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바둑돌과 지휘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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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40기KT배왕위전'

<도전 5번기 제1국>
○ . 왕위 이창호 9단 ● . 도전자 이영구 5단

제6보(60~76)=흑▲ 두 방의 공격은 한가한 수였을까. 만사 제쳐 놓고 A로 틀어막고 봐야 했을까. 검토실에선 "그런 느낌이 든다"고 말하면서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속 시원한 대답 대신 "바둑이 너무 어려워요" 하는 신음소리가 잇따라 실내에 울려 퍼지고 있다.

흑▲들을 본 이창호 9단은 60, 62로 대마를 임시방편한 뒤 64로 반상 최대의 곳을 차지했다. 이곳이 백에게 넘어가자 검토실에선 벌써 '덤' 얘기가 나오고 있다. 판이 아직 넓고도 넓은데 덤이라니!

이영구 5단은 65로 하나 던져 놓고 67로 상변을 지켰다. 65는 '참고도'처럼 백의 내장을 쏙 도려내는 수단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대마가 통째로 죽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백도 손을 빼 다른 큰 곳을 두어야 할까. 아니면 한 수 지켜 두는 게 나을까.

"모르겠습니다"고 젊은 프로들은 고개를 젖고 있다. "이런 바둑은 지옥이에요."

이제 남은 큰 곳이라면 B와 C, 두 곳이다. D의 곳도 서둘러야 할 곳이다.

얼마 전 작고한 조남철 선생은 6.25 때 전쟁에 나간 뒤 겪었던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기사는 바둑 둘 때 장군이나 지휘관의 입장에서 착수를 결정한다. 그런데 내가 막상 전쟁에 나가 보니 나는 그냥 바둑돌 한 개에 불과했다."

바둑돌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끊임없이 괴로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휘관보다 바둑돌 쪽이 더 편한 것은 아니다.

이창호 9단은 72, 74로 탐색을 거듭하더니 결국 76으로 지켰다. 집의 유혹을 떨치고 장기전을 선택했다. 의사 결정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스타일이나 성격의 문제일 수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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