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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종족주의’라는 한·미 양국의 숙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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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호 31면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근대화:세계화=서구화:미국화’라는 관계가 성립한다. 이 등식에서 ‘:(콜론)’은 한자어로는 대(對)다. ‘근대화=세계화=서구화=미국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상대편 궤멸은 희망사항일 뿐 #화성·금성 출신 남성·여성처럼 #여야 함께 사는 게 정치적 숙명 #‘하늘’은 여야 모두에 기회 줄듯

19세기, 20세기에 일본은 ‘근대화=서구화’라는 국제정치적인 시대적 압박에 기민하게 적응하고 대응했다. 조선과 중국이 갈팡질팡하고 갑론을박할 때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잽싸게 스스로를 서구 열강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우리나라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우리 지도층과 일반 국민은 본능적으로, 혹은 의식·무의식에 각인된 역사적 기억으로 말미암아 ‘근대화=서구화’의 2.0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화=미국화’에 거의 무조건 찬성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잘 들리지 않았다. 일본 덕분이다. 국권상실의 아픔을 다시 겪는 일은 없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근대화=서구화’의 성공에 아직도 취해 있는 일본은,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세계화=미국화’ 시대의 요청에 대응이 좀 부실한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인은 한국인에 비해 영어를 잘 못한다. 또 일본 총리의 대한(對韓) 공격은 그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국식 민주주의·시장경제·기업경영, 또 미국이 그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여성주의·다문화주의를 한국만큼 적극적으로 열심히 수용한 나라는 흔하지 않다.

미국을 숨가쁘게 벤치마킹하다 보니 좋은 점이건 나쁜 점이건 미국발 현상이 우리 땅에서 덩달아 재현된다. 예컨대 레임덕 현상을 거론할 수 있다. 양국 모두 사실상 ‘제왕적 대통령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임기 말기에는 지도력의 공백을 피할 수 없다. 양국 대통령 모두 처량한 신세를 운명처럼 맞이해야 한다.

양국에는 또 탄핵이라는 논란이 많은 제도가 있다. 지금 도널드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미국 정가가 뜨겁다. 일반적으로 한·미 양국 대통령이 레임덕 현상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는 양국 대통령들이 탄핵의 그늘 밑에서 국정을 운영하는 게 뉴노멀(new normal)이 될 수도 있다.

선데이 칼럼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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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은 공통적으로 ‘종족주의’의 사슬에 묶인 노예가 됐다. 최근 책 제목에 ‘종족주의’가 들어간 좀 부끄러운 책이 한국과 일본에서 크게 히트했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은 지금 ‘종족주의’와 일전을 치르고 있다. 한국에서 ‘종족’의 이름은 보수·우파/진보·좌파다. 미국에서는 보수(conservative)·리버럴(liberal)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1992)는 한·미 양국에서 베스트셀러다. 요즘 한·미 양국의 여야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여야 지지자까지도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다.

중국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우리가 ‘작은 중국’을 표방했듯, 우리나라는 지금 ‘작은 미국’이 된 것일까. ‘큰 형님’을 존경하면 나 또한 ‘큰 형님’을 닮게 된다. ‘큰 형님’ 나라에 좌파·우파 기독교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좌파·우파 기독교가 등장했다.

이상적으로는 상대편 정파의 좋은 정책을 보고 기뻐해야 할 텐데, 상대편의 실수·실언을 보고 기뻐한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상대편이 어떤 실수·실언을 했는지 확인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다. 이는 우리나라 이야기이기 전에 세계 민주주의를 선도해야 할 미국 이야기다. 세계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 챙기는 ‘민낯을 드러낸’ 미국 이야기다.

더욱 한심한 것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실수·실언’이 어떤 ‘검은’ 의도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나라가 어떻게 되건, 망하건말건 일단 우리편을 결집해 정치적인 이익을 보겠다는, 극단적인 편파적 언행이라는 것이다.

한·미 양국 정치사에서 오늘의 ‘돌연변이’ 상황은 아마도 최초다. 양국에서 콘크리트 핵심 여당·야당 지지자들은 손뼉 치고 환호하지만, 온건파 여당·야당 지지자, 무당파 국민·유권자가 보기에는 ‘누가 누가 못하나’ 게임에서 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당이 ‘야당 복은 타고났다’는 말도 있는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야당 또한 ‘여당 복은 타고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미 양국 양당이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가운데 적대적 공존, 적대적 윈윈을 하고 있다.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귀가 싫어한다’는 우리 속담도 있지만, 정치의 세계에서는 뻔한 스토리라인의 무한 반복도 어느 정도는 의외로 통하는 것 같다. 친일·독재·종북·주사파 등의 단어들이 등장하는 내러티브는 앞으로 20년은 생명력을 자랑할 듯하다.

군주제 국가에서 천명(天命)을 받는 것은 군주다.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유권자가 천명을 수령한다. 왕조국가에서 왕이 항상 옳았듯,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이 항상 옳다.

대한민국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하늘이 어떤 명(命)을 주실지, 국민·유권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국민·유권자의 선택은 ‘황금분할’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미워도 다시 한번’ 우리나라의 ‘한심한’ 여당과 야당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 같다. 기회가 숫자로 5%인지 20%인지는 모르겠다. 상대편 정당을 궤멸시키겠다는 희망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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