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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어드바이저에 로봇은 없다?…1년 수익률 7%에도 투자자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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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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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인류 최강 이세돌 9단이 벌인 세기의 바둑 대결은 많은 것을 바꿨다. 경우의 수가 많아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라던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은 예상 밖 패배를 하게 되면서 가히 '알파고 신드롬'이 일었다. 금융권에서도 그 트렌드를 타고 "AI에 자산관리를 맡기라"며 앞다퉈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했다.

고객 수수료 시장 고작 450억원 규모 #"과거 퀀트 분석과 기술 차이 크게 못 느껴" #스타트업들 나서지만, 수익률 등 공인 안돼 #"증권 중개업 문턱 높아 혁신에 장애" #

 로보어드바이저가 대중들에게 선보인 지 3년이 지났다. 알파고 인기에 함께 반짝했던 로보어드바이저는 현재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시중은행의 한 홍보팀 관계자는 "2017년에는 한창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 요즘엔 잠잠하다"며 "고객들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지 못해서 그런지 잘 찾지 않는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 9단은 3년여 만에 다시 18일부터 국산 AI '한돌'과 은퇴 대국을 벌인다. 이 9단은 두 점을 깔고 시작하지만 지난 12일 JTBC뉴스룸에 나와 "자존심 상하는 치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간의 AI가 얼마나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같은 국내 로보어드바이저는 왜 제자리에서만 맴돌았을까.

 내년 5조원 된다더니 제도권 유료시장은 고작 450억원

 KEB하나은행이 지난해 5월 발간한 '2018 대한민국 로보어드바이저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5조원, 2025년 30조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분석됐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17일 코스콤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 사무국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고객들이 자문료나 운용 수수료를 내는 유료 시장은 현재 457억원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로보어드바이저의 알고리즘을 공인해주는 코스콤 테스트베드를 통과한 증권사, 자산운용사, 자문일임사의 가입금액 127억원과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해 운용하는 펀드의 설정액 330억원을 합한 규모다.

 은행의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의 규모는 9000억원 수준이지만, 로보어드바이저가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서비스가 아닌 무료로 펀드를 추천해주는 수준이라 제외했다.

 제도권 밖에서 핀테크 스타트업 에임(850억원), 불리오(700억원) 등이 최근 제도권 '형님'들과 큰 격차를 벌리며 고객들의 자산을 꽤 끌어모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부 스타트업과 유사투자자문업체들은 정부 공인 테스트를 받지 않은 알고리즘을 활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제3의 기관에서 공인해준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깜깜이 시장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들을 합친다 해도 국내 유료 시장은 2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 투자자문공시(IAPD)에 따르면 미국은 업계 1·2위인 웰스프론트와 베더먼트만 따져봐도 각각 16조원, 15조원 규모의 운용자산(AUM)을 보유하고 있다.

 수익률은 선방했는데…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별 1년 투자 수익률 상·하위 5. 그래픽=신재민 기자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별 1년 투자 수익률 상·하위 5. 그래픽=신재민 기자

 국내 투자자들의 외면은 수익률 부진 탓이었을까. 수익률은 선방했다. 12일 현재 코스콤 인증을 받은 35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의 1년 수익률은 7.2%였다.

 NH투자증권의 QV 글로벌 자산배분(위험중립형)이 21.02%로 가장 높았고, 키움증권의 키움 멀티에셋(적극투자형·20.9%), 쿼터백자산운용의 쿼터백 글로벌자산배분 해외상장 ETF(적극투자형·19.83%)가 뒤를 이었다. 물론 부진한 성과를 낸 로보어드바이저도 있다. 키움 모멘텀 시리즈는 적극투자형이 -12.84%, 위험중립형이 -10.75%로 가장 낮았고, NH투자증권의 NH로보 ETF형 모멘텀(적극투자형·-10.12%)가 뒤따랐다.

 국내 출시된 9개 로보 펀드(1년 이상·11일 기준)의 경우도 1년 수익률은 7.79%로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2.51%)을 웃돌았다.

로보어드바이저 펀드 1년 수익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로보어드바이저 펀드 1년 수익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머신러닝' 아닌 '엑셀러닝'?…"공모펀드랑 차이 못 느껴"

 그런데도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커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가장 큰 유통 채널인 은행권에서는 종목 추천을 할 수 없어, 로보어드바이저가 무료로 펀드 추천만 할 수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고객들에게는 공모형 펀드 추천 서비스로 인식이 돼 있다 보니까 주식형 펀드 시장이 쪼그라는 드는 추세와 함께 외면받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 수준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의견도 업계 내부에서 나온다. 로보어드바이저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말로는 머신러닝이니, AI니 하지만 사실 재무학 이론을 프로그램화한 과거 계량(퀀트) 분석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게 현실"이라며 "쉽게 말하면 로보어드바이저가 해주는 자산배분이라는 게 주식형 ETF와 채권형 ETF를 6대4로 할 거냐, 4대6으로 할 거냐는 정도이기 때문에 극적인 수익률은 원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스타트업 딜레마…의심과 혁신 사이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대형 금융사들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 흥미를 잃고 있는 사이 그 틈을 파고 든 건 핀테크 스타트업들이다. 최근 유튜브 광고 등을 통해 "글로벌 자산운용은 우리나라에서 제가 최고예요. 최고가 바로 앞에 앉아 있는데 왜 딴 데 맡기세요?"라고 홍보하는 에임이 올해 들어 가장 눈에 띈다. 지난해 말 100억원 수준이던 총 관리 자산이 800억원 이상으로 불었다. 에임은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해 미국 상장지수펀드(ETF)에 분산 투자하는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이런 에임을 보는 시각은 둘로 갈린다.

 미국의 유명한 헤지펀드에서 잘나가던 대표가 자산관리 서비스의 대중화를 위해 한국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첫 번째다. 반면 아직 정부 공인 코스콤 테스트베드에 참여하지 않은 점, 3년 누적 수익률은 38% 수준으로 소개하는 데 이 수익률이 일반적인 기준이 아닌 고객 계좌 수익의 중간값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AI만 투자에 관여하든, 거기에 사람이 관여하든, 정부 라이선스가 없어도, 코스콤 테스트를 안 해도 모두 '로보어드바이저'라는 타이틀을 쓸 수 있어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혼란스럽다"며 "자문업 라이선스도 없이 유사투자자문업을 하는 소규모 기업들은 전혀 검증이 안 돼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에임 등은 자문업 라이선스는 있지만, 그들이 내놓는 수익률에 대해 제3기관에 인증을 받은 건 아니라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스타트업들도 할 말이 많다. 제도권 금융사들이 투자자들에게 불신을 심어줬고, 스타트업들이 금융업에 도전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지혜 에임 대표는 "기존 금융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커서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라는 믿음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며 "우직하게 진심을 다하며, 성과로 입증하는 5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야 에임의 진정성과 전문성을 조금씩 알아주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불리오 서비스를 제공하는 두물머리의 천영록 대표는 "한국은 (미국과 달리) 증권사만이 증권 판매와 중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이나 스타트업들이 금융상품을 파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또 (금융당국도) 필요한 서비스가 제때 나와 수백만명의 미래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당장 한두명의 불완전판매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더 걱정하는 게 현실이라 새로운 서비스에는 우려의 시선부터 보낸다"고 토로했다.

 "로보어드바이저 만능 아냐. 초장기 투자에 적합"

 로보어드바이저는 고액 자산가들만 받는 자산관리 서비스를 저렴한 수수료로 대중화한다는 취지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주로 개인 퇴직연금 등 초장기 투자에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로보펀드를 처음 내놓은 키움자산운용의 이창진 전략기획팀장은 "국내 투자자들은 로보펀드의 수익률이 너무 안정적이라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이를 활용해 초장기 투자를 하는 게 적합한 상품"이라고 말했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퇴직연금은 모든 사람이 장기적 관리를 필요로 하는 분야인데, 국내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에 완전히 열려 있지 않다"며 "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퇴직연금 중심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참고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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