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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획 시론

정권따라 오락가락 입시제도, 이젠 법률로 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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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부가 지난 11월 말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딸 부정 입시 의혹이 제기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 제도 개편을 갑자기 지시한데 따른 것이다.

교육정책이 문제다 #대통령 한마디에 갑자기 대수술 #국민합의로 안정적 제도 만들자

2018년에 국가교육회의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발표된 2023학년도 대입제도가 적용되기도 전에 그다음에 시행될 대입제도를 바꾸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크다. 특히 특정 인물과 관련된 대입의 불공정 사례가 발생했는데, 그로 인해 대입제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더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 입시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다른 어떤 교육정책보다 강력하다. 대입제도의 변경은 전국 고교의 교육과정에 영향을 주고, 심지어 중학교와 초등학교 재학생과 학부모들에게도 파급력이 크다. 사교육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이번 입시 제도 개편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런 배경 때문에 대학입시제도를 바꾸는데 최대한 신중하게 하고 모두가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 ‘대입정책 4년 예고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4년 예고제로 인해 학교 현장은 더 혼란스럽다.

매년 4년 뒤 시행될 대입제도를 바꾸다 보니 현재 중학교 2학년부터 당장 내년에 대입을 맞이한 고교 2학년까지 매년 시행될 대입제도가 모두 다르게 됐다. 황당한 일이다. 교육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대입제도를 변경해야 할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너무 자주 바뀐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그동안 획일적이고 경직된 공급자 중심의 학교 교육을 ‘학습자 맞춤형 교육지원 체제’로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학교 교육의 하위체제를 모두 이에 맞춰 조정해 가고 있다.

미래형 교육혁신의 중심에 있는 ‘고교 학점제’ 전면 도입 시점인 2025년에 맞춰 교육과정 개편과 교수-학습 혁신, 성취 평가제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이번 교육부의 정시 비율 확대를 우려하는 이유는 이러한 미래 교육을 위한 노력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대입제도 개편의 핵심은 수시의 공정성을 강화하면서 정시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수시와 정시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이다. 전형마다 장단점을 갖고 있으며, 최소한의 비율을 유지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비율을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결정되든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불만이 있다고 사회적으로 합의한 비율을 변경하면 더 큰 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또 다른 변경의 불씨가 된다.

이제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제도를 만들고, 또 다른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안정적이고 믿을 수 있는 대입제도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헌법은 제31조에 교육과 관련된 중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제6항에는 교육제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교육제도 법정주의’라고 한다. 교육제도의 근간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것은 정권 교체 때문에 교육제도가 크게 바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교육전문가들이 현 정부의 교육혁신 정책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대입제도뿐 아니라 고교학점제, 자사고·특목고 폐지를 포함한 고교체제 개편 등 발표된 주요 정책이 법률에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 볼 때 대통령령에 근거한 교육정책은 대통령 선거의 과정에서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라도 미래를 대비한 안정적인 교육혁신을 위해서 과정이 어렵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주요 교육제도를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 정치적 변동 때문에 조변석개(朝變夕改)하지 않는 교육제도를 만들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