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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시험"이라면서 방송도 안하고 김정은 철저히 숨긴 北,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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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실험장인 ‘서해위성발사장’(평북 동창리). [중앙포토]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실험장인 ‘서해위성발사장’(평북 동창리). [중앙포토]

 북한이 ‘연말 시한’을 앞두고 미국에 대한 압박을 극대화하면서도 내부엔 비핵화 협상 주요 보도를 일체 공개하지 않는 등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인 노동신문은 8일 국방과학원이 전날 서해위성발사장(동창리 장거리미사일실험장)에서 진행한 ‘중대한 시험’(실험)과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관 여부, 김 위원장의 발언 등을 보도하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이 7일 “중대한 시험이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번 변화시키는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김 위원장이 ‘국가 중요 행사’에 불참하고, 관련 발언도 하지 않은 건 이례적이다.
또 ‘중대한 시험’은 노동신문 외에 북한 주민이 보는 조선중앙TV, 조선중앙방송 등에도 관련 보도가 없었다. 북한이 올들어 13차례 방사포·미사일 시험 발사 때 관영매체에 빠짐없이 게재했던 것과도 비교된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위한 엔진 연소실험을 관영매체는 배제한 채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만 보도한 건 철저하게 미국을 겨냥한 경고 메시지란 분석이다. 내부엔 험악한 대외관계를 알리지 않고 있는 만큼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북한은 그동안 ①관영매체에 보도하지 않거나 ②김 위원장이 참관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대외 메시지 수위를 조절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2월 7일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준공식에 참석해 준공테이프를 끊었다고 8일 보도했다.[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2월 7일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준공식에 참석해 준공테이프를 끊었다고 8일 보도했다.[연합뉴스]

지난 2월 말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을 향해 쏟아내고 있는 담화들이 대표적이다. 최근만해도 박정천 북한군 총참모장은 3일 처음 담화를 내고 미국에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밝혔고,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4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늙다리의 망녕(망령)”이라는 등 잇따라 위협성 담화를 냈다.
하지만 조선중앙통신에서만 보도됐고, 관영매체엔 소개되지 않았다. 앞서 지난달 김계관 외무성 고문, 김영철 당 부위원장 등의 대미 압박 담화들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또 미국을 자극할만한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도발에 나설 땐 ‘김정은 노쇼(No show)’ 전략을 택했다. 지난 10월 2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을 시험발사했을 때 다음날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참관 여부를 보도하지 않았다. 별도의 김 위원장 발언도 소개하지 않아 미국에 도발 경고장을 날리면서 나름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위원장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사전준비로 추정되는 엔진 연소실험(동창리 중대한 시험)이 있던 7일엔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노동신문이 전했다.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은 평안북도에 있고, 양덕온천문화휴양지는 평안남도에 위치해 있다. 김 위원장의 동선을 동창리로부터 분리한 흔적이 역력하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수시로 공개하며 김 위원장과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며 “담화와 군사적 도발을 통해 미국을 압박하되 정상 간 신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있다”고 봤다. 또 “정상 간 신뢰를 마지막 마지노선 전략으로 남겨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 등 극렬한 용어를 골라 비난할 때도 관영매체에는 보도를 삼갔다.

지난달 30일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악수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하지 못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달 30일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악수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하지 못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조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정상 간 신뢰관계로도 비핵화 협상에 돌파구가 생기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면 그 다음부터는 대내외 매체 구분없이 대미·대남 비난에 나설 것“이라며 “2017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북한 최고지도자가 만난 외국 정상들을 대놓고 비난할 경우 내부적으로 최고지도자의 무오류성에 흠집이 나게 돼 단순히 분리해 대응하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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