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필리버스터 선봉장 심재철, 7년전엔 "필리버스터 반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문희상 국회의장 국정운영 비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원 정책위의장,심 원내대표, 임종훈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연합뉴스]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문희상 국회의장 국정운영 비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원 정책위의장,심 원내대표, 임종훈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 ‘검찰개혁’ 법안 처리를 저지할 수단으로 꺼내든 카드는 국회법이 보장하는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다. 한국당은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의 ‘임시국회 쪼개기’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해 12월 임시국회 ‘회기 결정의 건’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필리버스터 방어 전략의 최일선에는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가 있다. 심 원내대표는 15일 국회법 전문가와 기자간담회를 열어 필리버스터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회기 결정의 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논리적 모순”이라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입장에 대한 반박이다. 하지만 과거 ‘국회의원 심재철’은 원래 필리버스터 반대론자였다.

2012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장. 이날 여야는 ▶필리버스터(106조의2) ▶안건의 신속 처리(패스트트랙·85조의2) ▶예산안 등의 본회의 자동 부의(85조의 3) 조항 등을 신설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의결에 들어가기에 앞서 8명의 여야 의원들이 찬반토론을 벌였다. 찬반이 각각 4명씩이었는데, 반대토론자 중 한 명이 심재철 당시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의원이었다.

단상에 선 심 의원은 “당론과 당론이 부딪히는 첨예한 쟁점 법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관해서 이번 개정안을 만들었는데, ‘국회 선진화다’ 또는 ‘몸싸움 방지다’라는 이름을 붙여서 의원들을 속이려 하고 있다.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 법안은 소수파의 발목 잡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서 우리가 스스로 식물국회를 만들어 내는 법안”이라며 국회선진화법에 담은 조항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 중에는 필리버스터에 관한 내용도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만일 100명이 찬반토론을 5분씩 한다고 하면 500분이다. 최소한 9시간을 끌 수 있다. 오후 늦게나 야간에 시작해서 9시간을 끌면, 차수가 바뀐다. 우리가 본회의를 할 때도 숫자가 없어서 애를 먹는다. 쟁점 법안을 처리하려고 하는데 60명(국회의원 300명 중 5분의 1)이 안 되면 즉각 상대 당에서 의사정족수 미달이라고 지적을 한다. 그러면 본회의가 스톱(stop·멈춤)된다. 결국 본회의가 유회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아무 것도 처리를 못하게 된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文 정권 국정농단 3대 게이트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文 정권 국정농단 3대 게이트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필리버스터는 한번 시작하면 중간에 의사정족수가 미달되도 계속하도록 돼 있는데, 만약 토론이 갑작스레 종료된 뒤 법안을 처리하려고 할 때도 의사정족수가 미달인 상황이면 본회의가 미뤄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적한 말이다. 심 의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소수파가 어느 것을 잡고 걸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즉각 걸리게 돼 있는, 우리 국회 스스로 식물국회를 자초하게 되는 매우 좋지 않은 법이다. 따라서 이 법에 대해서는 의원님들께서 소신을 갖고 반대해서 부결시켜야만 된다. (중략) 아무 것도 처리를 못 하고 식물국회에 이어서 식물정부가 될 것이고, 모든 게 마비가 되는 그런 불행한 사태가 올 것이다.”

당시 그는 여당 의원이었다. 토론 종료 후 국회선진화법은 표결을 거쳐 통과됐지만, 반대한 의원도 48명이나 됐다. 그 중에는 심 의원은 물론 현재 한국당 내에서 필리버스터 관련 국회법 해석에 가장 적극적인 주호영 의원도 있다.

시계를 더 거꾸로 돌려보면 한국당이 주장하는 ‘회기 결정의 건’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과거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 견해와는 배치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 논의가 한창이던 2011년 3월 10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회운영소위에서 최민수 당시 운영위 수석전문위원이 각 당 의견을 취합해 보고한 내용이다. “필리버스터 관련이다. 한나라당에서는 필리버스터는 본회의만 적용하는 것이다. 그 적용 대상은 본회의에서 법률안만 적용하고…” 회기 결정의 건은 법률안이 아니다.

필리버스터, 한국에선 조병옥이 처음 언급

조병옥 전 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조병옥 전 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한국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가장 처음 언급한 사람은 조병옥(1894~1960) 전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의원이다. 3대 국회 시절이던 1955년 9월 16일 본회의에서다.

조 의원은 윤병호 의원이 발언을 하던 중 이기붕 국회의장의 계속된 제지에 “의장으로부터 너무나 독촉도 많이 있고 해서 간단히 이만큼 드리고 내려간다”며 멈추고 내려오자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했다. 그는 “의원의 발언권이라는 것은 가장 귀한 것으로서 의장은 침해 못 하는 것”이라며 필리버스터 얘기를 꺼냈다.

“말이라는 것은 속히 하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의사의 표시방법에 있어 가지고 둘둘 위요곡절(圍繞曲折) 돌아와 가지고 이론을 전개하는 사람도 있고 직접 하는 사람도 있고 의견이 달라…. (중략) 내 서양에 있을 적에 국회에 가 보면 필리버스터라고 있단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 그 의안을 통과시키지 않기 위하여 그 방해공작으로 연설을 8시간· 9시간, 어떤 것은 10시간 계속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뻔연히 방해공작인지 안다 그거에요.”

조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언급할 때 몇몇 의원들은 “거짓말이요” “어데서 보았소”라며 그를 믿지 못했다. 조 의원은 이 의장을 향해 “제발 이다음부터는 우리의 언권을 박탈하는 그런 간섭하지 말고 어느 의원이든지 시간의 제한이 전원의 결정이 없는 때에는 자기의 의사표시를 마음대로 하는 그런 원칙을 여기서 재확인하지 않으면 의장은 아마 나와 같은 사람으로부터서 불평의 말을 앞으로도 여러 번 들으리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