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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나를 찾는 오른손의 여정, 내 몸이 사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내 몸이 사라졌다   [넷플릭스]

내 몸이 사라졌다 [넷플릭스]

내 신체 일부가 기억하는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는 해부학실에 있던 ‘잘려진 손’ 하나가 주인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비평가주간 그랑프리와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 하나인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관객상, 크리스탈 어워드를 동시에 수상했다. <아멜리에>, <웃는 남자> 등의 각본에 참여한 기욤 로랑의 소설 『행복한 손』을 원작으로 한 기묘한 설정과 초현실적인 이야기가 매력적. 어느 정도 믿고 봐도 좋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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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손이 찾아가는 곳은?

‘피아노치는 우주비행사’가 꿈이었던 어린 소년 나우펠은 세상의 여러 소리들을 녹음하며 놀곤했다. [사진 넷플릭스]

‘피아노치는 우주비행사’가 꿈이었던 어린 소년 나우펠은 세상의 여러 소리들을 녹음하며 놀곤했다. [사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이지만 아동용이 아니다.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예리하게 ‘잘린 오른손’.

첫 장면부터 기괴하고 긴장감이 가득한데, 잘린 손이 해부학실을 탈출하기 위한 과정은 아슬아슬 쪼임의 연속이다. 사실 아무리 애니메이션이더라도 손목 부분이 절단된 손이 마치 소라게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낯설고 섬뜩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연민의 마음이 들면서 손의 여정을 응원하게 된다.

잘린 손은 마치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 듯이 거침없이 파리 도심을 가로지른다. 새와 쥐, 벌레 등의 장애물이 번번이 앞을 막는 등 ‘생존’의 위기가 닥쳐도 본능적으로 해결한다. 육체와 분리된 손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꽤 똑똑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게 인상적. 특히 시각장애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아기가 손가락을 잡는 장면에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긴장감, 안락함, 공포, 슬픔 등 잘린 손을 통해서도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잘린 손이 기억하는 삶  

나우펠은 피자배달을 하던 중 우연히 35층에 사는 가브리엘과 인터폰을 통해 긴 대화를 나누게 된다. [사진 넷플릭스]

나우펠은 피자배달을 하던 중 우연히 35층에 사는 가브리엘과 인터폰을 통해 긴 대화를 나누게 된다. [사진 넷플릭스]

잘린 손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이겨내며 여정을 하는 동시에 영화는 손의 주인인 ‘나우펠’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태어날 때부터 몸의 일부였던 손이 기억하는 나우펠의 삶이 보이는데 ‘피아노 치는 우주비행사’가 꿈이었던 어린 소년 나우펠은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다른 곳에 입양되면서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성인으로 자란다.

스스로를 불행 속에 밀어 넣은 채 살던 나우펠은 우연히 피자 배달을 간 곳에서 인터폰으로 도서관 사서 가브리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잘린 손이 나우펠을 찾는 여정을 하듯이 나우펠은 가브리엘을 찾아 나선다. 이후 가브리엘을 직접 만나게 된 나우펠은 꺼져가던 인생에 작은 희망을 찾기 시작한다.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된 나우펠은 가브리엘을 직접 만나게 되면서 꺼져가던 인생에 작은 희망을 찾기 시작한다. [사진 넷플릭스]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된 나우펠은 가브리엘을 직접 만나게 되면서 꺼져가던 인생에 작은 희망을 찾기 시작한다. [사진 넷플릭스]

잘린 손이 기억하는 나우펠의 삶은 여기까지다.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신은 꿈과 부모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기어코 나우펠의 오른손마저 사고로 잃게 만든다. 손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나우펠을 찾아 나섰던 건 아마도 또다시 상실의 고통으로 인생을 망가뜨릴까 봐 걱정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우펠은 알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가 해주신 말처럼 “뭐든 맘대로 안되는 게 인생”이라는 걸. 삶은 예측 불가하다는 걸 깨달은 나우펠은 다시 인생을 시작할 용기를 낸다.

이제 잘린 손은 나우펠의 ‘과거’가 됐다. 더는 붙잡고 있을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제야 나우펠을 향해 움직이던 손은 조용히 그의 곁에서 물러난다.

나우펠을 찾아나서는 잘린 손의 여정은 쉽지 않다. 새와 쥐, 벌레 등장애물이 나타나면서 계속 위기가 찾아온다. [사진 넷플릭스]

나우펠을 찾아나서는 잘린 손의 여정은 쉽지 않다. 새와 쥐, 벌레 등장애물이 나타나면서 계속 위기가 찾아온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는 왜 봉합 수술을 못했는지, 잘린 손이 해부학실에 있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잘린 손이라는 상징을 통해 ‘성장’을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우펠은 부모님이 사고당하던 그날 녹음한 테이프를 새로운 사운드로 덮어버린다. 옥상에 올라가 발판을 딛고 크레인 위로 점프하는 소리로. 앞으로 상처를 딛고 새롭게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과거를 지운 것이다. 고통의 순간은 언제든 다시 찾아오겠지만 이제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한 나우펠의 웃음소리가 편안해 보인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죠. 우리가 아예 엉뚱한 행동을 한다면 모를까…저 크레인으로 점프하는 거예요. 하면 안 되는 뭔가 즉흥적인 일 금지된 행동을 하는 거죠. 덕분에 다른 세상에 가게 돼서 잘됐다며 후회도 안 해요.”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죠.” 나우펠은 가브리엘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 넷플릭스]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죠.” 나우펠은 가브리엘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 넷플릭스]

운명, 인생, 고통, 깨달음 등 쉽지 않은 주제를 철학적인 동시에 대중적으로 풀어낸 제레미클라핀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그래픽 아티스트와 독립 광고 감독으로 활동했던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도 놀랍다.

현재 <내 몸이 사라졌다>는 <토이 스토리4>(조시 쿨리 감독), <겨울왕국2>(크리스 벅ㆍ제니퍼 리 감독), <드래곤길들이기3>(딘 데블로이스 감독), <날씨의 아이>(신카이 마코토 감독) 등과 함께 내년 2월에 열리는 아카데미시상식(오스카)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로도 점쳐지고 있다.

징그러운 이미지 때문에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영화지만 독특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오스카 후보로 점쳐지는 다른 영화들을 다 봤다면 이 작품도 보는 것을 추천한다.

글 by 이지영 기자(쪙이). ‘영화’로운 삶을 꿈꾸는 중. 잡식성 수다쟁이


제목  내 몸이 사라졌다(I Lost My Body)
감독  제레미 클라핀
출연  파트리크다쉼사오, 빅투아르 뒤 부아, 하킴 파리스
등급  15세 관람가
평점  IMDB 7.7 에디터 쫌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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