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간 마사회가 하루빨리 제도를 개선해 더는 남편 같은 희생자가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기수가 자녀들에게 준비한 마지막 성탄 선물은 영정 사진 앞에 놓였다.

공공운수노조는 "문 기수의 8살 딸이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 같다"며 "선물을 받고 장례식장에서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어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좋아하던 레고를 받은 5살 아들은 아빠가 다시 돌아오는 줄 알고 있다"며 "장례식장 앞에 119구급차가 도착할 때마다 ‘아빠가 오는 거예요?’라고 엄마에게 묻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기수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공공운수노조와 한국마사회는 좀처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유족과 노조는 지난 21일 경기 과천시 한국마사회 본관에서 집회를 열고 마사회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이날 본관으로 진입하려던 유족과 노조는 경찰에 막혔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유족을 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족과 노조는 "경찰이 고인의 부인인 오씨의 머리를 발로 차고 목을 졸랐다"고 주장하며 경찰관 2명을 폭행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마사회와 갈등이 극에 치닫는 가운데 유족과 노조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제도개선, 공식 사과 등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문 기수의 장례 절차를 연기하고 있다.

문 기수는 지난달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로 인해 기수로서 한계를 느꼈고, 이에 조교사가 되기 위해 면허를 취득했지만 부조리한 선발 과정으로 인해 마방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취지의 메모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정혜정 기자 jeong.hyejeong@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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