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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한열 열사 母 “홍콩 학생들, 죽어나가는 것 가슴 아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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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 [뉴시스]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 [뉴시스]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씨가 홍콩의 ‘범죄인 인도(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4일 ‘홍콩 민주항쟁을 지지하는 연세인 모임’에 따르면 배씨는 지난달 28일 이 모임에 보낸 편지에 “홍콩 학생들이 죽어 나가는 게 제일 가슴이 아프다”며 “이번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이겼다고 들었다. 이를 통해 민심을 확인한 것이다. 그대로 쭉 밀고 가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썼다.

이어 “한열이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 광주에서 그 사달(5‧18 민주화운동)이 났다는 것을 몰랐다가 대학에 가서 알게 됐다”며 “광주 사람이면서도 광주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몰랐다는 부채감 때문에 시위에 앞장섰던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부모니까 한열이에게 ‘불의에 참지 않는 건 맞다’, ‘시위에 나가도 좋지만 앞에만 서지 마라’고 했지만 이를 말릴 수 있었겠느냐”며 “(홍콩 학생들이) 단 한 명도 더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배씨의 편지는 홍콩지지 모임 소속 오제하씨의 메시지 요청에 따라 전해졌다.

오씨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1987년 6월 항쟁의 상징과도 같은 분의 어머님께 홍콩의 민주항쟁에 대한 지지 메시지를 부탁드렸더니 해주셨다”며 “홍콩사람들이 (외국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고 싶어 연락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본인도 아들을 잃으셨던 분이기 때문에 홍콩 학생들에게 ‘용기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며 “홍콩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홍콩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영화 ‘1987’, ‘택시운전사’ 등을 자주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유학생 대부분이 이한열 열사를 알고 있었다”면서 “한국의 1980~90년대 민주화 투쟁 역사를 공부한 뒤 번역해 본국에 보내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홍콩 시위가 계속되는 한 지지 활동들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이한열(사망 당시 21세) 열사는 연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7년 6월 9일 ‘6·10대회(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져 약 1개월 후 숨졌다.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돼 그 해 6월 29일 대통령직선제 개헌의 초석이 됐다.

박광수 기자 park.kwa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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