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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했던 1939년, 그 때 그 음악을 다시 연주하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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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화라의 앨범 타이틀 ‘1939’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화라의 앨범 타이틀 ‘1939’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늘한 음반이 하나 나왔다. 타이틀은 ‘1939’.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다.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토크는 한 해 전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전세계에서 끔찍한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불화, 공포…. 우리는 이런 전염병이 가득한 공기가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야 해.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시겠지.”

20대 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 #“인종차별·배타성 지금도 마찬가지”

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28)는 바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포함해 1939년 나온 작품 세 곡을 녹음했다. 카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의 ‘장송’ 협주곡, 윌리엄 월튼의 협주곡이다. 당시 20대 후반이던 독일의 하르트만은 “고통·절망과 함께 1933년(히틀러가 집권한 해)이 왔고 모든 범죄 중에 최악인 독재와 함께 전쟁이 시작됐다”는 메모를 남겼다. 그는 나치와 전쟁에 반대했던 대표적 독일 예술가다.

김화라는 “인종 차별, 배타적 사회 같은 것들이 지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 작품들을 연주해야 한다 봤다”고 했다. 그는 “연주자가 단지 연주만 잘하면 된다는 것은 편견”이라 선을 긋는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는 “연주만 하는 게 아니라 그것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헝가리의 작곡가 바르토크, 독일의 하르트만, 영국의 월튼은 각각 다른 땅에서 전쟁을 바라봤다. 전쟁을 재앙으로 바라본 점에서 같지만, 음악의 결은 다르다. “하르트만이 본 시대가 가장 희망이 없는 시대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찾는 쪽으로 음악을 끌고 나간다.”

김화라는 피아노의 명스승으로 유명한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 바이올리니스트 조성은의 딸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왔다가 13세부터 다시 미국에 살고 있다.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LA의 콜번 스쿨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콜번의 예비학교에서 2년째 학생을 가르치고 있으며 지난해 미시건 대학교의 초빙교수가 됐다. 김화라는 김대진 교수가 “음악의 길이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시키지 않으려 했었다”고 한 큰딸이다. 김화라는 “부모님이 말리는데도 바이올린이라는 조그마한 악기에서 수만 가지 색의 소리가 나는 게 좋고 재미있어서 시작했는데 지금도 정말 재미있다”고 했다.

김대진 교수와 김화라는 내년 2·3월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로 공연을 연다. 김대진 교수는 2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전쟁과 연관이 있는 라벨 ‘쿠프랭의 무덤’,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6번 ‘전쟁’, 평화와 연결되는 슈베르트 즉흥곡을 독주회에서 연주한다. 김화라와 김대진은 코플랜드, 월튼, 힌데미트,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를 3월 12일 들려준다. 김화라는 “음반과 마찬가지로 1939년에서 10년 사이에 지어진 곡들로 역사적으로 돌아봐야 할 작품들”이라며 “나쁜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이 꼭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것을 다양하게 하는 음악인이 되고 싶고, 커뮤니티에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정말 재미있다. 그들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또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 의미 있다.” 그는 LA와 미시건을 오가며 학생 30명을 가르치고 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손열음 등을 길러낸 아버지의 영향이 보인다. “아버지는 존경하는 음악가인데, 나와 정말 비슷해서 놀라울 정도다. 그것 때문에 같이 연습할 때 티격태격도 하는데 끝나면 많이 배우게 된다.” 아버지 김대진 교수와의 내년 듀오는 2015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무대 이후 5년 만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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