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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미래의 나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 루퍼

중앙일보

입력

루퍼    [네이버]

루퍼 [네이버]

[리드무비의 영화서랍] ‘시간 암살자’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영화 <루퍼>는 타임 슬립(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고가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SF액션물이다. 제작 당시 할리우드 영화 평균 제작비의 절반 수준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감상 전 ‘이 정도의 예산으로 SF가 가능해?’라는 걱정을 사지만, 막상 보고나면 그 우려는 감탄이 된다.

자본과 기술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스케일과 매끈한 영상미는, 이 영화에 없다. 하지만 라이언 존슨 감독은 그러한 한계를 밀도 높은 이야기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당당히 극복했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반짝거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참신한 영화를 감상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면

이런 사람에겐 비추천
복잡한 이야기를 싫어한다면
이야기 전개 속도가 조금 느릿느릿한 영화를 싫어한다면

미래의 나를 죽여라!

영화 &lt;루퍼&gt;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루퍼>의 한 장면. [사진 IMDb]

2074년, 암흑의 도시로 변해버린 미래. 황량한 느낌의 캔자스 지역에서 거대 범죄 조직들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그들은 완벽한 증거 소멸과 시체 처리를 위해 타임머신을 이용, 살해해야 할 타깃을 30년 전 과거 2044년에 ‘루퍼’라는 킬러들에게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루퍼로 활동하고 있는 조(조셉 고든 레빗)의 앞에 미래의 자신이 새로운 타깃으로 등장한다. 미래의 조(브루스 윌리스)는 살해당한 아내를 살려내기 위해 과거로 돌아와 레인메이커를 찾아 죽이려 한다. 레인메이커는 바로 조의 아내를 살해한 악당, 거대 조직의 보스가 될 인물이다.

미래의 조의 임무는 미래의 레인메이커가 될 아이를 찾아 죽이는 것. 현재의 조의 임무는 미래의 조를 죽여 조직의 추적도 피하고 남은 30년의 수명이라도 보장받는 것이다. 동시대의 현재와 미래의 내가 공존하는 아이러니. 내가 나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꼬여버린 운명에서 조는 특별한 선택을 한다.

현재의 불안과 공포가 만든 미래

영화 &lt;루퍼&gt;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루퍼>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루퍼>는 ‘조’가 미래에서 보내 온 타깃을 구식 장총으로 쏴 죽이면서 시작한다. 황량한 들판 한 가운데 깔아놓은 하얀 천(?), 그리고 그 곳에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타깃. 영화 속 배경은 SF 영화의 배경이라기 보단 서부영화 혹은 90년대 초반 액션 영화에 더 가깝다.

이런 설정은 기존 SF영화의 컨벤션을 탈피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적은 제작비 탓에 적절히 타협하고 포기한 부분도 일부 있겠지만 황폐화 된 미래, 현재보다 크게 나아질 것 없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스크린에 구현하고 싶었던 감독의 연출욕심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로 느껴진다.

그래서 <루퍼>는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는 기준이 다소 모호하게 보인다. 지상에서 살짝 뜬 채로 날아다니는 오토바이, 투명 디스플레이를 갖춘 컴퓨터 외에 현재와 미래를 경계 짓는 요소를 찾기 힘들다. 예상 가능한 발전과 예상 불가능한 어둠, 두 현실상황이 교묘하게 섞인 <루퍼>의 미래 세계는 현재의 불안과 공포가 야기할 수 있는 충분한 결과로 설득된다.

기발함과 상상력은 훌륭하지만..

영화 &lt;루퍼&gt;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루퍼>의 한 장면. [사진 IMDb]

<루퍼>에서는 영화 속 배경 자체가 어둡고 거친 질감으로 덮여있기 때문에 눈이 시원하게 트이는 영상미를 찾을 수 없다. 그 대신 라이언 존슨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타킷이 갑자기 등장하고 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쏴 죽이는 오프닝 신은 타임 슬립이란 소재를 임팩트 있게 담아낸다. 또 조가 마약을 눈에 집어넣으며 순간적으로 바뀌는 화면의 톤이라든지 조의 30년 인생 과정을 몽타주로 빠르게 넘긴 부분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순환의 고리’를 매우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루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이야기’다. 이 영화의 서사는 강점이자 약점이다.  이야기 자체의 기발함과 상상력은 매우 훌륭하지만, 그에 비해 전개는 매끄럽지 못하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지나치게 깊어지면서 결말부에는 발목마저 잡힌 느낌이다.

영화는 타임 슬립이란 소재가 주는 매력을 중심에 놓고 염력, 모성애, 사랑 등의 보조적인 이야기 구조를 접붙이면서 심지어 철학적 의미까지 담는 욕심을 보인다.

볼거리를 넘어서는 배우들의 호연

영화 &lt;루퍼&gt;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루퍼>의 한 장면. [사진 IMDb]

미래의 악당을 죽이려는 자, 악당이 될 가능성을 내재한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아이. 영화는 이 셋을 동일 선상에 놓고 현재의 조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야기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데 있다. 전반부는 SF와 액션, 현재와 미래의 조가 대결하는 구도 등의 볼거리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구성된다.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볼거리 요소가 현저하게 줄고, 이야기의 진행속도가 급격히 더뎌진다.

결국 관객의 집중력이 분산된 상태에서 결말에 다다르기 위해 포석된 이야기들은 관객의 흥미도 잃게 하고 마지막 조의 선택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데도 실패한다. 게다가 내레이션을 통해 조의 선택에 기어이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관객에게 통보하는 장면은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영화를 지켜본 관객을 맥 빠지게 한다.

<루퍼>는 볼거리에 충실한 SF영화나 액션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기존 SF의 볼거리를 이길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와 배우들의 호연이 영화를 떠받치고 있어 크게 지루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영화 속 브루스 윌리스의 말대로 복잡한 타임 슬립의 논리나 거대한 감동에 대한 기대만 없다면 오락영화로서 충분히 제 값은 하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글 by 리드무비. 유튜브에서 영화 채널 리드무비를 운영하고 있으며, 팟빵에서 영화 팟캐스트 ‘리드무비의 심야극장’을 진행 중이다.


제목  루퍼(Looper, 2012)
감독  라이언 존슨
출연  조셉 고든 레빗, 브루스 윌리스, 에밀리 블런트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평점  IMDb 7.4 에디터 쫌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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