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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신상 털린다…성남시 어린이집 피해 母는 무릎 꿇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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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6살 남자아이가 또래 여자아이를 상대로 몹쓸 짓을 했다는 주장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성남시의 한 어린이집에서 6살 남아가 여아를 상대로 몹쓸 짓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합뉴스·뉴스1]

성남시의 한 어린이집에서 6살 남아가 여아를 상대로 몹쓸 짓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합뉴스·뉴스1]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가해 아동 부모 등의 신상까지 알려지면서 파문이 퍼지고 있다.
경찰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내사에 착수한 가운데 피해 아동과 가해 아동 측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법적 대응 의사도 밝힌 상태다.

이 사건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A양의 부모가 "딸이 몹쓸 짓을 당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지난달 4일 아파트 자전거보관실에서 딸이 바지를 올리며 나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가 딸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는 내용이다. A양의 부모가 어린이집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한 결과 당일과 10월 15일 A양이 책장 뒤에서 남자아이 4명과 함께 있다가 바지를 추스르며 나오는 모습이 찍혔다. A양과 CCTV 속 남자아이 3명은 B군을 가해 아동으로 지목했다. 산부인과 진료에서도 A양이 성적 학대를 받은 것 같다는 정황이 나왔다.
A양 부모의 항의로 B군은 지난달 6일 어린이집을 퇴소했고 A양도 불안 증세 등을 보여 결국 어린이집을 나왔다.
A양 부모의 글은 일파만파 퍼졌고 성남시는 2일 어린이집 사각지대 CCTV 설치와 예방·안전교육 발표 등 대책을 발표했다. A양은 물론 B군, B군과 함께 있었던 3명 등은 각각 전문기관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자연스러운 모습" 발언에 곤욕 치른 복지부 

이런 가운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 같은 말을 해 논란을 키웠다. 박 장관은 지난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성남시 어린이집 사건에 대해 "사실을 좀 더 확인해야 한다"면서도 "어른들이 보는 관점에서의 '성폭행'으로 보면 안 된다.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는데, 과도하게 표출됐을 때는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박 장관은 "사실 확인 이후에 전문가 의견을 좀 더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덧붙였지만 이후 피해 아동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발언"이라는 비난이 잇따랐다.

성남시 어린이집 성폭력 사건 관련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발언을 두고 네티즌이 반발하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 #박능후_복지부장관_사퇴해' 해시 태그가 확산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성남시 어린이집 성폭력 사건 관련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발언을 두고 네티즌이 반발하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 #박능후_복지부장관_사퇴해' 해시 태그가 확산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보건복지부는 즉각 설명자료를 내고 "장관의 견해가 아닌, 아동의 발달에 대한 전문가의 일반적인 의견을 인용한 것"이라며 "사실관계 확인 후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다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다. 국민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발언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재발 방지 대책 등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장관 자질이 의심스럽다", "자신의 손녀가 그런 일을 당해도 그렇게 말하겠느냐?" 등의 반발 글이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집, A양, B군등의 신상까지 털려

이런 가운데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B군의 아버지의 실명과 직업 등이 떠돌고 있다. 일부 누리꾼은 B군 아버지와 관련된 기관에 항의 전화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과도한 신상털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B군 부모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아이의 행동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 회피할 마음도 없다"면서도 신상 공개 등에 대해선 반발했다. B군 부모는 법적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문제가 발생한 어린이집의 이름도 공개됐다. 누리꾼 등은 어린이집 등에도 아동 관리에 소홀했다며 항의 전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어린이집은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B군과 함께 있던 다른 아동 3명에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A양이 불안 증세를 보여서 어린이집을 퇴소했다고 A양의 부모는 주장했다.
성남시 관계자는 "해당 어린이집은 물론 시청으로도 '원장 교체', '폐원' 등을 요구하는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피해 아동 부모의 글 [사진 국민청원 홈페이지 화면 캡쳐]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피해 아동 부모의 글 [사진 국민청원 홈페이지 화면 캡쳐]

어린이집에 이어 피해·가해 아동이 거주하는 집까지 거론되면서 B군과 함께 있던 아이들의 신상은 물론 A양의 신상까지 강제로 공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A양의 어머니는 지난 2일 해당 유치원의 학부모 대상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 "2차 피해 발생으로 어린이집에 손해를 끼쳐 죄송하다"며 무릎을 꿇고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A양 측 법정대리인인 법무법인 해율은 "A양의 어머니가 이번 일로 의도치 않게 다른 원생들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이라며 "사실과 다른 내용을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도 "가해자의 신상이라도 무분별하게 노출하면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현행법상 명예훼손죄는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
법무법인 해율도 "이 사건과 관련해 무분별한 개인정보의 유출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특히 B군과 거론되는 3명의 아이도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불법적인 개인정보의 공개에 대한 각별한 주의해 달라"고 밝혔다.

경찰은 내사, 법무법인은 인권위에 진정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도 이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경찰은 A양 부모와 면담 일정을 조율하고 어린이집 CCTV 등도 분석하기로 했다.
B군이 만 5세라 처벌을 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A양 측은 B군 측이 법정대응을 예고하자 법무법인 해율을 법정대리인으로 내세우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 상태다. 해율은 변호사 4명 등 총 7명 규모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민·형사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또 명확한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 이르면 이번 주 중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공동소송 사이트인 '화난 사람들'을 통해 이날부터 시민들의 진정서를 모집할 예정이다.
임지석 대표 변호사는 "경찰에선 가해자의 나이가 어려 처벌할 수 없다고 하는 만큼,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판단된 사안에 대해 사실관계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로 했다"며 "가해 아동 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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