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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쿵푸 영화는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 쇼브라더스의 쿵푸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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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IMDb]

메인 [IMDb]

워쇼스키 자매(형제였던)의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전통적인 중국옷을 입고 무술을 배웁니다. 타란티노의 <킬 빌>에선 끝없이 무협영화를 오마주하며 고전적인 B급 쿵푸영화에 대한 애정을 보여줍니다. 어느날 세상에 나와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목숨걸고 무술로 대결하는 무도가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은 익숙한 무협/무술 장르는 과연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이런 사람에게 추천
홍콩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무협 장르의 뿌리가 궁금하다면

오늘 소개드리는 다큐멘터리 <쇼 브라더스의 쿵푸 신드롬>은 쿵푸영화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쇼 브라더스 영화사와 거기에서 파생된 골든 하베스트사의 흥망성쇄를 다루며 격변하는 세계사와 홍콩의 역사속에서 어떻게 이 참신한 장르가 전세계의 열혈팬들에게 사랑받게 되었는지 현미경을 들이대고 들여다 봅니다.

영화 &lt;킬빌&gt; [사진 IMDb]

영화 <킬빌> [사진 IMDb]

욕망이 충돌하는 뜨거운 돌섬 홍콩

쿵푸영화의 탄생은 사방으로 퍼지는 바이러스와 같았습니다. 우리는 몰라도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존재하며 헐리웃 영화, 게임, 드라마, 음악, 춤에 영향을 주며 만국의 공통언어가 되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러한 다양한 문화에 쿵푸가 어떤 영향을 주었고 씨앗을 뿌렸는지 보여줍니다.

100년전 홍콩은 가난한 이민자가 모여드는 척박한 돌섬이었지만 오늘날 가장 바쁘고 붐비는 도시가 되었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섞여 공존하는 신기한 곳이었습니다. 또한 영국이 홍콩을 지배하며 전세계의 돈이 홍콩으로 몰렸고 이곳은 다양한 욕망이 충돌하는 특이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쇼 브라더스, 쿵푸 영화를 탄생시키다

쇼 브라더스는 1925년 싱가포르에서 영화 배급 및 극장 체인업을 하던 샤오런메이(소인매)와 샤오이푸(소일부) 형제가 1958년 설립한 회사입니다. 쇼 브라더스는 헐리웃과 같은 영화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시에 인하우스에서 촬영, 음향, 음악, 연기까지 모두 원스탑으로 제작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냅니다. 지금 보면 모든 감독과 영화스탭, 배우들을 영화제작소라는 섬에 가둔채 공장처럼 영화를 찍어내던 개미지옥같은 시스템이지만 그 덕분에 홍콩은 다양한 영화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 풍년을 겪게 됩니다.

쇼 브라더스의 극장체인 [중앙포토]

쇼 브라더스의 극장체인 [중앙포토]

그러던 어느날 쇼 브라더스 영화사는 호금전(胡金銓, 1931~1997)이라는 인물을 만나며 큰 전환점을 겪게 됩니다. 북경에서 태어나 1948년 홍콩으로 이주한 호금전은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영화사에 미술감독으로 취직하였는데 우연찮은 계기,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연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우연은 주연으로 데뷔하는 크나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정식으로 쇼브라더스에 입사하며 쿵푸영화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됩니다.

영화 &lt;대취협&gt; [사진 IMDb]

영화 <대취협> [사진 IMDb]

호금전이 감독이 된 후 만들어진 작품은 <대취협>이라는 영화였는데 이 영화는 당시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경극에 기반한 영화가 주를 이뤘던 쿵푸 영화에 새롭게 다양한 시도를 하며 다른 영화에선 볼 수 없던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 냅니다.

헐리웃이나 유럽 액션영화에선 들을 수 없었던 칼과 칼의 챙챙거리는 충돌음, 주먹을 휘두를 때 나는 휙휙거리는 풍절음, 발레를 접목한 우아한 액션들은 기존에 나온 초기 무협영화들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주연이었던 정패패는 남성미가 넘쳐났던 무협영화에 강한 여성을 각인시키며 이 장르에 활력을 불어넣고 대중적으로 엄청난 지지를 받게 됩니다.

피바람이 불었던 홍콩, 그리고 무림 

평화롭게 순풍에 돗단듯 흘러갈줄 알았던 홍콩은 1967년 엄청난 사건을 겪게 됩니다. 조화공장 노동자들이 노동환경을 개선해달라는 데모를 하게 됐는데 식민통치를 타도하려는 공산주의자와 홍위병의 선동으로 이 데모는 테러로 규정되었고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수백명이 죽고 수천명이 체포되는 67폭동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등장한 장철(張徹, 1923년 ~ 2002년) 감독은 남자들의 의리와 자존심, 선혈이 낭자하는 강렬한 폭력 영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호금전의 무협영화들을 한층 발전시켜 <독비도(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라는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장철감독은 이후에 <복수>와 <오독> 시리즈를 만들게 되는데 서커스에 가까운 고난도 아크로바틱 액션이 등장하고 쿵푸의 대련을 적극 활용하여 서로 끝없이 합을 겨루는 쿵푸영화의 공식을 만들게 됩니다.

영화 &lt;독비도&gt;  [사진 IMDb]

영화 <독비도> [사진 IMDb]

장철 감독은 거대 부패한 권력에 대항하는 외로운 영웅들이나 복수를 꿈꾸는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이는 당시 홍콩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노동자들과 민중들의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이후 그의 영화들은 미국으로 수출되어 다소 정적이었던 헐리웃 액션 영화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서부극에 등장하던 총을 든 이방인은 이제 주먹으로 동네 폭력배들과 정의를 위해 싸우기 시작했고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된다는 공식은 노동자들에게 영렬한 지지를 받게 됩니다.

이소룡이라는 불세출의 영웅 등장

어이없게도 쇼 브라더스는 이소룡의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경극배우인 중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유대인, 중국인의 피가 섞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이소룡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권격(주먹으로 싸우는)영화가 흥하던 시기 쇼 브라더스에 찾아가지만 쇼 형제는 매몰차게 차버립니다.

이소룡의 데뷔 초창기 [사진 IMDb]

이소룡의 데뷔 초창기 [사진 IMDb]

미국으로 돌아간 이소룡은 TV 드라마 <배트맨>의 스핀오프였던 <그린호넷>이란 영화에서 조연을 맡게 되는데 이미 쿵푸영화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미국에서 엄청나게 주목을 받게 되며 쿵푸 신드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된 이소룡은 TV쇼에 출연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의 아이디어를 말하게 되는데 이 아이디어는 워너브라더스에게 도둑맞게 되고 전설의 드라마 <쿵푸>가 탄생되게 됩니다.

영화 &lt;사망유희&gt; [사진 IMDb]

영화 <사망유희> [사진 IMDb]

이소룡은 홍콩으로 돌아가 다시 쇼 브라더스를 찾아가지만 또 다시 대차게 거절당합니다. 하지만 이때 쇼 브라더스에서 독립한 간부들이 설립한 ‘골든 하베스트 영화사’가 이소룡과 계약을 하고 <당산대형>, <정무문>을 만들며 대성공을 하게 됩니다. 이후엔 이소룡 혼자 독립하여 <맹룡과강>으로 흥행신기록을 세우고 다시 골든 하베스트로 돌아가 <사망유희>, <용쟁호투>를 만들며 쿵푸 영화의 트랜드를 바꾸고 스스로 거대한 신화가 됩니다.

이소룡의 성공은 쿵푸영화가 미국으로 수출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쿵푸영화는 어느덧 미국으로 건너가 전국의 B급 영화관에 걸리기 시작했고 기존에 포르노나 틀던 B급 영화관은 쿵푸영화가 정복하게 됩니다.

미국 문화에 쿵푸 스며들다

1973년 이소룡 사망후 이소룡을 추종하던 흑인들은 ‘블랙 스플로테이션’ 이라는 장르를 창조해내게 됩니다. 중국인들이 보여주던 쿵푸 액션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연기하고 자극적인 폭력과 흥겨운 펑크와 소울 음악이 합쳐진 이 장르는 <샤프트>라는 영화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미국내 존재하는 인종차별과 부패한 백인 권력에 맞서는 영화가 주를 이루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은 단지 흑인들의 서브컬쳐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쇼 브라더스는 1978년 <소림 36방>이라는 영화를 발표하는데 이 영화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인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영웅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 등장했던 인상적인 장면들은 영화 <록키>에도 차용되어 록키가 훈련하는 장면에 삽입되었습니다.

영화계로만 쿵푸가 퍼진게 아닙니다. 쿵푸영화에 푹빠진 뉴욕 브롱크스의 청년들은 힙합이라는 장르에 쿵푸 영화의 요소들을 적극 수용합니다. 스트리트 랩배틀과 댄스배틀은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문파간의 대결과 꼭 닮았습니다. 이제는 힙합의 전설이 된 <우탱 클랜>이라는 랩그룹은 중국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무당파(武當派)를 미국식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라스트 쿵푸 히어로, 성룡

골든 하베스트의 또 다른 쿵푸 영웅인 성룡의 스턴트 액션은 프랑스로 건너가 파쿠르라는 도시질주 아크로바틱 운동을 만들어 냅니다. 성룡과 함께 활동하던 홍금보, 원표는 이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더 사실적인 액션, 더 큰 스케일, 더 위험한 스턴트를 보여주며 전세계 팬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영화 &lt;취권&gt; [사진 IMDb]

영화 <취권> [사진 IMDb]

이시기 홍콩 쿵푸영화는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됩니다. 타임슬립, 모험, 탐험, SF 등등 다양한 장르와 융합되어 마지막 황금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쿵푸 영화는 다시 호금전이 <대취협>을 만들던 처음으로 돌아가 양자경, 나부락(Cynthia Rothrock) 두 여성이 주연한 <예스마담> 시리즈를 탄생시킵니다. 이 영화는 여성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는데 조연에 지나지 않았던 여성들이 주인공이 되어 강력하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홍콩뿐만 아니라 미국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어 여성들이 주연이 되어 액션을 하고 서사의 중심이 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서서히 등장하게 됩니다.

영화 &lt;예스마담&gt; [사진 IMDb]

영화 <예스마담> [사진 IMDb]

쇼 브라더스가 남긴 유산

쇼 브라더스는 골든 하베스트에 밀려 침체기를 겪다가 후에 TV로 넘어가 무협시리즈를 부흥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지만 시대 급격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구시대적 발상과 안일함 때문에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1980년대 중반까지 쿵푸 영화의 중심이 되어왔던 쿵푸의 시조는 어느덧 쿵푸의 무덤이 되어버립니다.

영화 &lt;황비홍&gt; [사진 IMDb ]

영화 <황비홍> [사진 IMDb ]

그러나 쇼 브라더스가 남긴 쿵푸의 유산은 전세계로 퍼지고 헐리웃으로 건너가 다양한 액션영화에 영향을 주게 되었고 쿵푸영화의 영웅들과 천재 감독, 스턴트맨들은 헐리웃으로 진출해 다양한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토니쟈가 주연한 태국 영화 <옹박> 시리즈, 이코 우웨이스가 주연한 인도네시아 영화 <레이드> 시리즈, 류승완 감독이 연출하고 주연한 <짝패>등은 홍콩 쿵푸 영화가 없었다면 절대 탄생하기 힘든 영화들이었습니다. 현재도 헐리웃을 비롯해 인도와 아프리카의 영화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쿵푸 영화를 오마주하며 액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영화 &lt;영웅본색&gt; [사진 IMDb]

영화 <영웅본색> [사진 IMDb]

또한 쿵푸영화가 쇠퇴하고 등장한 느와르 영화는 칼이 총으로 대채된 무협물이었습니다. 쿵푸영화의 주제였던 우정과 정의, 배신과 반전이 어두운 범죄 느와르에 담겼고 이 영화 장르 역시 전세계의 영화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현재 넷플릭스에 올라온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쿵푸영화를 말하는 것을 넘어 바이러스 처럼 뿌리내린 쿵푸 액션의 역사와 파급효과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여줍니다. 홍콩영화 전성기의 향수를 다시 느끼고 싶은 분께는 적극 추천드리고 쿵푸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분께도 홍콩과 액션영화, 게임과 음악까지 영향을 준 흥미진진한 역사를 볼 수 있으니 볼만한 다큐를 찾는 분께는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글 by 김광혁 객원기자

TMI

  1. 자막번역이 많이 아쉬운 편입니다. 배우들과 감독들 등 주요 인물들의 표기가 중국식, 영문식이 뒤섞여 있는데 한국어 번역이라면 원래 한국인들이 알고 있던 이름으로 표기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타도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2. 쿵푸 영화의 여성 주인공이었던 두 배우, 정패패와 양자경은 이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에서 만나게 됩니다.
  3. 블랙 스플로테이션의 대표적 영화 <샤프트>는 시대를 넘어 계속 리메이크 됩니다. 리메이크된 샤프트엔 원작의 주연인 리처드 라운트리가 아들에게 자시의 자리를 물려주게 됩니다. 마블영화에서 닉퓨리를 연기한 샤무얼 L 잭슨은 샤프트 2대를 연기하며 다음 3편에서 다시 아들에게 샤프트의 자리를 물려줍니다.


제목  쇼 브라더스의 쿵푸 신드롬
감독  세르쥬 오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와칭(wa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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