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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성탄절 입법전쟁의 추억’…올해도 재현될까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이 23일 예산부수법안과 비쟁점 민생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다. 해마다 찾아오는 연말 여야 ‘입법전쟁’의 서막이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국회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 처리를 위한 ‘진짜 전쟁’을 앞두고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지난 10일 ‘4+1(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예산안 표결 처리 때 ‘한 방 먹은’ 자유한국당으로써는 강력 저지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이미 본회의장 앞에서 ‘나를 밟고 가라’는 현수막을 펼쳐 놓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터다. 한 민주당 의원은 “성탄절(25일)이 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1 공조가 부활한다면, ‘행동 개시’는 성탄절을 전후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과거의 사례를 톺아보면 국회 달력에서 성탄절은 크게 의미가 없는 공휴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쪽에선 ‘통과’를, 반대편에선 ‘저지’를 외쳐온 국회 ‘성탄절 입법전쟁의 추억’을 정리했다.

신한국당이 1996년 12월 26일 안기부법과 노동법 개정안을 기습처리하자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이 국회본회의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신한국당이 1996년 12월 26일 안기부법과 노동법 개정안을 기습처리하자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이 국회본회의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6분 본회의’=1996년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자민련 의원들은 성탄절을 국회에서 보냈다. 당시 여당(신한국당)이 추진하는 안기부법(현 국정원법)·노동관계법 개정 등 쟁점 법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야당 의원들은 ‘본회의 원천봉쇄’를 결의, ‘저지조’를 편성해 국회의장실을 점거했다. 직권상정을 시사한 김수한 당시 의장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국회 밖에서 성탄절을 보낸 야당 의원들도 있었다. 김 의장이 사회권을 넘기기로 한 오세응 당시 국회부의장의 행방을 쫓기 위해서였다. 오 부의장은 야당 의원들의 눈을 피해 거처를 옮기고 차를 바꿔 타고 다니기도 했다. 그해 12월 24일 밤 경기 분당의 한 교회에서 성탄 예배를 보고 집에 돌아간 오 부의장은 25일 아침부터 ‘잠적’했다.

1996년 12월 26일 여당의 노동법, 안기부법 개정안의 단독 기습처리와 관련해 본회의장에서 야당의원들이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방용석 의원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6년 12월 26일 여당의 노동법, 안기부법 개정안의 단독 기습처리와 관련해 본회의장에서 야당의원들이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방용석 의원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신한국당 지도부는 25일 오전 본회의 강행 처리를 위한 작전을 수립, 26일 새벽을 ‘디데이(D-Day)’로 잡았다. 야당이 방심한 사이 기습한다는 계획이었다. 25일 오후 여의도에서 가까운 호텔 4곳을 집결 장소로, 26일 오전 5시 30분을 작전 시각으로 정한 신한국당은 이를 소속 의원들에게 통보하면서 보안 유지를 당부했다. 각기 다른 호텔에서 신한국당 의원들을 태운 4대의 버스가 국회에 도착한 건 오전 5시 55분이었다. ‘첩보조’가 국회 본회의장 상황을 살피고, ‘오케이(OK)’ 사인을 보낸 뒤에야 건물 안으로 진입한 신한국당 의원들은 오전 6시부터 총 11개의 안건을 불과 6분 만에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망치국회’ 그 이후=2008년 12월 18일은 국회 역사상 최악의 폭력 사태 중 하나로 기록된 날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해 처리하려는 여당(한나라당)과 이를 막으려는 야당(민주당)이 충돌했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 박진 외통위원장이 경호권을 발동한 가운데, 문학진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보좌진들은 망치로 외통위 회의실 문을 부쉈다. 회의실 안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보좌진들은 소화기 분사로 맞섰다. 원혜영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96년 12월 26일 신한국당 의원들의 노동법 날치기보다 더 도가 지나친 사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8년 12월 18일 한나라당은 국회 외통위 회의실의 출입문을 책상 등으로 막은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비준 동의안을 상정했고 민주당은 해머로 출입문을 부쉈다. [중앙포토]

2008년 12월 18일 한나라당은 국회 외통위 회의실의 출입문을 책상 등으로 막은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비준 동의안을 상정했고 민주당은 해머로 출입문을 부쉈다. [중앙포토]

2008년 12월 18일 한나라당은 국회 외통위 회의실의 출입문을 책상 등으로 막은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비준 동의안을 상정했고, 민주당 등 야당이 소화전 호스로 물을 뿌리자 한나라당은 소화기를 뿌리며 맞섰다. [연합뉴스]

2008년 12월 18일 한나라당은 국회 외통위 회의실의 출입문을 책상 등으로 막은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비준 동의안을 상정했고, 민주당 등 야당이 소화전 호스로 물을 뿌리자 한나라당은 소화기를 뿌리며 맞섰다. [연합뉴스]

이후 모든 쟁점 법안의 한나라당 단독 처리를 우려한 민주당은 각 상임위 회의실과 국회의장실을 점거했다. 정무위 회의장에서 농성하던 민주당 의원들은 24일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불러 “노느니 공부나 하자”며 법안 공부를 했다. 그러는 동안 원 원내대표의 지시를 받은 이종걸·이춘석 의원 등이 바나나가 든 가방을 들고 본회의장에 ‘잠입’했다. 본회의장 점거의 시작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25일 의장 집무실의 의장석을 한쪽으로 치우고 대책회의를 했다. 여야 극한 대치는 이듬해 1월 6일 쟁점법안 처리를 2009년 2월로 연기하기로 하면서 끝났다.

◇4대강 예산을 막아라=2009년에는 4대강 사업 예산을 담은 2010년도 예산안을 두고 여야 협상이 결렬되면서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를 막기 위한 민주당의 점거 농성이 이어졌다. 민주당이 극렬히 반대한 미디어법이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되면서 민주당은 더 강경해졌다. 25일 성탄절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예결위 회의장 점거 농성을 이어갔다. 당시 성탄절 농성조에 포함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취재진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보냈다. 감기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냉골 바닥에서 성탄절과 연말을 보냈지만, 예산안 통과는 막지 못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크리스마스인 2009년 12월 25일 오전 국회 예결위 회의장을 찾아 박주선 최고위원 , 문학진 의원, 이미경 사무총장과 기자들에게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중앙포토]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크리스마스인 2009년 12월 25일 오전 국회 예결위 회의장을 찾아 박주선 최고위원 , 문학진 의원, 이미경 사무총장과 기자들에게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중앙포토]

한나라당은 31일 오전 6시 30분 국회 본청 245호에서 의원총회를 열었는데, 의총 직후 그 장소를 예결위 회의장으로 변경했다. 한나라당 소속 심재철 예결위원장은 회의장 변경 소식을 민주당에 알린 지 5분 만에 예산안을 처리해 본회의로 넘겼다. 예결위 회의장을 점거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아직 법제사법위를 통과하지 못한 예산부수법안을 마지막으로 잡고 버텼지만, 김형오 국회의장은 이를 직권상정했다. 여야 충돌 속 결국 해를 넘긴 예산안은 2010년 1월 1일 새벽 준예산 사태 돌입 3시간 여를 앞두고 표결 처리됐다.

◇선진화법 시행 땐 캐럴 합창도=예산안 등 자동 부의 조항이 담긴 국회선진화법(2012년 개정된 국회법)이 시행된 2014년에는 여야가 성탄 주간에 함께 캐럴을 부르는 모습이 연출됐다. 그해 12월 22일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홍문종·이자스민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노웅래·이윤석·서영교 의원 등 20명의 목소리가 담긴 성탄절 자선 음반이 발매됐다. 이들은 국회에서 산타 옷을 입고 함께 캐럴을 합창하는 행사도 열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이윤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4년 12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원 재능기부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 발매식'에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참석한 모습. [중앙포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이윤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4년 12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원 재능기부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 발매식'에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참석한 모습. [중앙포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통합진보당이 2014년 12월 25일 국회 본청과 의원회관에 있던 집기 등을 모두 정리했다. 이날 마지막으로 퇴실한 김재연 전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 복도에 파쇄된 문서가 봉투에 담겨있다. [중앙포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통합진보당이 2014년 12월 25일 국회 본청과 의원회관에 있던 집기 등을 모두 정리했다. 이날 마지막으로 퇴실한 김재연 전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 복도에 파쇄된 문서가 봉투에 담겨있다. [중앙포토]

이 같은 풍경은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인 2일 2015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세월호특별법·정부조직법(국민안전처 신설안)·부동산3법(분양가상한제 탄력 적용,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3년 유예, 재건축 조합원 주택 수 규제 완화) 등 쟁점 법안 처리를 미리 ‘원샷’ 합의하면서 가능해졌다. 논란이 커지던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시한 등도 일괄 합의했다. 당시 합의에는 이완구 새누리당,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김재원 새누리당,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 등의 ‘소맥(소주+맥주)’ 회동이 주효했다. 반면 성탄절 당일 국회 의원회관은 당시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 의원실 직원들과 당직자들이 문서를 파쇄하고 짐을 빼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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