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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도발 막자고 모인 안보리…한·미, 미·영·프 입도 안 맞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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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켈리 크래프트 주유엔 미 대사가 11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한 안전보장이사회를 주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켈리 크래프트 주유엔 미 대사가 11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한 안전보장이사회를 주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이 대북 압박과 관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영국과 프랑스가 ‘매파’로 뭉쳤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보상부터 주자고 딴소리를 했다. 그 와중에 한국은 남북관계 개선에 몰두했다. 11일 오후(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북한 관련 회의에서 드러난 균열 양상이다. 북한은 “미국은 우리가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 명백한 결심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며 ‘새로운 길’이 강경노선이 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미, 대북 압박·협상 사이 우유부단 #중·러 “제재 풀고 인센티브 줘야” #영·프 “비핵화 구체적 조치부터” #한국은 남북관계 개선에 강조점 #북 “미국만 ICBM 쏠 권리있나” 반발

켈리 크래프트 주유엔 미국 대사는 이날 세 차례나 공개발언을 했다. 회의 전 기자들과 만나 “유연해질 준비가 됐다”고 하더니 회의 첫 발언에선 “북한이 심각한 도발 재개 조짐을 보인다. 이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우주비행체 발사나 미 본토를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보리는 그에 따른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고 추가 제재의 뜻도 내비쳤다.

그런데 추가로 발언 기회를 얻어서는 또 “북한이 제시하는 (협상) 아이디어도 기꺼이 고려하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업적을 지키려면 북한의 고강도 도발은 막아야 하지만 너무 세게 압박해 협상판을 깰 빌미를 줘선 안 되는 고민이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이를 놓칠 중·러가 아니었다. 장쥔 주유엔 중국 대사는 “안전보장에 대한 북한의 합당한 우려에 답하지 않는 것이 협상 교착의 원인”이라고 했다. 또 ‘민생과 관련된 가역적 제재에 대한 조치’, 즉 제재완화도 주장했다.

안보리 회의에서 드러난 주요국 입장 차이

안보리 회의에서 드러난 주요국 입장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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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북한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했다. 또 “독자 제재와 세컨더리 제재는 유엔 안보리가 금지하지 않는 행위도 하기 어렵게 만드는 부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며 난데없이 미 독자제재상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정상적 거래를 하는 제3국 개인, 단체도 제재)을 문제삼았다.

오히려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은 영국과 프랑스였다. 캐런 피어스 주유엔 영국 대사는 “북한이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제재는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용어도 트럼프 행정부가 쓰는 FFVD(완전하고 최종적으로 검증된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이 극도로 싫어하는 전통적 용어인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썼다. 니콜라 드 리비에르 주유엔 프랑스 대사도 “우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개발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며 어떤 해석의 여지도 남겨선 안 된다”고 했다.

이처럼 상임이사국들이 첨예하게 맞서는 가운데 한국은 또 남북관계 개선에 방점을 찍었다. 조현 주유엔 대사는 “교류협력 사업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우리의 공약에는 변함이 없다. 북한이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인도적 지원을 포함, 유의미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입장은 미·영·프가 아니라 “남북대화를 지원해야 한다”는 러시아, “비핵화는 평화체제 구축과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중국으로부터 지원사격을 받았다.

이와 관련,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2일 저녁(한국시간) 담화를 내고 이번 회의를 ‘적대적 도발행위’로 규정하며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설사 대화한다고 해도 미국이 우리에게 내놓을 것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며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으며 미국이 선택하는 그 어떤 것에도 상응한 대응을 해줄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변인은 “저들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올려도 되고 우리는 무기 시험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우리를 완전히 무장해제시켜 보려는 미국의 날강도적인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회의 소집 자체를 문제삼아 장거리 미사일 도발의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한 전직 외교관은 “이번 회의는 북한의 도발을 막자고 모인 것인데, 미국은 우유부단해 보였고, 중·러는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들었으니 북한 입장에선 오히려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지혜 국제외교안보에디터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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