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초품아’를 지어야 집값을 잡는다

중앙일보

입력 2019.12.23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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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디렉터 兼 콘텐트코디네이터 兼 시민사회연구소장
김원배 사회디렉터

김원배 사회디렉터

정부가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 전 서울 집값 상승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1주일 단위로 몇천만원씩, 강남권에선 1억원 이상 뛰기도 했다. 강남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다. 국민은행이 발표하는 ‘KB주택가격동향’을 보면 ‘중위가격’이 나온다. 시세대로 주택을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집의 가격이라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6억635만원이었다. 임기 절반을 맞이한 지난달엔 8억8014만원으로 뛰었다. 이번 대책이 없었다면 중위가격이 고가주택의 기준인 9억원을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는 9억원짜리 아파트가 더는 고가주택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규모를 서울의 중형아파트로 좁히면 가격 상승은 더 가파르다. 전용면적 62.8~95.9㎡(19~29평)인 서울 중형아파트 중위가격은 2017년 5월 6억1336만원에서 지난달 10억9452만원으로 올랐다. 흔히 얘기하는 서울의 ‘30평대’ 아파트값은 현 정부 들어 거의 2배에 가깝게 올랐다고 봐야 한다.

이쯤 되자 정부는 15억원 이상의 아파트에는 아예 대출을 금지하는 초강력 대책을 내놨다. 핵심은 수요 억제책이다. 시장 불안이 투기수요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부는 “서울의 실소유에 대응할 공급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18일 “서울의 부동산 공급은 충분하며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종합부동산세를 3배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규제가 계속 이어지는데 투기수요만으로 서울 집값이 이렇게 오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전체 공급 물량의 문제라기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선 ‘초품아’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의 줄임말이다. 요즘 수요자들은 오래된 아파트보다는 새 아파트를 선호하고, 유치원이나 학교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지를 주요 고려 대상으로 삼는다고 한다. 편리한 주거와 함께 자녀 교육을 신경 쓰는 부모들의 욕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직장이 가깝고 지하철역이 인접해 있는 역세권 아파트를 선호하는 현상도 여전하다.

서울에서 이런 주택을 공급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재건축·재개발이다. 하지만 재건축·재개발은 집값이 오르는 국면에서 상당한 이익이 발생한다. 서울 흑석동 재개발 상가주택을 25억7000만원에 구입했다가 처분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1년 5개월 만에 8억8000만원의 매각 차익을 얻었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면 집값은 들썩이는데 공급 효과는 몇 년 뒤에나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재건축·재개발을 완전히 틀어막으면 기존 강남권 신축 아파트를 더 희소하게 만든다. 정부가 강력한 수요 억제책을 편다고 해도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내년엔 정부가 512조원의 초대형 예산을 집행한다. 돈이 너무 풀리면 부동 자금이 다시 서울 부동산으로 집중될 수 있다.

재건축 시장엔 이미 이익환수 장치와 투기 규제책이 마련돼 있다. 관리하고 규제하더라도 공급이라는 수도꼭지를 완전히 잠그면 안 된다. 낡은 집과 아파트는 언젠가 새로 지어야 한다. 이를 뒤로 미루기만 하면 문제를 쌓아둘 뿐이다. 만일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짓겠다면 이런 곳을 먼저 개발하도록 하는 대안도 고려해야 한다.

새집에 살면서 자녀를 안전하게 잘 키우려는 것은 부당한 욕심이 아니다. 기본적인 욕구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런 것을 억누르려만 하지 말고 새로운 수요에 부응하는 양질의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길 바란다.

김원배 사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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