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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농담과 여백의 미, 주기중의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책을 읽다 잠시 덮은 순간 겉장에 양옆으로 펼쳐진 그림이 들어왔다. 아래는 분명 산봉우리 같건만 위는 한참을 들여봐도 아리송하다. 수만 년을 한 자리를 지켜온 바위들과 뿌연 연무가 아스라하다. 작가의 책 표지그림은 'Wave#03'으로 책 속 갤러리에서 소개된다. 그제야 알았다. 순간 산수화로 본 표지는 바다 위 암석들과 넘실거리는 파도와 해무 사진이란 걸.

Wave#03,2017

Wave#03,2017

사진기자로 30년 이상 활동했던 주기중 작가의 세 번째 책 '산수화로 보는 풍경사진'은 사진 테크닉 소개는 극히 일부분이다. 작가는 풍경 사진의 지향점을 작가의 정신세계를 담는 산수화의 경지에 빗대어 설명한다. 대자연 앞에 선 사진가의 자세, 생각과 감정을 사진에 이입시키는 문제에 중점을 둔다. 책 페이지는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사진만큼 글도 오래 봐야 한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느리지만, 책 속에서 마주치는 사진과 글을 보며 작가가 머리말에서 적은 '산수화의 정신은 힐링'이란 말을 새삼 다시 느낀다. 힘들고 지칠 때 자연을 찾아 떠나고 싶지만, 맘 편하게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언론계를 떠난 후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는 주기중 작가는 아주특별한사진교실, 서울시 50+재단에서 사진강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Wave#07,2017

Wave#07,2017

서평

깊고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글이다.
작가로부터 첫 번째 리뷰어가 되어 달라는 가슴 설레는 청을 접하고 책을 읽어 가는 내내 가슴에 이는 느낌은, 응? 사진가 아녔나? 사진기자 출신이라지만, 언제 이렇게 많은 공부를 했을까? 고려와 조선의 사상가, 미학자에서부터 중국 육조시대, 문화예술의 절정기인 당대와 송대를 지나 원, 청대까지의 문인들 및 관련 시구들을 줄줄 꿰고 있는 게 아닌가?

사진을 위한 공부였다지만, 그 공부들 가운데 사진가의 시선이 만들어지고 또 사진가의 길을 찾게 됐다지만, 부러움과 경외심 그리고 약간의 질투까지 일었다. 때로 그는 시인이기도 했고, 산수화를 화폭에 담는 문인화가이기도 했고, 동서양의 넘나드는 사상가이기도 했으며, 또 때론 날카로운 사진 미학자가 되어 사진 제대로 찍어! 하며 다가온다.

싫지 않았다. 싫지 않은 느낌이다.

때론 사진 감상의 방법을, 때론 사진의 기술을, 또 때로는 사진을 대하는 사진가의 자세를 마치 잘 정제된 미슐랭급 코스요리처럼 안내한다. 특히 사진미학을 풀어가는 부분에서는 산수화의 세필 붓놀림처럼, 시연을 통해 아주 세밀하고 깊게, 그가 겪으며 공부했을 사진의 방법을 전하고 있다.

그의 경험과 사유를 통해 다가오는 것은, 아! 사진을 이렇게 찍는구나.. 사진가의 예술감각이란 게 이렇게 길러지는 구나.. 그래서 사진가가 예술가이구나를 느끼게 된다. 300페이지 내내 산수화와 그에 담긴 정신을 이야기하며 사진의 길을 모색하지만, 풍경산수화의 함정이랄 수도 있는 예쁨만을 쫒는 지나친 탐미주의를 경계한다.

우주에서 찍은 푸른빛 지구조차 잠깐의 감탄을 줄뿐 더는 감동하지 못하는 오늘의 사진세태를 고민하며, 날씨에 의존하는 ‘운칠기삼’의 예쁜 사진이 더는 방향이 되어선 안된다고 외친다. 이 책에서도 “산수화를 흉내 내자는 것이 아니다. 산수화에 담긴 우리 고유의 정신을 배워, ‘사진적인 사진’의 표현형식을 고민해 보자”고 일갈한다. 울림이 큰 부분이다.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읽기를 권할 타깃 층이 분명하다고 느껴진다.

작가와 출판사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사진을 이제 막 시작하는 Beginner분들껜 아직 좀 이른 책이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사진의 길에 들어서서 계절의 민감함을 알고, 하늘과 바람과 구름의 조화에 목말라 보고, 희열과 실패도 맛봤을 중급 이상의 사진가들에게 권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카메라 웍이나 색보정 등등의 기능적 차원을 지나, 나만의 새로운 시각이나 나만의 색감을 고민하고 스스로의 내적 외연을 넓히려는 중급 이상의 하이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는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한때 피사체를 잃어버려 카메라를 놓았고, 찍을 대상이 안 떠올라 사진작업을 하면서도 뭘 찍는지, 왜 찍는지 개념조차 혼미했던, 본 리뷰어같은 얼치기 사진가에겐 좋은 공부책이자 안내서가 될 것을 확신한다.

팬이 된 듯하다. 탐하고픈 글이 있어 몇 단락 따로 옮겨 적었지만, 사진가 주기중이 설파하고 싶었으리라 추론되는 32 page 글로, 첫 번째 리뷰어 구박의 勸書歌권서가를 대신한다.

“철학·문학·과학·수학 등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진은 보는 것이 반입니다. 어떤 대상을 본다는 것은 존재론적인 탐구이자 자기 성찰입니다. 아는 만큼 더 보입니다. 문학과 미술과 음악 등 예술작품을 꾸준히 접해야 합니다. 그 감동으로 가슴이 흥건히 젖어 있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기능적인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 사진으로 이르는 길은 사진밖에 있습니다.“ 주기중의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 p.32

구승회 신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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