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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부산서 ‘군데렐라’ 그 시절 다시 꿈꾸는 이정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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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6월 이란 평가전 당시 이정협. 동아시안컵을 앞둔 그의 각오가 남다르다. [뉴스1]

지난 6월 이란 평가전 당시 이정협. 동아시안컵을 앞둔 그의 각오가 남다르다. [뉴스1]

동아시안컵(E-1 챔피언십) 축구대회는 K리그 선수들에게 ‘기회의 장’이다. 대회가 국제축구연맹(FIFA) 일정에 포함되지 않아, 시즌이 한창인 유럽 구단은 선수 차출 의무가 없다. 요컨대 유럽파가 올 수 없는 대회다. 지난 대회(2017년)에선 김신욱(31·당시 전북)이 주전으로 출전해 득점왕(3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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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부산에서 개막한 올해 대회도 마찬가지다. 파울루 벤투(50·포르투갈)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손흥민(27·토트넘), 황의조(27·보르도) 등 유럽파를 부르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오랜만에 대표팀에 온 선수들에겐 기량을 펼칠 기회”라고 말했다.

이정협(28·부산)은 누구보다 이번 대회를 기다려왔다. 그는 이미 두 차례 벤투팀에 뽑혔지만, 황의조·김신욱 등에 밀려 제대로 출전할 기회가 없었다. 벤투 감독 부임 후 아직 대표팀 골이 없다. 그는 소집 전날(8일) 전화 통화에서 “동아시안컵은 감독님에게 나를 어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어렵게 잡은 기회를 반드시 살리겠다”고 다짐했다.

이정협은 한때 한국 축구의 간판스타였다. 2016년 이전의 일이다. 2014년 울리 슈틸리케(65·독일) 전 대표팀 감독에게 발탁된 그는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 3골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같은 해 중국 우한 동아시안컵에서도 주전으로 뛰며 우승에 힘을 보탰다. 당시 상주 상무의 무명 공격수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팬들은 그를 ‘군(軍)데렐라(군인+신데렐라)’로 불렀다.

하락세는 이정협이 전역해 원소속팀 부산에 복귀한 2015년 말부터다. 코뼈 부상에 슬럼프까지 겹쳤다. 서서히 잊혔다. 그는 분위기 반전을 위한 몸부림쳤다. 2016년 울산으로 임대 이적했다. 이듬해 부산으로 복귀했다가, 2018년 일본 쇼난 벨마레로 다시 임대를 자청했다. 울산과 쇼난에서 각각 4골(31경기)과 2골(23경기)에 그쳤다. 오히려 매년 발목만 다쳤다. 그는 “상주에서 뛸 땐 ‘군데렐라’ 다음엔 어떤 별명이 붙을지 궁금했다. 축구를 못한 탓에 하나뿐인 별명마저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지친 이정협의 의지에 다시 불을 붙인 건 한 축구 팬의 댓글이다. 그는 “한 네티즌이 ‘(이정협은) 축구를 잘 못 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순간적으로 오기가 발동했다. ‘포기할까’ 생각하던 때였는데, ‘2019년 잘해서 꼭 저 사람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다짐대로 화려한 2019시즌을 보냈다. 이정협은 한 시즌 개인 최다골 기록(13골, 득점 5위)으로 부산의 K리그1(1부리그) 승격에 큰 힘을 보탰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그는 고향 부산에서 한 해의 해피엔딩을 꿈꾼다. 그는 “올해 두 가지 목표 중 1부리그 승격은 달성했다. 나머지는 동아시안컵 출전이었는데, 내친김에 득점왕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동아시안컵은 한·중·일 3국이 주축으로 동아시아축구연맹(EAFF)이 주관하는 격년제 대회다. 유럽파가 빠진다고 해도 막상 대회가 시작되면 승부는 팽팽하다. 숙명의 라이벌전 한일전에, 최근 아시아클럽대항전에서 입지를 끌어올린 중국이 대표팀 대결에서도 뭔가 보여주려는 분위기다. 실제로 승부는 이름값 이상으로 뜨겁다.

한국은 11일 홍콩, 15일 중국, 18일 일본과 차례로 맞붙는다.

부산=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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