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5세 아동 또래 성폭력 논란, 이분법 떠나 본질 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이윤진 국무총리 산하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

이윤진 국무총리 산하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

경기도 성남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5세 남아의 또래 여아에 대한 성적 행동’을 놓고 성폭력 논란이 한창이다. 어른이 아동에 가한 성폭력 범죄와 달리 또래 아동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라 더 주목받고 있다.

“자연스러운 모습” 언급은 부적절 #조기 성교육 등 예방 노력도 해야

이 사건에 대해 형사미성년자(14세 미만)인 5세 아동에게 성폭력이란 용어를 쓰는 게 타당한지, 이번 행위가 과연 정상적인 아동의 발달 과정인지를 놓고 논쟁도 벌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현상보다 깊은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이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 창구를 통해 공론화됐지만, 전례가 아예 없는 유형의 사건은 아니다. 유치원생을 포함한 초·중·고생 등 18세 미만 아동 간의 성폭력 사건은 지속적으로 보고됐다. 특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 간 성폭력 사건은 연령이나 표현 방법의 한계 상 다른 성폭력 사건과 달리 드러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성적 가치관을 내면적으로 형성하는 시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 신중하게 접근해 판단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동 발달 과정상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언급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

이런 발언을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한 것이라면 더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다. 단언컨대 이 사건 속 남아의 행동은 결코 자연스러운 성적 호기심의 발현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이 사건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여아뿐 아니라 가해자로 지목된 남아도 다른 한편으로 보면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이다. 부모가 의도했든 않았든 그 아동은 성적인 영상이나 장면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됐을 수 있다. 잠재적 성폭력 피해의 대상이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성적 욕구 표출이 아닌, 뭔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을 행동에 옮겼을 수도 있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으로 이 사건을 협소하게 바라보면 안 된다. 아동의 정상적 발달을 위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자연스러움’이라는 협소한 해석은 사회적 은폐이자 방치다. 나아가 가정의 양육 환경과 사회의 성에 대한 인식, 시스템적 문제 역시 돌아봐야 한다.

올해 판결 중 몇 가지가 떠오른다. 아동 성 착취 동영상 사이트 운영자에 대해 “제작에는 공모하지 않았다”며 징역 1월 6월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하나다. 10세 아동에게 술을 먹인 뒤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8년이 선고된 보습학원 원장에게 항소심에서 폭행·협박을 인정하지 않고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3년으로 감형한 서울고법 판결도 있었다. 성폭력과 성에 대한 낮은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담담하게 상황을 마주하면서 하나씩 고쳐나가자. 피해 아동에 대한 사후 조치와 더불어 가해자로 낙인찍힌 아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필요하다. 일단 감정적 분노와 손가락질을 잠시 유보하고, 해당 아동이 어떤 양육 환경에 놓여있었던 것인지 차분히 점검해 봐야 한다.

부모 교육과 함께 아동에 대한 조기 성교육 등 예방과 사후관리를 동시에 해야 한다. 집단생활 공간에서 교사의 역량은 영유아 발달 과정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기에 부모뿐 아니라 교사의 젠더 감수성과 인권 인식 역시 중요하다. 아동이 자라면서 겪게 되는 각종 상황 대응, 나아가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아동에 대한 투자는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말은 복지라는 이름의 현금 지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아동의 건강하고 건전한 성장을 위해 사회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문화적·제도적 환경 개선 지원과 사회적 인식 변화를 포괄해야 할 것이다. 성남 어린이집 사건은 이런 숙제를 던졌다.

이윤진 국무총리 산하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