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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명 사상 모텔 방화 용의자 “불 지르고 무서워 도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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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2일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모텔 화재의 방화범이 카메라에 잡힌 모습. [뉴스1]

22일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모텔 화재의 방화범이 카메라에 잡힌 모습. [뉴스1]

불을 질러 33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광역시 모텔 방화 용의자가 자신은 정작 불이 무서워 도망쳤던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용의자도 연기를 마셔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곧 범행 동기를 밝히기 위한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3층 객실 베개 불붙여…4·5층 번져 #경찰, 긴급체포…범행동기 수사

소방당국과 경찰에 따르면 22일 오전 5시 45분쯤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모텔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났다. 소방당국은 200여 명의 인력과 20대의 소방차를 투입해 화재 진압에 나섰고 불은 20여분 뒤인 오전 6시 7분쯤 진화됐다.

이날 오전 병원으로 옮겨진 투숙객 1명이 사망한 데 이어 오후에 추가로 병원 치료를 받던 투숙객 한명이 숨졌다. 사망자는 총 2명이고 8명이 중상, 23명이 경상을 입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22일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 혐의로 김모(39)씨를 긴급체포했다. 3층 손님인 김씨는 자신이 머물던 객실 베개에 라이터로 불을 질러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불을 지르고 무서워 도망쳤다”며 “이후 짐을 챙기기 위해 모텔로 돌아와 방문을 열었더니 갑자기 불이 크게 번졌다”고 진술했다. 경찰 확인 결과 김씨가 숙박한 객실의 침대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됐다고 한다. 경찰은 현장 목격자들이 “불이 난 객실 창을 통해 화염이 분출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방화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경찰은 범행 동기의 단서가 될 정신병력 여부를 확인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가 낸 불은 삽시간에 모텔 전체로 번져나갔다. 벽돌로 된 모텔 외부는 그을린 흔적이 없었으나 공개된 내부 사진에서는 검게 그을린 벽면이 보였다. 모텔 내부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까지 검게 그을렸다. 화재 당시 상황은 긴박했다고 한다. 해당 모텔은 5층, 32개 객실 규모다. 3층에서 시작된 불이 4~5층으로 순식간에 번졌다. 투숙객들은 “불이야”라는 소리를 듣고 대피했다. 이 과정에서 비상계단으로 대피하지 못한 투숙객 1명이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는데 천막 위로 떨어져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주말과 휴일 사이, 모텔 투숙객이 많아 피해가 컸다”고 전했다. 불이 난 모텔 인근 업소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소방차 사이렌이 울리면서 얼굴 곳곳에 검은 재가 묻은 사람들이 모텔에서 뛰어나왔다”며 “신발이나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불이 난 모텔은 화재를 알리는 자동화재탐지장치와 경보기는 설치돼 적상 작동됐다고 한다. 하지만 곧바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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